(거북이 15) 너무 어리게 보지 마세요
“이음새문학 열네 번째 글모음”, 교음사, 2016.11.10,pp.28-33.에 실린 글임.
(거북이 15)
너무 어리게 보지 마세요
이 웅 재
4학년이 되었다. 이제 1년만 지나면 졸업이다. 입학만 했다가 그만두어도 대학 중퇴는 된다는 생각으로 입학했던 대학교였는데 예상 외로 졸업까지 하게 되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정말로 힘들었던 대학생활이었다. 해서 만감이 교차되었다. 하지만, 막막했다. 졸업은 결코 끝이 아닌 것이었다. 그것은 또다른 시작이었다. 기반이 튼튼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출발이 축복일 터였다. 그러나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다시 찾아오는 시작은 더욱 두렵고도 넘어가기 어려운, 험준한 고개로 다가오는 존재였다. 그것은 언제나 나를 긴장시켰다. 그러한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벼르고’ 있었다.
“네 놈, 보잘것없는 네놈이 어떻게 내 ‘세상’ 안에 들어와서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을지 보고 싶다. 빨리 오너라. 와서 나에게 굴복하여라.”
나에게는 새로운 사회에 아무런 언턱거리가 없었다. 1‧4후퇴 때 10여 세의 나이로 남한 사회로 편입된 내겐 그 어느 곳에도 나를 받아들여 줄 만한 ‘구석’이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선택했던 교직과정,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내게 주어질 수 있는 것은 ‘2급 정교사 국어’ 자격증 하나일 뿐이었다.
교직과정, 그 마무리는 ‘교생 실습’이었다. 현장에 나가서 직접 학생들과 대해 볼 수 있는 시간, 그 기간이 한 달 정도쯤 되지 않았었나 싶다. 사실 우리들은 그 시간 동안 학교 수업을 받지 않아도 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서 내심 반가워하는 마음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막상 실습이 시작되자 ‘이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 세상에는 쉬운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60여 명쯤이었다고 생각되는, 부담임으로 맡은 반의 아이들 하나하나에 대하여 일일이 신경을 써야만 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던 일로 치부되었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갔고 실습은 끝났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어떤 경로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종합잡지인 “신동아(新東亞)”에서 주관하는 교생들이 본 고교생 기질에 대한 좌담회 ‘너무 어리게 보지 마세요’(65년 6월 17일 신동아회의실)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기사는 “신동아”(동아일보사, 1965년 8월 특대호, pp.232~244.)에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 내가 발언한 부분을 중심으로 몇 곳만 발췌해 본다.(맞춤법에 맞지 않는 것과 한자 표기는 당시의 표현대로이기 때문임.)
鍾路에서 만난 弟子
李雄:…지난번 延高戰 때였읍니다. 高大선 高延전이라고 합니다만(웃음). 우리 延大생 전부가 서울운동장에서 「스크람」을 짜고 鍾路바닥으로 밀려나왔지요. 구호를 외치며 신나게 나왔지만 막상 鍾路2가쯤 오니까 맥이 빠져버렸어요.…『에라, 모르겠다, 이젠 걸어가야겠다』고 투덜거리며 「스크람」대열에서 빠져나오는 참인데, 高等學校학생 하나가 『선생님, 선생님』 부르며 격려를 했읍니다. 제가 나갔던 培明고등학생이었읍니다. 그 소릴 들으니 어디선지 모르게 기운이 솟더군요. 다시 「스크람」 속에 파고 들어가 뛰었지요. 나중 생각하니 『선생은 역시 요런 맛에 하는 거로구나』하고 혼자 웃었읍니다.
成:아이구, 눈물겹도록 보람을 느끼셨나봐.(일동 웃음)…
「오빠」와 「말대가리」
司會:교사들은 대개 학생들한테서 「닉‧네임」을 얻어갖고 있지 않습니까? 「닉‧네임」은 교사를 생각하는 학생들의 尊敬感의 강도를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어떻습니까?…
李雄:마음으로 싫어하는 교사의 「닉‧네임」은 학생들이 숨어서 흘낏흘낏 곁눈질을 하며 소근대 부르는데 반해, 좋아하는 교사의 「닉‧네임」은 敎師 앞에서 공공연히 부르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좋아하는 교사니까 별명도 좋게 붙였겠지만 어리광부리듯 아주 나타내서 부르거든요. 그리곤 생긋 웃고 도망쳐버리죠.
司會:그러니끼 李雄宰씬 「닉‧네임」으로 교사에 대한 尊敬度를 측정할 수 있다는 의견이신가요?
李雄:네 그렇죠.
