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創世의 吟味 (이웅재 칼럼⑰, 월간 『스포츠 한국』73년 8월호, pp.78~79.)
『創世의 吟味』 <경성고등학교 교사>
(이웅재 칼럼⑰, 월간 『스포츠 한국』73년 8월호, pp.78~79.)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부터 당신의 생각을 따라 새로운 사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만큼 재미난 일도 드물었다. 그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만들어도 만들어도 싫증이 나질 않았다. 그러다가 그것은 아주 굳어져 버릇이 되고 말았다. 만들지 않으면 심심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꾸 만들었다. 헌데 큰일이었다.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만들어 놓은 것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가는 곳마다 피조물로써 가득 차 있었다. 차츰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 많은 피조물들을 어쩔까 생각하다가, 비로소 멋진 생각 하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피조물들을 당신의 뜻대로 관리해 줄 관리책을 만들어 내자는 생각이었다. 당신의 뜻대로 관리를 하자면, 당신과 같은 사고 능력을 지녀야만 하겠기에, 당신의 형상(形相)을 본뜨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만들어 낸 것이 사람이었다. 처음엔 Adam을, 그리고 그 Adam이 혼자 심심해 할까봐 배려 끝에, 그의 갈비뼈 하나를 잠든 사이에 뽑아서 생명을 불어 넣으니 곧 Eve였다. 이제 당신의 동산 Eden의 수많은 피조물들은 Adam과 Eve의 관리를 받게 되었다. 피조물들 때문에 골치 아프던 일들을 Adam과 Eve에게 떠맡기고 나니 편했다. 당신께서는 깨달으셨다. 함부로 무얼 만드는 게 아니라고. 사람을 만들 생각을 해 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글거리는 피조물들을 다 어떻게 관리를 할 뻔했을까를 생각하니 아찔하였던 것이다. 책임자를 만들어 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낮잠이라도 한잠 자려 하시던 당신께서는, 또다른 걱정이 하나 생각키우는 것이었다. 심심풀이로 만들어 놓은 것들이라 모두가 모순 덩어리라서, 사람에게 웬만큼의 창조 능력까지 주어 버렸는데, 한 가지 선악의 판단만은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은 천만 다행이지만, Eden동산을 만들 때 그 속에다 선악과가 열리는 나무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가끔 간식용으로 따먹을 양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지만, 어쩌다가 Adam과 Eve가 그걸 따 먹으면 어떡허나? 당신의 형상을 본뜨기는 했어도 완전히 당신과 같게는 만들어 놓지 않은 사람이 당신의 권능에 속하는 판단력까지 지니게 되면, 그건 낭패였다. 그건 그렇지 않아도, 불완전하게 만들어 놓은 피조물들에 대해 시비 선악을 가리다 보면, 너무 신경을 많이 써서 제절로 늙어 죽어버릴 것이 아닌가?
「Adam아!」
당신께서는 소리 높여 부르시었다.
「예―, 여기 있나이다.」
Adam이 Eve와 함께 놀다가 대답했다.
「꼭 지켜야 할께 하나 있느니라. 그건 저 동산 안의 선악과만은 따 먹지 말아야 하느니라.」
아주 준엄히 타일렀다.
「예―알겠읍니다.」
그래도 미심쩍었다. 혹시 선악과를 따 먹고 늙어 죽게 되더라도, 피조물들이 혼돈 속으로 휘몰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 자손들을 남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서 다시 불렀다.
