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문화 체험기 5] 금강산도 식후경, 이젠 식수(食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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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문화 체험기 5]
금강산도 식후경, 이젠 식수(食數)다.
이 웅 재
안복(眼福)을 누리노라니 다리가 아프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바야흐로 뱃속에서 반기(叛旗) 들고일어났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젠 식수(食數)를 누릴 차례다.
낯선 이국땅에서 음식을 먹어야 할 땐 고민스럽다. 어떤 음식이 입에 맞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난하게 파스타를 먹기로 하고 ‘Perfect Plates’로 들어갔다. 비교적 아담한 식당이었다. 비어 있는 자리는 많았지만 나는 13번 테이블에 앉았다. 내 생각으로는 그 자리가 가장 편한 자리로 생각되었다. 기독교에서는 금기로 여기는 숫자라고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주민등록번호에도 13자리의 숫자가 사용되질 않던가? 남들이 기피하는 숫자에는 의외의 보너스가 따를 수도 있다. 나는 4자도 좋아한다. 대학교 입학시험 때의 수험번호도 404번이었으나 합격을 했고, 지금도 내 핸드폰 번호에는 4자가 3번씩이나 들어 있다.
종업원이 물을 따라주었다. 찬물이었다.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보니 자연스러운 서비스이리라. 그러나 딸내미는 ‘Hot water’를 달라고 했다. 찬물은 집에서부터 생수병을 들고 나왔다. 여행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물이다. 물을 갈아먹으면 자칫 배탈 등이 나기가 쉽다. 찬 물에는 미생물이 많이 있기에, 늘 먹어서 면역이 된 상태가 아니기에, 조심을 해야 하는 일이다. 더구나 필리핀의 물에는 석회질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아서 조심해야 한다. 그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음식을 만들 때 식초를 많이 사용한다고도 한다.
딸내미는 영어로 주문을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훌륭했다. 하지만 본인은 늘 영어가 달려서 걱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다닐 때에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아이들은 어려서 미국에서 지낸 경험 때문에 영어가 유창했기 때문이다. 영어는 그렇지만 중국어에서는 이곳 국제학교의 엄마들 중에서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는단다. 외국어를 위해서 각국 6명의 아이 엄마들이 학원엘 다니고 있는데, 영어는 잘 못하면서 어떻게 중국어는 잘하느냐고 놀란단다. 한국에 있을 때의 직업이 한문선생이었다는 것이 그 비결 중의 일부일터이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음식점 한쪽 벽면은 붉은 벽돌로 기둥을 세우고 그 가운데는 판자를 가로질러 놓았는데, 그 판자 위로 몇 가지의 접시와 문자를 써넣은 판넬을 붙여놓은 것이 그런대로 소박하고도 친근미를 가져다주었다. 그 장식들 왼쪽의 벽돌 기둥의 아래로는 아이들을 위한 책도 몇 권 꽂혀 있었다. 아이들에 대한 배려일까? 아마도 파스타나 피자도 파는 집이라서 그런 모양이었다.
종업원의 말을 따라 파스타에 치즈를 쳐서 먹었더니, 느끼하던 파스타가 산뜻한 맛으로 변하여 ‘아하, 이렇게도 먹는구나’ 하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다. 다른 것 아무리 먹어도 ‘밥’이 없으면 먹은 것 같지 않게 느끼는 민족, 그래서 볶음밥도 시켜서 먹었다. 먹을 만했다. 필리핀사람들도 우리처럼 주식은 밥이라고 한다. 그런데 열대지방이다 보니 찰기가 없는 푸석푸석한 쌀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찹쌀이 있어 그것을 섞어서 밥을 지으면 먹을 만해진다. 쌀 생산량은 부족해서 외국에서 수입을 하는 편이다.
볶음밥은 우리나라의 덮밥처럼 밥 위에는 계란찜과 또 한 가지 고기로 된 음식을 얹어서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도보(Adobo)’였다. 이 음식은 외국인 대상으로 조사해 본 바, 해마다 ‘가장 맛있는 필리핀 음식’으로 선정되는 음식이라는데, 아닌 게 아니라 맛이 괜찮았다. 조금 짠 것이 문제였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필리핀 음식은 대체로 짠 편이기 때문이다. 열대성 기후에서는 쉽게 음식물이 상하기 때문에 일상화된 조리 관습이 아닐까 여겨졌다.
외식 문화가 발달되어 있는 것도 역시 더운 지방의 공통점이라고 하겠다. 더운 지방에서는 먹다가 남는 음식을 보관하기 힘든 것이 당연한 일, 그래서 외식이 발달한다. 여기 사람들은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라면 한 끼에 우리나라 돈으로 200원 정도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가 먹은 음식은 모두 2만 5000원 정도가 되었다.
반찬인지 후식인지 하는 것이 맛이 괜찮기에 더 달라고 했더니 한화로 900원 정도를 추가로 청구한다. 아마도 그린 망고로 만든 것인가 보았다. 그린 망고는 좀 덜 익은 망고로 좀더 익으면 옐로우 망고, 아주 숙성된 것은 골드 망고라고 부르는 듯싶었다. 그린 망고는 신맛이 좀더 강해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 맛이 신선하고 산뜻해서 좋았다. 한 마디로 새콤달콤한 맛이었다. ‘과일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망고, 그 중에서도 필리핀산이 단연 으뜸이라지만, 옻나무과에 속하는 과일이라서 평소 옻을 잘 타는 사람이라면 조심할 일이다. 식사 후에는 근처에 있는 ‘Cafe Mary Grace’에 들러 우아하게 커피도 한 잔씩 마셨다.
이제는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 여행을 갔던 종한이도 오늘은 학교로 복귀하였다고 해서 두 아이를 함께 데려와야 한다. 한국이라면 종한이는 초등교 5학년, 서영이는 중학교 1학년이겠는데, 여기선 종한이가 중 1, 서영이는 중 3이란다. 서영이는 나이에 비해 키가 상당히 큰 편이지만, 여기에서는 중간 정도란다. 이곳 사람들은 키가 작고 좀 뚱뚱한 편이지만, 국제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그렇게 키가 큰 모양이었다. 더운 나라의 식물들은 무척 키가 큰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키가 작을까? 베트남 사람들도 키가 작았다. 그러나 그들은 날씬했다. 그래서 미군들이 따라들어올 수 없는 땅굴을 파고 항전하지 않았던가?
기후와 키, 그리고 몸피, 그 상관관계가 아무래도 납득이 되질 않았다. (18.3.17.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