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문화 체험기 15) 크로아티아어의 아버지의 왼쪽 엄지발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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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문화 체험기 15)
크로아티아어의 아버지의 왼쪽 엄지발가락
이 웅 재
지나는 골목길의 건물들을 보니 가끔 벽에 그려진 나치 문양(卐)이 보였다. 나치는 ‘제2의 로마제국’을 자칭하였을 정도로 번창하였었고, 이곳에까지도 그 흔적을 남겨 놓은 것이었다. ‘卐’은 하켄크로이츠(Hakenkreuz)라고 하는데, 독일어로 ‘하켄(Haken)’은 ‘갈고리’, ‘크로이츠(kreuz)’는 ‘십자가(Cross)’, 그러니까 ‘하켄크로이츠’는 ‘갈고리 십자가’라는 뜻이란다. 우리나라의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卍’(절 만) 자와 비슷해서, 가끔 ‘卍자 목걸이’를 하고 유럽 여행을 하던 사람들이 뜻밖의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는데, 그 형태는 정반대의 모습을 띤다. 다분히 자의적인 해석이기는 하지만, ‘절 만’ 자의 첫 획은 ㄱ과 ㄴ을 합쳐 놓은 꼴이라서 순행적(順行的) 구성인데 반하여, 나치 문양은 ㄴ과 ㄱ을 합쳐 놓은 역순행적(逆順行的) 구성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자형(字形)을 놓고 보아도 나치 문양은 그것을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다른 대상들을 파괴하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라서 반사회적인 형상물로 인식될 수밖에는 없다. 그 표지들은 골목 군데군데에서 만나볼 수 있는 별 볼품없는 쓰레기통에다가 처박아야만 할 형상물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건물 벽에는 커다란 스테이플러(stapler: 서류 따위를 철하는 철사침)로 박아놓은 듯한 모습도 볼 수가 있었다. 벽의 무너짐을 조금이라도 방지하기 위한 쇠침이라고 했다.
궁전 안에 스핑크스상(像)이 있는 곳은 황제가 시민을 만나던 곳으로, 예전의 로마황제는 이집트까지도 지배했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흔적이란다. 그리고 계단 여기저기에는 방석이 놓여 있는 곳들이 있었는데, 그곳에 앉으면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주문(注文)을 받으러 온다고 하는 곳이니 함부로 앉아서는 안 될 곳이었다.
북문 바깥쪽으로 나오니 아름다운 시계가 있는 건물이 보였다. 그 건물 2층인가에 “꽃보다 누나”에서 김자옥과 윤여정이 숙박을 했다고 한다. 그 아래 오른쪽 노천카페에서는 윤여정이 양말까지 벗고 커피를 마셨다고 하여 현지 가이드들이 그녀가 일류 배우가 맞느냐고 의심스러워들 했다고도 한다.
그곳을 지나서 골목으로 들어가니, 거기에는 좌우로 신발가게가 많았다. 나영석 PD가 이곳을 TV에 방영한 이후로는 대박이 터졌다고 하여, 나영석이 많은 사람들을 벌어 먹인다는 말이 나돌 정도가 되었단다. 흠이라면 이 골목에는 특히 개똥이 많았다는 점이다. 관광객들을 계속 끌어들이려면 이런 개똥쯤은 깨끗하게 치워주어야 할 일이지 싶었다.
황금의 문이라는 북문 밖으로 나오니 조그마한 공원이 나왔고 그 한쪽에는 뾰족한 첨탑의 아르니르(Arnir) 예배당, 그리고 그 앞쪽으로는 4.5m나 되는 거대한 그레고리 닌(Gregory of Nin)의 동상이 보였다. ‘닌’은 성이 아니라 달마티아에 있던 지방 도시의 이름이란다. 그는 10세기에 활약한 크로아티아의 주교로서 크로아티아어의 사전을 편찬하고 라틴어가 아닌 크로아티아어로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하여준 분으로 ‘크로아티아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 동상의 왼쪽 엄지발가락은 유난히 황금색 빛이 반들반들하였는데, 그 발가락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 때문이라고 하기에, 나도 그 발가락을 한 번 만져 보면서 찰칵! 사진 한 컷을 남겼다. 그래서일까? 발칸 여행 이후에는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려가는 느낌이었다.
그곳을 떠난 후에는 어느 골목 모퉁이의 “The 허브 기념품샵”엘 들렀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가게였다. 상점의 남성 직원 한 사람이 아주 열심히 상품 선전을 하고 있었다. 크로아티아에는 많은 허브가 자생한다. 예전에는 그 허브로 여러 가지 약품을 만들어 병을 치료하곤 했지만, 기독교 쪽에서는 이교도의 처방이라고 하여 그러한 치료를 하는 사람들을 종교재판에 회부하는가 하면 때에 따라서는 잔인하게 죽이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널리 알려지지 못했던 것인데, 최근 공산화가 풀리면서부터 라벤다와 같은 크로아티아의 허브로 만든 화장품이나 와인 등이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기념품샵에는 천연 허브제품이나 대마씨오일 등이 있었다. 남성 직원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불멸의 꽃’이라고 한다. 여성분들은 그 직원의 설명에 귓구멍이 나팔통만큼 커져서 열심히들 듣고 있었지만, 나는 할 일이 없어 가게 내부를 이리저리 살펴보기만 하고 지냈다. 한쪽 모서리에는 돈나무(금전수) 화분도 보여서 역시나 한국사람 티가 나는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한국인들의 상점에는 어디를 가든지 이 돈나무 화분이 없는 곳이 별로 없지를 않던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영업자 빚 1억1300만원(가구당 평균), 직장인의 1.5배’라는 기사(17.3.5.중앙일보 10면)가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돈나무 화분의 효력은 ‘별로’이지 싶었다. 기념품샵에서는 모든 돈을 다 받지만, 딱 한 가지 안 받는 것이 있다는데, 그것은 바로 ‘위조지폐’라고 했다.
“The 허브 기념품샵”에서 나와 남문 쪽으로 가는 골목에는 ‘ZICKO’라는 이름의 이발소가 문을 열어 놓은 채 머리를 깎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얼핏 들여다본 그 풍경은 우리나라 1970년대(?)의 이발소 풍경과 흡사해 보였다.
그곳을 지나 어느 담벼락 옆에 심겨져 있는 우리나라의 사철나무를 닮은 나무가 있어 무슨 나무냐고 물었더니, ‘돈나무’란다. 그런데 이 돈나무는 기념품샵에서 보았던 돈나무와는 달랐다. 이 나무에는 벌, 나비보다는 파리, 등에 같은 지저분한 곤충들이 모여들어서 ‘똥나무’라고 부르던 것을 그 이름을 순화해서 부르는 이름일 뿐이라고 하였다. 장사하는 집에서 돈을 잘 벌게 해 준다고 해서 키우는 ‘돈나무’와는 다른 의미의 ‘돈나무’였던 것이다. 이름이 같다고 해서 같은 나무는 아니었다. 세상사 모든 일도 다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7.6.26.월. 15매, 사진 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