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거북이 X) 딸기 쨈통
(거북이 X)
딸기 쨈통
이 웅 재
兄은 덜렁이었다. 손이 커서 무어든 한꺼번에 듬뿍 사 들인다거나 힘겨운 일을 시작해 놓고는, 나중에 뒷 수습을 흐지부지해 버리는 성격이어서, 가끔 둘째이자 막내에게 핀잔을 받기가 일쑤였다. 그런 막내는 또 꼼꼼이였다. 자신의 말을 빌자면 치밀한 두뇌의 소유자인데 아무래도 그건 꼼꼼하다는 정도 이상의 좋은 말로는 표현해 주기가 뭣한 일이었다. 대개는 맏이가 꼼꼼이요, 막내가 덜렁이가 되는 게 상례인데 그들은 좀 특이한 형제간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맏이는 며칠 전만 해도 딸기를 포식, 포식, 포식하도록 사왔었다. 온 식구가 먹다먹다 그래도 남아나서 막내가 “미련스럽게 그렇게 많이 사 왔느냐”는 말을 뱉어냈고, 맏이는 미안쩍었던 모양인지 멀뚱하니 듣고만 있었고, 맏이에게 새로 시집온 깔끔이는 제 서방 욕먹는 게 안되었던지, 시동생 막내를 조금 흘기는 듯하다가 문득 친정 엄마의 시집살이 잘 하라던 말을 생각해 내곤 그만 눈을 사르르 내리깔았는데 마음속은 개운찮은 눈치였다. 그녀는 그런대로 서방 위하듯 남은 딸기를 챙겨서는 어디선지 미제 쨈통을 하나 찾아내어 그 속에 집어넣고 정성스레 설탕까지 쳐 두는 것이었고, 덜렁이는 그게 대견스러워서 뚜껑을 으스러져라 하고 힘껏 돌려 닫아 깔끔이의 화장대 아래 서랍 속에 깊숙이 넣어 두었다. 그곳은 휴지 다발이며, 커피, 주스, 설탕 등을 넣어두는 곳으로, 바로 방문과 마주 통해 시원해서 그 앞쪽은 항상 깔끔이가 누웠다 앉았다 하고 지내는 명당자리였다.
여름철 날씨는 매일 달랐다. 그저깨보다 어제가 더 덥고, 어제보다 일요일인 오늘은 더더욱 더웠다. 덜렁이는 휴일이랍시고 깔끔이를 데리고 외출을 했다가 점심때쯤 집으로 돌아왔다. 오다가 깔끔이는 점심 준비를 위해 시장엘 들렀고, 막내는 친구 집에라도 갔는지 집에 없었다. 집안에 들어선 덜렁이는 향긋한 냄새에 코를 벌름거렸다. 딸기 냄새였다. 역시 제 색시가 귀여운 생각이 들었다. 자랑스런 마음으로 계속 코를 벌름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순간, 그는 놀랐다. 화장대 서랍 앞쪽에 딸기병이 떨어져 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막내 짓이려니 했으나 어머니 말씀이 막내는 그 방에 얼씬도 않고, 일어나자마자 점심때 밥 먹으러 들어오겠다며 나갔다는 말을 듣고는 부쩍 의심이 들었다. 혹시, 도둑이 들어왔던 게 아닐까?
어머니도 밖에 나갔다 왔다는 것이고, 장롱 속엔 금팔찌며 다이아 반지 등 값진 것이 수두룩한데….
그는 정신없이 장롱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옷가지들을 집어 던지며 한참을 씩씩대며 뒤져봐도 없다. 눈앞이 캄캄했다. 날 보고 물건을 너무 듬뿍듬뿍 산다고 돈 헤프다더니, 그래 집도 비우고들 돌아만 다니니…. 어디까지나 자기는 제일 먼저 집을 나섰으니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화장대 밑 쨈통을 넣어 두었던 서랍을 뒤져 보려할 때 막내가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형수, 밥 줘.”를 외치던 막내는 형의 방이 엉망진창인데 그만 어안이 벙벙해져 버리고 말았다. 형에게 지청구하는 듯한 사건 전모의 얘기를 듣고는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곧 그의 지론을 펴기 시작했다. “도대체 형은 너무 덜렁이란 말이야. 무슨 일이든 제일 중요한 건 현장 보존이란 말야. 다 흐트러버렸으니 신골 해도 어떻게 조살 하지?” 덜렁이가 생각해도 역시 맞는 말이었다. 자기는 아무래도 덜렁이란 생각에 뒤지기를 그만하고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막내는 연신 신이 나서 떠드는 품이 귀중품 잃은 것보다도 제 이론에 신명이 난 태거리였다.
그때 깔끔이가 땀을 흘리며 돌아왔다.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쨈통이 깨진 것을 보더니, 아깝다는 듯이 한 마디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쯧쯧, 아까워라. 병마개를 너무 꽉 닫아둔 생각을 미처 못 했더니 깨스 때문에 터져 버렸네요. 이왕 터져 버린 거 치우시지나 않구…. 다른 데에도 온통 딸기 목욕을 시켜 버렸군요.”
그녀는 서방이 마지막으로 뒤지지 못한 쨈통이 들었던 서랍을 열고 보석 상자들을 꺼내 깨어진 유리를 털어내고 딸기 물을 훔쳐내는 것이었다. 그 꼴을 보고 막내는 다시 무슨 말인가 이치에 합당한 말을 곰곰 생각하고 있었고, 덜렁이는 후유! 한숨을 내쉬었다. 깔끔이가 자기와 외출을 하지 않았더라면 병이 깨지는 통에 그만 유리조각에 다치지나 않았을까 생각을 하니, 잔등에 식은땀까지 주르르 흐르는 것이었다. (17.10.6.입력, 12매)
(프린트본 ’73 景城 창간호[DerJunge]에 ‘특별기고 이웅재 선생님’이라고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