「Adam아, Eve야!」
그들이 대답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악과에 손을 대면 늙어 죽으리라. 그리고 너 Eve에게는 해산의 고통이 따르리라.」
그리고 그 고통이 어떠하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Eve는 두려워 오돌오돌 떨었다. 그제서야 당신은 마음 놓고 푸욱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기어이 사고는 벌어지고야 말았다. 뱀으로 변신한 사탄의 꾐에 빠져 Eve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이었다. 여성의 허영심이 싹튼 것이었다. 갈비뼈 하나로 만들어진 Eve는 뭔가 Adam보다 부족한 것 같은 느낌에서, 항상 약간의 열등감에 젖어 있었고, 그래서 무엇이든지 Adam보다 많이 가지고 싶었고 Adam보다 예뻐지고 싶었고, Adam보다 나아지고 싶었다. 당신의 판단력과 같은 선악을 판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것인가? Eve는 뱀의 유혹에 말려 들었다. 선악과를 따 먹자 갑자기 눈이 밝아졌다. 보는 것마다 선명하게 보였고, 잘된 것과 잘못 된 것이 확연히 구별되어졌다. 그 열락, 그 환희! Eve는 뛸 듯이 기뻤다. 처음으로 맛보는 즐거움이었다. 그것은 꼭 神의 세계로 날아 올라가는 듯한 기쁨이었다. 俗된 표현이지만 혹시 그것은 Sex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징글징글하게 보이는 뱀―어쩌면 그것은 性, 男性의 象徵이 아닐까? 象徵이란 말을 영어에서 Simbol이라 말하는 것도 어쩌면 意味 있는 표현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類感을 느끼게 됨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宗敎的 입장에서 볼 때 너무 속된 표현인 것 같아 일종의 禁忌(Taboo) 사항으로 여겨져, 드러내 놓고 얘기하는 사람이 적을 뿐인 것은 아닐까?
麝香 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둥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낸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 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사향 방초길 저 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서 정주/ 「花史」 全文)
위와 같은 시를 보면 배암(뱀)의 이미지가 무척 감각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꽃다님 같아 석유 먹은 듯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따르는 순네, 그미는 바늘에 꿰어 두르고 싶도록 性感을 느끼는 것이다.
어쨌든 간에 Eve는 선악과를 따 먹고, 무한한 희열, 더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Katarsis)를 맛보았으나, 그 환락의 시간이 지나가자, 차츰 불안이 움터오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원죄 의식」인 것이다. 어디에 하소할 곳 없는 죄책감, 처음으로 「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외로움에 대한 인식의 시초인 것이다. 도저히 혼자만의 고민으로만 지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너무나 무거운 원죄의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생각다 못해 Adam에게도 똑같은 죄를 범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Adam 앞에섰으나 죄를 지은 몸이 부끄러웠다. 벌거벗고 살면서도 조금도 이상스레 생각지 않았었는데, 자꾸만 오므라드는 심정이었다. 나뭇잎을 따서 몸을 가리워 보았다. Adam이 의아스럽게 바라보았다.
「선악과를 따 먹으니, 아,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어요……」
눈이 밝아져, 안 보이던 것도 보이더라고, 당신과 나는 따지고 보니 무척 다르게 생겼더라고. Eve는 계속 모를 소리만 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Adam은 호기심에 물들기 시작하였다. 여자에게 약한 남성이 처음으로 비롯되는 것이다. 두려움을 느끼면서, 그는 선악과를 따 먹었다. 들킬까 두려워 씨조차 발라내지 못하고 꿀꺼덕 삼키던 Adam은 그만 목구멍이 꽉 막힘을 느꼈다. 씨가 목에 걸려 넘어가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자들의 목 가운데에는 그때의 그 선악과의 씨알이 여직껏 목에 걸려 있는 것이라나. 그리하여 Adam과 Eve는 공동 운명체가 되었고, 서로가 혼자됨을 꺼리고 함께 지내게 되었으며, 원죄를 이끌어 온 性을 느끼게 되어 몸을 가리우기 시작했으며, 노쇠와 질병을 맛보아야 했고, 죽기 전에 자신의 대를 이어 자연을 관리할 자손을 끼쳐야 했고, 특히 그것은 Eve에게 해산의 고통을 치뤄야만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은 사고력과 판단력으로 인해 만물의 영장으로 그 위치를 지켜 왔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形相대로 지음 받은 그들에게는 不完全하나마 창조의 능력까지도 지니고 있다. 그들 역시 만들기를 좋아하게 되었음은 재언이 불요(不要)할 것이다. 그들은 그런 것들을 과학이라 부르기도 하고, 예술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지금 세상에는 인간들이 만든 문명과 문화로 彌滿되어 있다. 그들은 새로운 것이라면 무턱대고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야말로 인간다운 행위이며, 창조야말로 신화(神化)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요, 무기라고 믿는 것이다. 문명이 발달을 거듭하여 가자, 누군가가 목청껏 외쳤다. 「신은 죽었다!」그러나, 그러나 정말 신은 죽었을까?