父母에 대한 信賴度‧反撥度…
李雄:좋은 가정과 나쁜 가정의 차이를 어느 정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범주에 관한 문제겠죠. 대체적으로 저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沒理解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신뢰를 적게 받고 있다고 보는데요.
邊:일반적으로 李雄宰씨 견해가 정확하다고 찬성합니다.…
異性交際는 陽性化해야…
李雄:제가 보기에는 요즘 고교생들은 우리 때보다 훨씬 더 行動으로 나오고 있거든요. 제가 나갔던 학교의 한 학생이 무단 長期缺席을 했답니다. 집에 연락해보니 집에서는 학교에 꼬박꼬박 간다는 것이었어요. 나중 알아보니 어느 여학교 문전에 가서 한 여학생을 기다리느라고 하루 종일 서있다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담임선생님이 나서서 양쪽 부모를 만나 이대로 가면 두사람 다 공부도 못하고 신세 망칠테니 정상적인 교제를 시켜주는 것이 좋겠다해서 부모들도 승낙을 했대요. 그러니까 그 학생도 다시 마음을 잡아 공부를 잘했다는 겁니다.
두통거리는 娛樂 映畵관람…
李雄:…단돈 20원으로 映畵 두 편을 동시에 보고 나오는 극장 관람이 제일 많지요. 일전 실습기간 동안에 당한 일인데요, 월요일 아침 자습시간에 교실에 들어가서 잘놀았느냐고 인사를 해주니까…한 학생이 일어나서 대답하길, 『어제 일요일 하루동안에 극장엘 세 군데나 가서 보았어요』하는 거에요. 문득 가슴을 찌르는것이 있었습니다.
李鍾:…요즘엔 단속이 너무 풀린 것 같더군요. 극장엘 들어가보면 맨 고등학생 투성이라, 아무리 놀 곳이 없다 하더라도 생각할 문제라고 느꼈어요.
邊:…왜 「아테네」극장이라고 학생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극장이 있지않아요? 학교측에선 그 극장 외엔 어떤 극장이라도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된다는 것인데, 지금 문교부 방침으로는 학생입장환영이라고 쓴 극장에는 들어가도 좋다고 되어 있거든요.…
進學觀은 社會現實的…
李雄:進學이란 것을 염두에 두고 成績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어느 여학교 신체검사에서 聽覺 「테스트」를 했대요.…어떤 학생 하나는 아무리 멀리 있는 곳에서 소리를 내도 들린다고만 하더래요. 그래 선생님이 …가까운 곳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났을 때 고막이 터질 염려가 있으니까 좋지 않다고 해도…다음엔 귀 가까이에서 전혀 소리를 내지 않고 들렸느냐고 물으니까 역시 들린다구 했다는 거에요. 전 이렇게 성적에만 몰두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강의중의 「테크닉」…
邊:제가 처음 교실에 들어가서 30度 角度로만 보았가가-물론 예쁘장한 여학생이 앉아있었죠-투서를 받고는 방법을 고쳤읍니다. 처음 썩 들어가면 班 전체를 보고, 그리고 강의가 시작되면 고루고루 照明이 잘 가도록(웃음) 세심한 配慮를 했었읍니다.…
李雄:애초부터 눈의 위치에 관해선 상당히 조심하고 고루 고루 보느라고 힘썼읍니다. 학생들의 主義喚起를 위해 교실 안을 巡視하는 방법도 생각했었으나 전 그게 오히려 교실 분위기를 산만하게 만들 염려가 있어 쓰지 않았어요.…그래 전 시간중이더라도 「열중 쉬엇」「차렷」구령을 불러 희미해진 정신을 깨우려고 했읍니다. 처음 들어가서 몇번 그러니까 친밀감도 오고 좋더군요. 質問은 반드시 끝나기전 한 10분동안 시간을 따로 두어 받아서 이상한 질문으로 선생을 괴롭히고, 학생들을 웃기려는 계획을 봉쇄해 버렸었죠.
도리어 배운 點 많은 人生實習
司會:오랫동안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습니다. 끝으로 여러분들이 나갔던 학교에서 특히 좋았다고 여겨져서 다른 학교서도 본 받았으면 하는 점이…있으면 해주십시오.
李雄:제가 나간 학교 학생들은 國旗에 대한 경의표시가 아주 잘돼 있어서 상학시간이나 하학시간에 꼭 國旗拜禮를 하더군요. 우리나라처럼 국기에 대한 관념이 적게 들어박힌 곳도 드물텐데, 그 점에서 정말 좋게 보았읍니다. 또 학교 내에 修養室이라는 것이 있어서 비록 停學處罰을 받은 학생일지라도 반드시 등교는 하고, 그러니까 수양실 안에서 공부를 하게 하는 건데, 그 점도 좋다고 생각했읍니다. (16.8.7.21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