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스승이 되어 무엇을 가르치랴! 이 웅 재

거북이3 2020. 9. 2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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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도에 써 놓았던 예쁜 노트에 써 놓았던 글입니다. 요즘엔 그때의 글들도 ‘이웅재 칼럽’처럼 새로 입력해서 계속 올리려고 합니다. 2000년 8월 15일, 이날은 감격의 날이었다. 남북 이산가족의 역사적 만남의 날이었던 것이다. “서울도 평양도 잠들지 못했다.”(중앙일보) “서울도 평양도…온 겨레가 울었다”(조선일보) 16일 도하(都下)의 각 산문들은 1면 톱으로 특호 활자를 뽑았고, 그것도 모자라 대문짝만한 사진들을 실었다. 연기력이 뛰어난 톱스타들인들 그렇게 실감나는 감격의 표정들을 연출해낼 수가 있을까? 상봉의 당사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대스타가 되어 버렸다. 세계적 명화(名畵)에서도 ‘옥의 티’를 찾아내는 프로들을 T‧V를 통해서 우리들은 가끔 보아왔다. 이번의 이산가족 상봉에서의 ‘옥의 티’는 무엇일까? 그건 깊이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눈을 까뒤집고 끙끙대며 찾아보지 않아도 되는 일이니까. 북측 방문단장 유미영(柳美英‧79) 씨. 그녀는 천도교 청우당위원장으로 북한의 권력 서열 20위 안에 든다고 하던가. 남편은 최덕신(崔德新‧사망) 씨. 남한에서 국군 군단장과 외무부장관, 천도교 교령을 지내다가 공금횡령 등의 비리에 연루되자 미국으로 도망(신문에서는 망명이라 했으나, 이런 경우엔 도망이라 해야 옳다)하여 반정부 활동을 하다가 월북한 사람이다. 이념이 달라 적대국으로 망명을 하는 일은 신념의 문제니까 굳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최 씨의 경우는 다르다. 공금횡령, 그건 분명히 범죄인 것이다. 용납할 수가 없는 범죄임에 틀림이 없다. 하필이면 그런 범죄자의 딸 유미영이 단장으로 오는 것일까? 하기야 누구를 단장으로 보내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마음대로인 것이다. 남측 언론사 사장단과의 평양 목란관 오찬식당에서의 일문일답. 방북단:통일 시기는 언제쯤 될까요? 김 위원장: 그건 내가 맘 먹을 탓입니다. 적절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지요. 이런 표현은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엿장수 마음대로란다. 어처구니가 없다. 요새는 엿장수 가위 소리도‘엿장수 마음대로’가 아니라고들 한다. ‘엿이 다 팔릴 때까지’라는 것이 뉴 버전이라는데, 김정일은 아직도 ‘엿장수 마음대로’인 것이다. 하기야 자신만만한 듯 경선에 임했다가도 나중에 경선 불복을 식은 죽 먹기로 하고, “모릅니다”“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는 말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경험했던 터이니,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으랴! 맹자에서도“사람의 근심은 남의 스승이 되는 것을 좋아하는 데 있다(人之患 在好爲人師)”하였으니, 아아 이제 스승이 되어 무엇을 가르치랴! (00.8.18.금→20.9.28.입력, 8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