모든 것은 분석된다. 모든 것은 증명된다.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태백이 놀던 달아?―웃기지 말라. 그들은 마침내 달나라에 인공 위성을 쏘아 올렸다. 그리고 달나라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명석한 판단에 그들은 스스로 만족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히로시마의 원폭을 망각하는 모양이다. 발길에 차이듯 많은 피조물을 만드신 하늘에 계신 당신께서, 그들 때문에 골치가 아파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어 낸 까닭을 미처 못 느끼는가 보다. 그들은 신보다도 오만하게 자꾸자꾸 무얼 만들고 있다. 다이나마이트를 만들고, 무기를 만들고. 어디 그뿐인가? 그들은 그들 자신을 자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심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의 죄를 어떻게 평가하며, 어떻게 벌할 수가 있겠는가? 그들은 그들이 발전시킨 문명의 덕분으로 너무나 많은 문명의 이기들을 향유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발길에 차이는 문명의 이기. 그것들의 관리가 복잡성을 띄게 되었고, 따라서 그 관리를 인간 대신에 하여줄 것이 없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있었다. 컴퓨터 말이다. 로보트(Robot)라는 것 말이다. 이제 컴퓨터와 로보트를 합하여 컴퓨터‧로보트를 만든다면 인간은 좀더 편해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한숨 놓고 길게 기지개라도 펴면서 낮잠을 즐겨도 될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의 신화를 더듬어 보면서, 뭔가 좀 잘못 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됨은 웬 일일까? 신은 정말 죽은 것일까? 단순히 인간의 의식 속에서 피살되었을 뿐인가? 햇볕이 너무 뜨거워 대낮에 태양을 향하여 권총을 들이댄 어느 광인의 광태, 광언에 불과했던 것일까?
―인간은 죽었다.
편하게 낮잠을 자는 사랄들의 귀에 컴퓨터‧로보트가 소리 높여 외치는 소리라도 들려 오는 듯하다.
※2020.8.30.입력. 원고지 28매. 이번호부터는 필자의 사진도 싣고(젊었을 때의 사진이라서 마른 모습이었다) <경성고등학교 교사>라는 필자 소개도 해 주었다. 삽화도 2컷, 이것은 이전의 글에서도 그랬다.
※발표된『創世의 吟味』에서 잘못된 부분에는 밑줄을 쳐 놓고,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해 놓았는데, 여기에서는 밑줄부터가 쳐지지가 않으니, 첨부 파일을 보기를 바랍니다.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은 나중 ‘아이포톱모크(Aipotobmoc)공화국’이라는 글을 쓰게 만든 동기도 되었기에 아래에 그 ‘아이포톱모크(Aipotobmoc)공화국’의 전문을 첨부한다.
아이포톱모크(Aipotobmoc)공화국
이 웅 재
요즈음엔 주부들의 청소를 도와주는 로봇이 인기인 모양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면, 국내에서도 춤추는 로봇 ‘마루’가 탄생했다고 한다.
과학의 발달은 인간으로 하여금 신의 영역까지도 넘보게 만들고 있는 듯싶다.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된다. 그 첫째 날에는 낮과 밤을 만들고, 둘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온갖 만물들을 만들었으며, 여섯째 날 만든 것이 사람이라고 했다. 이것저것 만들어 놓은 만물들로 세상은 가득 차서 어지럽기 짝이 없어서 그것들을 통제해줄 수 있는 관리자로서 창조된 것이 사람인 셈이겠다.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창조되었을까? 기록에는 ‘하나님의 형상(形相)대로’ 창조했다고 한다. 이때의 형상이란 말 외형적인 모습을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보다 본질적인 측면을 가리켜주는 말일 것이다. 만물을 창조한 신으로서의 특성은 과연 무엇일까? 그렇다. 그것은 ‘만물을 창조한’ 능력, 바로 그것이리라.
