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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미래 그리고 꿈’을 읽고

거북이3 2017. 6. 18.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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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의 미래 그리고 꿈’을 읽고

                                                                                                                         이 웅 재

  처음은 평범했다. 좀더 독자를 끌어 잡아당기는 힘이 있었으면 싶었다. 그런데 1/3쯤 읽다 보니 ‘쿵~’ 하는 울림이 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안사돈의 죽음, 작은며느리의 전화 얘기를 읽으면서도 눈치 채질 못했다. “어머니가….” 하는 대화를 읽을 때까지도 반전의 낌새를 전혀 예상하질 못했다. 아니, “이럴 수가! 내 참,”에서도 왜 그렇게 놀라는 것일까, 궁금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하는 표현에서야 정말로 믿을 수 없는 ‘반전’을 실감했다. 충격 요법이라고나 할까? 갑자기 글 전체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안사돈은 갔지만, 독자들은 남았다.

 

 글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노인의 미래란 오직 죽음이며, 꿈은 어떻게 죽느냐의 문제”라는 표현에서는 역시 ‘끌어 잡아당기는 힘’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죽음과 만나는 순간까지 꿈을 꾼다는 것은 희망을 잃지 않는 미래가 있다는 것”으로 오면서, 그 꿈이 ‘어떻게 죽느냐의 문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때의 꿈은 “늙어가는 과정에서도 정신을 올바로 가지고 육체가 허락하는 한 부지런히 움직이며 자신의 위치에서 가족이나 이웃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며 무엇이라도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하는 것으로 바뀌어져 있던 것이다.

 

 그리하여 결말부에 가서 얘기되는 “아, 내가 이 일의 매듭을 짓기 위해 이제껏 살았었구나!” 하고 보람을 느끼게 되는 삶으로, ‘노인의 미래 그리고 꿈’은 아주아주 멋진 마무리가 되었으니, 이것이 우리 김영의 선생님의 필력이 아닐까 하고 새삼 느껴 보았다.   (2017.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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