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카 꽃 [백화제방(百花齊放) 25]
유카 꽃 [백화제방(百花齊放) 25]
이 웅 재
볼 일이 있어 서현동 동신아파트 옆 성남대로변의 작은 공원을 지나가는데 큼지막하고 하얀꽃이 거꾸로 주렁주렁 달려서 매우 화려하게 보이는 것이 있어 가까이 다가가서 한참동안을 관찰해 보았다. 나중에 집에 와서 인터넷을 뒤져 보았더니 유카 꽃이었다. 유카(Yucca)는 북미 원산의 백합목 용설란과(龍舌蘭科)의 상록 관목으로, 원산지는 북아메리카의 남부지방이다. 관상용으로 화분에 키우는 것은 줄기가 1개 또는 몇 개로 갈라지는 것도 있으며, 키는 1∼4m이다. 통상 길거리나 야생에서 키우는 것은 새로 난 잎 가장자리에에 1mm 정도의 흰 테가 생기는데, 이것이 나중에는 실 처럼 쪼개져서 달려 있어서 ‘실유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실유카에 비해서 줄기가 있고 잎에 실이 없는 유카는 ‘실 없는 유카’라고 하는데 이 유카는 보통 가정에서 관상용으로 키우는 종류다. 이 글에서는 서술하는 것은 주로 실유카다. 한국에는 ‘실유카’와 ‘실 없는 유카’의 2종이 1910년대에 들어왔고, 이후 10여 종류가 더 들어왔다고 한다.
유카를 관목이라고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실유카는 기후 관계로 크게 자라지 못하여 줄기가 거의 없고, 뿌리에서 바로 잎이 나는 로제트(rosette) 식물이다. 뻣뻣한 잎은 칼 모양으로 밑동에서 모여 나며 바소꼴이고 사방으로 퍼진다. 빛깔은 청록색으로 나비 5cm 내외, 길이는 1m 내외다. 용설란과 식물들이 대체로 잎끝이 뾰족하지만, 유카는 특히 가시처럼 잎 끝이 날카로워서 잘못하다가는 찔려서 다칠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유카 꽃의 꽃말은 ‘위험’ 또는 ‘접근하지 마세요’란다.
꽃은 봄과 가을 두 번 피기도 하며 보통은 여름에 피어 가을까지 가는데, 1~2m 안팎의 꽃대에 길이 약 4cm쯤 되는 6장의 꽃잎을 가진 원추꽃차례[圓錐花序]의 방울처럼 생긴 흰 꽃이 많이 달린다. 특이한 점은 꽃이 아래쪽을 향하여 반쯤 벌어진 형태로 무리져 피어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수술은 6개, 암술이 1개이며, 화피(花被: 꽃덮개)는 두껍고 노란색을 살짝 띤 흰색으로 6개이다. 열매는 대개 맺지 못하며, 모양은 긴 타원형이다. 열매가 별로 맺지 못하므로 번식은 종자나 포기나누기로 한다.
건국대 원예학과의 손기철 교수의 ‘신비한 생물창조섭리 중’의 ‘매개 곤충이 죽는 상호진화?’와 “네이버 백과”에 의하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꽃은 암술이 수술보다 언제나 낮은 위치에 있으며, 수술의 꽃가루를 받아야 할 암술의 주두(柱頭: 암술머리)가 컵을 엎어놓은 모양이라서 스스로는 수분(受粉:꽃가루받이)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것을 위해 매개역할을 하는 곤충이 유카나방의 암컷이다.
유카나방은 유카의 꽃이 필 때 우화(羽化)한다. 이 암나방은 해가 질 무렵 수술의 꽃밥에서 꽃가루를 입언저리에 잔뜩 묻혀 공처럼 말아가지고 나온다. 암나방의 입 부분은 이 역할에 알맞도록 특이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수술의 꽃가루를 묻힌 암나방은 다른 꽃으로 날아가서 그 꽃의 암술 자방(子房: 씨방)을 자신의 산란기로 푹 찔러 4~5개의 알을 낳는다. 그리고는 묻혀 가지고 온 동그랗게 말린 끈적끈적한 화분(花粉)으로 뚫린 구멍을 막는다.
이렇게 하여 이 유카 꽃에는 약 200여 개의 씨앗이 영글게 되는데, 그 중의 절반쯤은 유카나방 애벌레의 먹이가 되고 나머지가 새로운 유카로 태어날 수 있는 씨앗으로 남는다. 놀랄 만큼 정교한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유카 꽃과 유카나방은 신비롭기 그지없는 상호공생을 하는 것이다. 유카는 다른 곤충에 의해서는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유카나방 또한 다른 식물을 이용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날씨가 추워서 유카나방이 살지 못한다. 때문에 씨앗을 맺지 못하게 되어 포기나누기나 꺾꽂이로 번식을 하는 것이다.
집에서 키우는 ‘실 없는 유카’는 용설란과 식물의 특징이지만 물을 많이 주면 잎 끝이 마른다든가 나무둥치 속이 썩어 들어갈 수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노지(露地)에 심어 놓는 ‘실유카’는 생명력이 강하여 특별히 관리를 하여 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
유카는 멕시코 북쪽과 미국 남서부지역의 건조한 지대에 거주하는 인디안 부족들의 생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식물이었다고 한다. 그 식물의 과일, 꼬투리, 꽃잎, 잎, 심지어 뿌리들은 음식으로 이용되기도 했고, 움집이나 의자 등 건축 재료, 비누나 발효주 제조 등의 재료로도 쓰여 왔다고 한다. 또한 관절염, 고혈압을 비롯하여 헬리코박터 균에 대한 항균작용, 콜레스테롤 수치의 감소 등을 위한 의약제로서도 유용하게 이용될 뿐만 아니라, 음료용 천연 기포제로도 쓰이며, 청국장이 숙성할 때 넣으면 냄새도 줄어든다고 하니 매우 고마운 식물이라고 하겠다.(http://8877.co.kr/report/175375 참조)
그런가 하면 잎 부분에서 실처럼 생겨져 나오는 것으로는 굵은 실을 만들어 로프(Rope)를 만들기도 하고, 모자, 신발, 담요, 천막 등의 생활용품을 만들어 사용하였다고도 한다. 그리고 활짝 핀 꽃은 따서 시들기 전에 씻어 물기를 빼고 담금주를 꽃잎이 충분히 잠기도록 붓고 설탕을 넣어 3개월 이상 숙성시키면 아주 근사한 유카 꽃술이 된다고 한다. 숙성시킨 꽃술은 술을 걸러낸 다음 또다시 1개월 정도 묵힌 다음 마시는 것이 좋은데, 1년 이상 장기간 보관하여 두었다가 마시면 아주 좋다고 하니(http://lasvegaskim.com/Etc_Wine_19.htm 참조), 한번쯤 유카주를 담가 먹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길 가에 관상용으로 심어 놓은 유카 꽃을 함부로 딸 수가 없어 이만저만 유감이 아니다. (16.9.5. 15매, 사진 1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