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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문화 체험기8) 돈방석에 앉았는데도 방어회 맛을 모르다니…

거북이3 2017. 2. 13. 18:33


2.5.돈방석에 앉았는데도 방어회 맛을 모르다니….hwp



     (탐라 문화 체험기8)

                    돈방석에 앉았는데도 방어회 맛을 모르다니…

                                                                                                                                            이 웅 재

   우리가 타고 있는 렌트카는 또 다른 제주의 모습을 보기 위하여 해안도로를 달리고 달렸다. 주로 우측으로는 바다, 좌측으로는 건물들이 보였는데, 한 마디로 실망이었다. 바다도 제주 바다 같아 보이지 않았고, 건물도 속된 말로 너무 ‘후졌다’. 우거진 나무숲과 어울려 아기자기한 모습까지는 못되더라도 나름대로 아늑한 느낌을 기대했던 내가 잘못이었다.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이지만 작년 봄에 다녀왔던 크로아티아의 해안가에 있는 집들은 동화 속의 나라 같아 보였었다. 우리는 왜 그렇게 못 하는 것일까? 그러고서도 관광으로 외국인들의 돈을 끌어 모으겠다고? 염치가 코치 아닌가?

   그런대로 제주 신창 풍차해안도로를 달려 ‘한국남부발전 국제풍력센터’를 찾아갔다. 배진성의 ‘바람의 왕국’이란 시비가 반겨준다.


   바람의 왕국이 있다.

   파도 발자국으로 건너온 바람

   제주의 돌담들은 모두가

   바람의 길이고 바람의 강이다.


   거기서 바다 쪽으로 나 있는 달구지 하나 지나갈 만한 길을 따라 바다로 가다 보니, 철다리가 나온다. 거기서 보는 풍경은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이었다. 바다 위에 일렬로 늘어선 풍력발전기, 그것은 분명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발전기로 갈 수 있는 길은 바다 위에 건설된 철제 다리였다.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부는지 그 다리마저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러한 다리 위를 가다 보면 왼쪽으로 무지무지하게 큰 물고기 한 마리가 거친 파도에 물결 위로 불쑥 솟아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인공 철제 물고기다. 놈을 배경으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서 목토시를 끌어올려 코와 귀까지 가렸더니, 사진 속의 나는 어찌 보면 ‘밤손님’의 모습을 닮았다. 보이는 건 파도뿐인데 훔쳐갈 무엇이 있었는지….

   풍력발전기는 바람개비를 닮은 3개의 날개를 달고 있었다. 바로 밑에서 본 풍력발전기는 한 마디로 어마어마하게 컸다. 해상 125m, 날개 지름이 91m란다. 대관령을 지나며 본 풍력발전기는 그 건설비가 한 대에 30억 정도가 된다고 들었다. 바다 위에 건설하려면 육지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지 않았을까? 좀더 자세한 것을 알아보고 싶어도, ‘한국남부발전 국제풍력센터’는 일요일이라서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철제 다리를 거쳐 풍력발전기 아래에 가서 그 상부를 올려다보면서 사진을 찍는데, 어이쿠, 발전기가 내게로 털썩 쓰러지는 듯한 느낌에 현기증이 일었다. 저쪽 끝으로는 등대도 하나 있었으나, 너무나 세찬 바람 때문에 그곳까지 가볼 엄두가 나질 않아서 그냥 되돌아오고 말았다.

   해는 벌써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다시 ‘민생고’를 해결할 시간이 되었다. 해서 우리는 다시 달렸다. 달리고 달려서 간 곳은 최근 군사기지로서도 말이 많았던 대정읍(大靜邑)에 있는 항구 ‘모슬포(摹瑟浦)’였다. 우리나라 최남단의 군사 기지로 일제시대부터 비행장이 있던 곳이다.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馬羅島)와 도내 최대 고인돌 군락지 가파도(加波島)로 가는 배가 뜨는 곳이기도 하다. 모슬포의 ‘모슬’은 한자로 ‘모슬(摹瑟)’이라 표기하지만 그것은 소리만 따온 것으로, ‘모슬’이란 ‘모래’의 제주도 방언 ‘모살’이 변한 것이다. 그러니까 ‘모슬포’란 ‘모래가 있는 포구’란 뜻이다. ‘마라도’의 지명 유래는 불분명하고, 가파도는 ‘가파리(가오리)’처럼 생겨서 붙은 명칭이라고 한다.

   우리가 가는 곳은 횟집으로 유명한 ‘돈방석식당’이었다. 날은 이미 저물었는데, 식당에는 손님들이 얼마나 많은지 본관 앞쪽에는 주차할 공간이 없어서 빙빙 돌아 바닷가의 가게 뒤쪽에 간신히 차를 대고 별관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비교적 자리가 넉넉했다. 우리는 요즘 한창 제철이라는 방어회를 시켰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접시 중에는 우리가 흔히 볼 수가 없었던 것도 있어서 이름을 물었더니 ‘양애’라고 하였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원래의 이름은 ‘양하(蘘荷)’였다. ‘양애’는 제주도 사투리였다.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 박토(薄土)에서도 잘 자라는 꽃 나물로서 줄기와 잎이 생강과 흡사한 놈이었다. 소속도 생강과였다. ‘가초(嘉草)’라는 이명도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에게 매우 이로운 나물이라 생각되었다. 특히 여성들에게 좋아서 월경불순이나 백대하에 좋다고 하며 혈액 순환을 도와주는 약효가 있는 나물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생명력이 강하여 아무 곳에서나 잘 자랄 뿐만 아니라, 그 냄새 때문에 근처에는 일절 뱀이 얼씬거리지 않는다고 하니, 비교적 뱀이 많은 제주도에서는 나름대로 유용한 나물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방어회가 나왔다. 제철의 회이기도 하지만, 부드러운 육질이라서 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매우 선호하는 음식인데, 회의 참맛을 모르는 나는 ‘별로’였다. 젊어서 충무(지금의 통영)과 부산에서도 각각 1년 정도씩 살아 보았으면서도 회의 맛과 친해지지 못하였으니, 내 입도 어지간히 짧은 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어쨌든 나와 내 아내는 방어회와는 친해지질 못하고 어정쩡한 ‘양애’ 따위에만 젓가락질하곤 하였다.

   식당을 나오면서 아들이 말했다.

   “회, 많이 먹었어요.”

   그 말을 받아 사위가 말했다.

   “이처럼 방어회를 배가 터져라 먹어본 적은 없었어요.”

                                              (17.2.5. 15매, 사진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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