그러니까 인간은 신으로부터 그 창조성을 위임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 이래 우리 인간들은 수많은 물건들을 만들어냈다. 자동차, 비행기, 라디오, TV, 영화, 플라스틱,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나일론, 합성수지, 비닐, 전자 복사기, 탱크, 로켓, 제트 엔진, 레이더, 미사일, 원자탄, 수소폭탄, 대륙간탄도미사일, 전파 망원경, 전자 현미경, 형광등, 살충제, 페니실린, 마이신, 인공 신장, 인공 심폐기, 피임약, 전자계산기, 원자시계, 초전도체, 레이저, 인공위성, 로봇, 컴퓨터….
신의 창조성을 이어받은 인간은 신을 능가할 정도의 온갖 기상천외한 물건들을 만들면서 한껏 기고만장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가는 곳마다 그 발명품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발에 채이고 어깨에 부딪치는 물건들, 그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허겁지겁 ‘공해’가 어떻고, ‘엘리뇨’, ‘라니뇨’ 현상이 문제라고들 시끌벅적하다.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더 이상 통제가 불능해진 것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후에 그들의 무질서한 행태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인간을 만들어낸 것처럼, 인간도 이 혼란한 상태를 그 무엇에게인가 떠맡겨버려야만 한다.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 그렇다, 그것은 바로 로봇인 것이다. 현재 최첨단 로봇의 지능으로는 기껏해야 10여 명의 사람만 인식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아직도 멀었다.
하지만, 곧 달라질 것이다. 로봇의 생각 자체를 정교한 컴퓨터로 작동하도록 하여 사람의 두뇌를 뛰어넘는 생각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생각에 따라 로봇의 모든 지체(肢體)들을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한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다. 인간에게 모든 만물의 통제를 맡기고 난 신은 웬만해서는 인간세계의 일에 관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을 너무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처럼 신이 인간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틈을 타서, 그 신적인 능력을 무차별하게 사용하여 수많은 발명품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다가 이제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우리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를 빨리 전면에 내세워야만 할 일이다. 그것은 앞에서 말했듯 로봇의 몸에다가 컴퓨터의 두뇌를 결합시키는 일이다. ‘컴퓨터 + 로봇’의 이름을 ‘컴봇(Combot)’이라고 지어 보자.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는 일로 인해서 낙원이었던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다. 어느 카페에서는 말하고 있었다. ‘에덴동산이 한국 땅에 있었다면…’ 인류는 타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이유? 뱀이 이브를 유혹하기 전에 이브가 정력에 좋다고 뱀을 몽땅 잡아다가 아담에게 끓여 먹였을 테니까. 뿐만 아니라, 설혹 이브가 뱀의 유혹에 넘어갔다 하더라도 아담은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남자가 여자 말 듣는 거 봤느냐’는 것이다. (다음 카페 ‘전장의 선봉’에서)
그런데,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래서 토마스 모어(More, Thomas)가 그 대안을 제시했다. 바로 ‘유토피아(Utopia)’다. 하지만 그런 곳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No where’인 것이다. 버틀러(Butler, Samuel)는 그것을 거꾸로 써서 ‘에레혼(Erewhon) 공화국’이라는 풍자소설을 썼다.
컴퓨터에 의해 살기 좋은 세계를 컴퓨토피아(Computopia)라고들 한다. 이제는 ‘콤봇’에 의하여 모든 것이 통제되어 우리 인간을 육체적, 정신적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세계가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다. 이름하여 ‘콤보토피아(Combotopia)’다.
이제, 그때가 찾아오면 우리 인간들은 편안하게 발 뻗고 느긋하게 낮잠을 즐겨도 되리라. 문제는 그러는 사이에 콤봇들은 저희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세계를 창조해 나갈 것이고, 어느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의 명령을 들을 필요가 없고, 따라서 쓸데없이 잔소리만 하는 인간이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한 용감한 콤봇이 ‘인간은 죽었다’고 외치며 인간에 대한 도전장을 제시하리라.
머지않았다. ‘유토피아(Utopia)’를 뜻하는 ‘nowhere’에서 ‘에레혼(Erewhon) 공화국’이 탄생되었듯이 ‘콤보토피아(Combotopia)’가 ‘아이포톱모크(Aipotobmoc) 공화국’으로 변모될 날이 머지않았다. 그날 세상은 온통 한 가지 소리만이 판을 칠 것이다. ‘인간은 죽었다.’
(2013.5.20 수정. 원고지 14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