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봉(玄峰) 선생의 3모작 인생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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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봉(玄峰) 선생의 3모작 인생을 기원하며
이 웅 재
‘망백(望百) 문집’이라는 말, 조금은 생소하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만 60세인 환갑(還甲)까지 살면 장수했다고 환갑잔치를 거창하게 하곤 했는데,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라는 ‘망백’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통계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Daum Tip’에 의하면, 1930년대의 평균 수명이 32세, 40년대에는 33세, 50년대까지도 40세를 넘지 못하였다고 한다. 영유아의 사망이나 결핵으로 인한 사망, 전쟁에 의한 사망 등이 평균 수명을 낮추는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70년대에 들어와서야 평균수명이 환갑 정도가 되었고, 그 이후로는 괄목할 만큼 계속 늘어나서, 2015년 11월 5일의 조선일보를 보면, 81.8세에 이르렀다고 한다.
장수한다는 것, 그것은 축복이다.
‘돌잡이’라는 말이 있다. ‘첫돌에 돌상을 차리고 아이에게 마음대로 골라잡게 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흔히 실ㆍ돈ㆍ붓ㆍ책ㆍ활 따위를 돌상에 차려 놓고는 아이가 어느 것을 고르는가로 그 아이의 장래 운명을 점쳐 보곤 했었다. ‘돈ㆍ붓ㆍ책ㆍ활’ 따위는 부귀공명과 관련된 것이겠는데 거기 약간 이질적인 ‘실’이 꼭 끼어 있었다. 바로 수명과 관련된 물건이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너무 일찍 죽어 버리면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가져보질 못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장수한다는 것은 축복받는 일이다. 세월이 변하다 보니 근래에 와서는 돌잡이 물건들이 ‘의사봉‧청진기‧금메달‧마이크’ 등으로 바뀌어 가는 경우도 있지마는 아직까지도 ‘실’은 제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아도 장수가 축복이라는 점은 두말 할 필요가 없겠다.
우리 현봉(玄峰) 선생께서는 아마도 돌잡이 때 실과 책을 잡으시지는 않으셨는지 싶다. 돌잡이는 두 번째로 잡는 물건에까지도 그 효력이 살아있는 것으로들 여기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교직에 몸담아 후진 양성에 힘쓰신 분이었으니 실과 책을 잡으셨을 것은 당연지사가 아닐까 여겨진다.
선생은 체질적으로 장수할 타입이시다. 덤벙덤벙대는 일이 없고 늘 차분하고 안정적이시다. 말씀을 하실 때에도 나지막한 톤으로 조곤조곤 말씀을 하신다. 벌컥 화를 내시는 일 따위는 본 적이 없다. 게다가 꾸준히 건강을 챙기셔서 운동도 게을리 하시지 않는다.
나는 2015년 3월 27일 선생의 고향인 경남 산청군 생비량면(生比良面)에 선생의 수필문학기념비를 세울 때 여러 문우들과 함께 참석했던 일이 있다. 그때 보았던 커다란 느티나무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느티나무처럼”이라는 수필집을 내신 선생은 바로 그 느티나무를 닮았다고 생각되었다. 묵묵히 고향을 지켜온 그 꿋꿋한 모습, 거기서 나는 또 선생의 호 현봉(玄峰)을 떠 올려 보았다. 검을 현(玄) 자에는 ‘아득하다, 멀다’라는 뜻이 들어 있다. 학덕이 아득하고, 품성이 묘묘(淼淼)하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따라잡기가 힘드는 것이다.
그러한 선생께서 “이모작 삶이 아름답다”는 책을 내셨다. 선생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있는 책이었다. 사람의 성장기는 25세까지라고들 한다. 그렇게 본다면 환갑(만 60세)까지는 35년을 더 사는 셈이 된다. 그러니까 거기까지가 1모작 삶인 셈이다. 그 이상의 나이를 계속해서 살 때라고 하더라도 성장기가 따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보니, 현봉 선생께서 말씀한 2모작 삶이란 60세+35세=95세까지인 셈이다. 계산상으로 본다면 선생은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3모작 삶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생물학적인 수명은 성장기의 5배까지 가능하다고 하니, 얼마든지 3모작 삶을 계획할 수가 있는 일이다.
지난날과는 달라서 이제는 2모작 삶까지의 삶의 모습은 여러 사람들의 글에서 어렵지 않게 대해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아직 3모작 인생살이에 대한 길라잡이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우리 현봉(玄峰) 선생께서 그 길을 안내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남보다 앞서 걷는 길은 어렵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걷는 길은 힘들다. 그런 ‘어렵고 힘든’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선생께서라면 그 ‘어렵고 힘든’ 일을 충분히 해 내실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감히 3모작 인생에 대한 길라잡이의 소임을 해 줍시사 하는 간절한 부탁을 드린다.
조선조 말기, 임연(臨淵) 이양연(李亮淵·1771~1853)이라는 분이 계셨다. 그분의 시 중에 ‘野雪(야설)’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穿雪野中去(천설야중거: 눈길 뚫고 들길을 가노라니)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어지러이 함부로 걸을 수가 없네.)今朝我行跡(금조아행적: 오늘 아침 내가 밟고 가는 발자국이)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뒷사람이 밟고 갈 길이 될 것이니.)
우리가 걸어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후인(後人)’들이 뒤따르는 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걸을 수가 없다. 그 힘든 일을 오늘 현봉(玄峰) 선생께 감히 부탁을 드린다. 3모작 인생의 개척자가 되어 달라고. 그 길을 걸으시면서 우리들에게 지남(指南)이 되는 글을 많이 써 주십사고. 여불비례(餘不備禮). (17.7.31. 15매)
※끝 부분 이양연(李亮淵)의 야설(野雪) 부분은 잘라버린 채, “느티나무처럼”. 玄峰 이병수 선생 望百기념 문집, 교음사, 2018.1.30. pp.137-139.에 게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