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제방 33) 밟아도 밟아도 또다시 꿋꿋하게 일어나는 민초(民草) 민들레
#33밟아도 밟아도 또다시 꿋꿋하게 일어나는 민초 민들레(백화제방 33).hwp
“수필문학” 18. 3월호(314호). pp.104-107에 게재.
(백화제방 33)
밟아도 밟아도 또다시 꿋꿋하게 일어나는 민초(民草) 민들레
이 웅 재
민들레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매우 흔한 꽃이다. 흔한 것은 흔히 귀한 대접을 받기가 힘들다. 민들레도 그렇다. 꽃을 꺾어 화분에 꽂아주는 사람도 없다. 사실은 화분에 꽂아주려고 하여도 꽂을 수가 없는 꽃이다. 왜? 민들레는 로제트(rosette) 식물이기 때문이다. 활짝 핀 장미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로제트 식물은 우리말로 ‘방석식물’이라고 부르듯이 줄기가 거의 없고 잎이 땅 표면으로 넓게 퍼지는 것이 특징이다.
꽃대가 없으니 꺾어서 꽃병에 꽂아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키 큰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그늘 때문에 그들과 함께 살아가다가는 햇볕 보기가 힘들어서, 흔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바닥 옆이나 논밭의 둑 같은 건조하고 딱딱한 박토에서도 잘 자란다.
꽃병에 꽂아주는 사람도 없으니 민들레는 스스로 짙은 향기를 내뿜지도 않는다. 벌이나 나비가 날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민들레는 원칙적으로 무수정생식으로 자손을 퍼뜨리는 놈이다. 민들레꽃 수술에는 꽃가루가 없다. 따라서 가루받이[수분(受粉)]를 하지 않는 것이다. 혹 자가수정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그런 경우의 씨앗은 발아가 되지 않는 무정란과 같은 씨가 되고 만다.
민들레의 씨앗은 한 번 싹을 틔우면 반드시 꽃을 피우고야 만다고 한다. 보통은 이른 봄부터 꽃을 피우지만, 그렇지 못한 놈은 한겨울이 되어서라도 꽃을 피운다고 하니 일년 내내 피는 꽃이요, 그래서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말이 생겨났을 터이다. 조용필이 부른 노래 제목도 이런 점을 의미한 것은 아닌지?
민들레에 대한 노래로는 박미경의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라는 노래도 있다. 그런데 민들레에는 홀씨가 없다. 홀씨는 한자말로는 포자(胞子)라고 하는데 꽃을 피우지 않는 민꽃식물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민꽃식물에는 조류(藻類), 이끼류, 양치식물(羊齒植物) 등이 있다. 양치식물이란 잎의 모양이 마치 양의 이빨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고사리가 그 대표격이 된다. 꽃식물은 꽃을 피워 씨로 번식하고 민꽃식물은 꽃을 피우지 않으므로 홀씨로 번식한다. 민들레는 꽃식물이다. 따라서 홀씨나 포자가 아니라 ‘씨’로 번식한다.
민들레의 열매는 납작한 수과(瘦果)이다. 수과란 한 개의 열매에 한 개의 씨가 얇은 껍질에 쌓여 있으며, 껍질인 과피(果皮)는 말라서 목질(木質), 또는 혁질(革質)이 되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씨는 껍질에서 떨어져 있는 열매를 말한다. 민들레의 수과는 씨앗 끝부분에 흰색의 갓털[冠毛]이 붙어 있어서 바람이 불면 쉽게 날아가서 여기저기에 씨앗을 퍼뜨린다. 그 관모에 착안하여 낙하산이 생겨났으니, 자연의 이용 방안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가 있겠다.
한편, 요사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노란 꽃의 민들레는 대부분이 외래종인 서양민들레이다. 서양민들레는 두상꽃차례[頭狀花序]를 감싸는 꽃받침대[總苞] 중 바깥쪽에 있는 것들이 아래쪽으로 젖혀져 있는데, 토종민들레는 모든 꽃받침대가 위쪽으로 곧게 서 있다. 두상꽃차례란 여러 꽃이 꽃대 끝에 모여 머리 모양을 이루어 한 송이의 꽃처럼 보이는 것을 이른다. 토종 민들레는 주로 흰꽃을 피우며 서양민들레보다 실하지만, 노란 꽃도 있어서 꽃의 빛깔만 가지고는 구별이 잘 안 되고, 이 꽃받침대의 모양으로 구별을 하여야 한다. 흰민들레의 학명은 ‘Coreanum’으로, 한국에서 발견된 한국특산종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요사이에는 토종민들레는 보기가 힘들어졌다. 이는 아마도 서양민들레의 경우 때에 따라서 자가수정도 하여 번식하기 때문에, 번식력 면에서 뒤떨어져서가 아닌가 싶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법이다. 민들레는 로제트식물이라서 꽃대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예외란 항상 있는 법, 발칸반도 크로아티아 최초의 국립공원이면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16개의 호수가 있는 플리트비체(Plitvice) 국립공원 근처의 녹지에서 만난 샛노란 민들레는 그 꽃대가 사람의 무릎 근처에까지 올라오는 큰 키였다. ‘봉생마중불부이직(蓬生麻中不扶而直)’이라고 하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민들레는 그 뿌리가 땅속 깊이 자라기 때문에 짓밟혀도 잘 죽지 않는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요, 잎 따위가 부러지면 젖빛 즙이 나온다. 이 즙은 매우 써서 고채(苦菜)라고도 부르며 가축들도 잘 먹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이른 봄에 들을 노랗게 뒤덮어서 만지금(滿地金)이라고도 부른다. 이상화(李相和)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나오는 ‘맨드라미’도 실은 사투리로 민들레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민들레에는 여러 가지 전설이 따른다. 그중의 하나를 보자. 옛날 노아의 대홍수가 일어날 때의 일이다. 모두들 홍수를 피하여 방주로 갔는데, 뿌리가 깊어 몸을 빼낼 수 없는 민들레는 얼마나 애가 탔던지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렸다. 민들레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했다. 이에 하나님은 민들레를 살려주려고 세찬 바람을 불게 하여, 그 씨앗을 노아의 방주 지붕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그렇게 홍수에서 살아남은 민들레는 지금까지도 하늘을 우러러 꽃을 피우며 살게 되었다. 그래서 꽃말도 ‘행복’, 또는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민들레는 한때 세계적으로 구황식물로 사용하기도 하는 등 식재료로도 사용되었다. 지금도 이른 봄에 어린잎과 뿌리를 캐서 나물로 먹는다. 식물 전체를 캐서 말린 포공영(蒲公英)은 한방에서 위궤양 치료제로 사용하며, 암세포를 죽이는 효능이 있다고도 알려져 있다. 뿌리째 채취하여 말린 민들레차도 간을 보호하고 머리카락을 검게 만들어 준다고 하며, 뱀에 물렸을 때에는 그 뿌리를 짓찌어서 바르기도 한다. (17.8.29. 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