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는 것은

거북이3 2020. 8. 16. 13:58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는 것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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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는 것은 
                                                     이   웅   재

처가는 부자였다. 딸을 넷이나 둔 딸부자였다. 장인은 조금 일찍 돌아가셔서 뵙지도 못했고, 남자라고는 달랑 손위 처남 하나뿐이었다.
그러니, 처갓집엘 가도 재미가 없었다. 비교적 술을 즐기는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술 한 잔 얻어먹을 수 없는 처갓집으로의 나들이가 별로 탐탁하질 않았다. 해서 나는 처가
행(妻家行)이 즐거운 나들이가 되도록 계획을 짰다. 3명의 동서를 비롯해 처남에게 술을 가르쳐 주기로 작정을 했던 것이다.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그 후, 맏동서의 생일날, 나는 아내에게 처남을 꼭 오라고 전화연락을 하게 했다. 3명의 동서들과 처남, 그렇게 4명이 정말 신나게 마셨다. 자정도 넘기고 비뚤어진 코들을 조심스럽게 달고서 각자 집으로 돌아갔는데….

아직 술이 덜 깬 새벽녘.
“따르르릉…….”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그 소리는 다른 날보다 더 크게 들렸다. 귀찮아서 받지 않으려 하였더니, ‘꼭 받아야만 하는 전화’라는 듯 벨 소리는 끈질기게 울려대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더듬더듬 수화기를 찾아들고 ‘여보세요!’혀 꼬부라진 소리를 냈다. 다음 순간, 술이 번쩍 깨었다.
처남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였다. 그것도 뇌를 다쳐서 혼수상태라고 하였다. 동네 병원에서는 받아주지도 않아 모 대학 병원 중환자실에 간신히 입원했단다.
뇌출혈.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하였다. 수술을 해 보아도 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나는 의사에게 물었다. 그냥 두는 것과 수술을 해 보는 쪽, 어느 편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느냐고. 의사는 마지못해 대답하였다.
“그냥 두면 죽을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수술을 한다고 해도 살아날 가능성은 없어요.”
“100분의 1, 아니 1000분의 1이라도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쪽은요?”
“글쎄요. 그래도 수술을 해 보는 쪽이 조금은 낫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면 수술을 해 주세요.”
하지만, 장모님은‘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수술을 극구 반대하셨다. 모든 게 내 책임이라는 자책감에 나는 강제로 장모님의 손을 잡아끌어‘수술동의서’에 지장을 찍었다. 그리고는 맏동서와 함께 병원 앞쪽에 있는 포장마차 집으로 가서 술을 마셨다. 마셔도 마셔도 술은 취하질 않았다. 그래도 마시고 마시고 또 마셨다. 그렇게 3시간을 마셨다. 그리고는 ‘이제는 생사 간에 결판이 났겠지’하는 처절한 심정으로 수술실로 향했다. 처남은 그때까지도 나오질 않았단다. 조금 있다가 얼굴까지 흰 시트로 덮여진 환자용 침대 하나가 나왔다. ‘아이고, 죽었구나!’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양쪽 다리에 힘이 쏘옥 빠지면서 제자리에 지탱하고 서 있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비틀거리며 다시 한 번 침대를 확인하여 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해서 다시 보았다. 정신을 집중하여 다시 보았다. 다시 보아도 이상했다. 처남은 키가 컸다. 그런데 침대 위의 사람은 키가 크지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또다시 보았다. 아니었다.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다시 길고긴 기다림의 시간. 이곳에서의 시간은 거의 정지된 상태인 듯싶었다.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꼭 들어맞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처남의 침대가 나와 곧바로 중환자실로 향하고 있었다. “아, 죽지는 않았구나!”온몸의 힘이 쪽 빠져서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하였다.

처음엔 ‘정신이상이 되더라고 살아만 주었으면…’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일단 일반 환자실로 옮기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저기 고춧가루 봉지를 떼어다가 김치를 담그라’는 느닷없는 처남의 엉뚱한 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까짓것 다른 데는 좀 불구가 되더라도 정신만은 바로 돌아왔으면…’그때까지 다리는 완전히 부러져 덜렁덜렁하는 상태였다. 더더군다나 그는 외아들이 아니었던가? 그 외아들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소망은, 아마 다른 사람이었더라도 같은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제발 정신만은 바로 돌아왔으면….”내 최대의 소망은 어느새 그렇게 바뀌어져 있었다. “제발 정신만은….”

그런데, 그런데 정말로 천만다행으로 처남의 용태는 하루하루 호전되더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정신도 거의 말짱한 상태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자 나의 소망은 다시 한 번 바뀌고 있었다. ‘다리야 좀 절게 되더라도 잘라버리지는 않았으면….’
워낙 간절한 소원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차츰차츰 다리도 거의 정상을 되찾는 듯싶었다. 단지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켜 놓았기 때문에, 처남의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가 복에 겨운 소리라도 치부하고 있었다.
“내 발꿈치가 썩어가고 있어! 위치를 조금만이라도 바꿔줘!”
우리는 그 소리를 들으며, 모두들 참으라고만 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우리가 참으라고 했던 소리가 얼마나 매정한 소리였는지를…. 처남의 발뒤꿈치는 정말로 썩어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볼기 쪽 살을 떼어다가 이식 수술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살이 썩어 들어가는 아픔, 그건 직접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 누가 그 아픔을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 것이랴?

이후 처남은 다리도 멀쩡한 정상인이 되었다. 우리는 가끔 그때 이야기를 하며 함께 술도 마시고는 했다. ‘욕심이란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란 점을 나는 그때 배웠다. 이제는 처남도 하늘나라로 가고, 병원 앞쪽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맏동서도 처남 술동무가 되려고 저 세상으로 가고 없기에, 지나간 날을 추억하며 이 글을 쓴다. (20.8.15.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