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문화 체험기 4) 불탄 집,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근친상간
7.26. 대마도 문화 체험기 4. 불탄 집,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근친상간.hwp
(대마도 문화 체험기 4)
불탄 집,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근친상간
이 웅 재
이제 버스는 만제키휴식광장을 뒤로 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따라서 가이드의 입도 바빠졌다. 히타카츠[比田勝]항이 있는 북섬이 이즈하라[厳原]항이 있는 남섬보다 넓이는 2배 정도이지만, 인구는 그 반대로 북섬에는 1만여 명이 살고 있는데 반하여 남섬 주민이 2만여 명이라고 한다. 대마도 전체의 인구 중 86세 이상이 46%요, 평균 수명이 98세라고 하니, 놀라웠다. 그래서 대마도에는 병원이 별로 없다고 한다. 팔팔한 노인네들이 사는 곳에서 병원으로 먹고 살려면 힘들지 싶기도 하다. 역시 공기 좋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수명이 긴 모양이다. 63세부터인가 고령연금 60만 원 정도가 나오고, 혈압이나 당뇨가 있는 사람에게는 정도에 따라 더 나온다고 한다.
그 말에 대만으로 와서 살까 하는 생각들을 가지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듯싶지만, 이웃과의 왕래가 거의 없는 생활을 배겨낼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성싶었다. 가이드는, 일주일 정도만 살아보는 것은 괜찮을 것이라는 말을 더 보탠다. 게다가 이곳은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서 웬만한 사람은 견뎌내기가 힘들 것이란다. 집에 어린애가 있는 분은 여기서 기저귀를 사 가면 좋다는 말도 했다. 비가 많은 곳이다 보니까 그에 대비하기 위해서 기저귀는 품질이 아주 좋다는 것이었다. 와서 살려면 2층에서 살라고 한다. 1층은 어둡다는 것이다. 나는 대마도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생각도 없고, 기저귀를 사다 주어야 할 손주도 없어서 큰 흥미가 느껴지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새로운 얘기이다 보니 한쪽 귀로는 듣고 한쪽 귀로는 흘려버리면서 지냈다.
그런데 차창 밖을 바라보니 왼쪽 언덕배기에 여러 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 중 전망도 아주 좋은, 말하자면 명당이지 싶은 자리에 불탄 집 하나가 있는 것이 보였다. 가이드는 자주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이니까 혹시 하고 물어보았다.
“저기 불탄 집 하나가 있는데, 꽤 오래 된 것 같은데도 그냥 놔두고 있네요.”
그랬더니, 가이드 신이 났다. 저 집 불탄 것은 이곳 신문에도 났던 유명한 일이라고 하였다. 원래 그 집에는 부녀 두 사람이 아주 단란하게 살고 있었단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딸이 이 마을에 편지를 배달해주는 우체부와 정분이 나서 바깥으로 나돌기 시작하게 되었단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부녀는 서로 육체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던 사이였고, 그래서 그 아버지가 우체부를 살해했고, 어느 날 일부러 방화를 하여 딸과 함께 불타서 죽고 만 것이다. 집이 불에 타던 날에는 그 집에서 부녀가 서로 크게 고함을 지르며 싸우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고 했다. 그런 사연 때문에 그 집은 아무도 손보는 사람이 없어 저렇게 계속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런 줄 알았으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둘 일인데, 핸드폰을 들이대었더니 버스는 벌써 새로운 산모롱이를 돌고 있지 않은가?
사실 가이드가 신이 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그녀는 문학과 음악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해서 한 동안은 문학 강좌가 이어져 나갔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대마도에서 살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유명한 작가들은 대부분 대마도 생활을 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하루키가 쓴 『해변의 카프카』는 근친상간을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 카프카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다가 15세에 가출을 한다. 어머니는 그가 어릴 때 누나를 데리고 집을 나가 버렸다. 나중 카프카는 어머니 사에키와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꿈속의 일이기는 하지만 누나인 사쿠라와도 관계를 맺는다.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해변의 카프카』는 두 권, 합쳐서 900페이지 정도가 되는 장편이다. 그의 소설뿐만 아니라, 일본의 소설들은 대체로 근친상간을 많이 다룬다. 이상하게도 일본인들은 그러한 내용에 흠뻑 빠지는 기질이 있다고 하겠다.
한창 문학 강의를 하더니 버스가 멈춰 선다. 금석성[金石城: 가네이시죠]에 도착한 것이다. 금석성은 대마도 영주 종가(宗家)의 집정(執政) 거점이다. 이정표를 따라 가니 금석성 노문(櫓門: 야쿠라문)이 나온다. ‘노문’이란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망루(望樓)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노문을 지나 언덕길을 오르다 보니 숲이 우거진 속에 ‘막부사자…숙관적(幕府使者…宿館跡)’이라 쓴 표지석이 보인다. 사자들이 머물렀던 곳마다 이러한 표지석들이 세워져 있다고 했다.
좀더 올라가니 금석성 정원의 왼쪽으로 ‘덕혜옹주 결혼 봉축비(德惠翁主 結婚 奉祝碑)’가 보였다. 19세에 일개 대마도 번주 아들 종무지(宗武志)와 도쿄에서 결혼하여 살면서 이곳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조선인 단체에서 세웠던 비석인데, 정신적인 갈등으로 두 사람이 합의 이혼을 하자 주민들이 쓰러뜨려 방치하다가, 2001년 부산~쓰시마 직항선박이 취항하자,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인근 160개의 상점주들이 성금을 걷어 다시 세운 것이란다.
내려오다 보니 오른쪽으로는 ‘대마역사민속자료관’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는데, 길을 막아 놓았다. 그리로 올라가면 ‘조선통신사비’와 ‘고려문(高麗門)’이 있었다는데, 최근 화재가 나는 바람에 지금은 개관되고 있지 않아서 매우 아쉬웠다. 이곳에는 고려청자와 불상 그리고 대장경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고 한다. 고려문은 금석성 성안에 있던 대마도주가 거처하던 곳의 정문이었다. 원래 이름은 영은문이었으나, 조선통신사가 이 문을 통해 들어오면서 고려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고려문 바로 맞은편에는 1992년 2월 우리나라에서 세운 ‘조선통신사비’가 세워져 있다고 하는데 볼 수가 없어서 매우 아쉬웠다.
버스가 있는 곳으로 다시 모이는데, 옆의 석축에 낙서들이 있어서 보니 외손녀의 이름과 같은 ‘서영’이가 보여서 한 컷 찰칵!하기도 하였다. (17.7.26. 15매 사진 10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