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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형이상학 쪽을 배회하련다

거북이3 2006. 2. 19. 11:11
 

           나는 이제 형이상학 쪽을 배회하련다

                                           이   웅   재

 짜증난다. 몸무게가 계속 늘어가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그건 대환영할 만한 일인데,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그래서 계속 짜증이 난다. 먹었다 하면 살이 쪄버리고, 한번 쪄버린 살은 빠질 줄을 모른다.

 나는 원래 갈비였다. 세상에 태어나서 50여 년이 지날 때까지 체중 55kg을 넘은 적이 없었다. 한 때는 별명이 ‘빗 사이로 막가’였을 정도로 갈비 중에서도 냉갈비였다. 평생소원이 유치하게 ‘살 좀 찌는 일’로 정해지기까지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튼튼한 넓적다리에 알통이 불쑥 튀어나온 팔뚝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냥 부러워만 한다고 갑자기 살이 찔 수는 없는 일, 해서 나름대로 ‘갈비예찬론’을 창작해내기도 하였다.

 “우리 사람은 육체와 정신, 그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어느 쪽이 더 인간의 본질에 가까운 요소인가? 여타의 동물들과 비교해 볼 때, 그건 불문가지, 정신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되었도다.

 호모 사피엔스, 오직 사람만이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오직 사람만이 문학과 예술을 창조할 수 있고, 과학적 탐구를 연찬할 수 있고, 철학적 사유를 숙고할 수가 있다.

 오직 사람만이 신을 창조할 수 있고, 신을 믿을 수 있고, 때로는 신을 배신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에겐 정신이 중요하다. 그것 때문에 동물들과 구별될 수가 있는 것이다. 육체란 정신이 깃들 수 있는 최소의 요건만 갖추고 있으면 된다. 기본 골격인 뼈대, 거기에 그 뼈대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적은 양의 살만 붙어 있으면 충분하다는 말이다. 육체가 비대해지면 그 육체의 관리를 위해서 정신이 수고로워야 하지 않는가?

 그러니 갈비야말로 가장 진보된 인간인 것이다. 갈비 만세!”


 여기서 ‘갈비 만세!’란 말은 너무 소란스럽게 발화하면 곤란하다. 이게 웬 떡, 아니 웬 갈비냐 하고 뜯어 먹으러 몰려들면 곤란하니까. 그런데, 요즈음엔 정말로 갈비가 예찬 받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갈비가 되려고 배고픈 것 참으며 눈물겹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살 좀 쪄 보았으면 하던 때는 늘 갈비였으며, 갈비가 대접받는 시대가 되니 똥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젊었을 때의 ‘갈비예찬론’은 자위적 차원에서였는데, 이제는 진정으로 ‘갈비예찬론’을 신봉하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되었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어머니는 그렇게 냉갈비인 까닭을 ‘짧은 입’ 때문이라고 단정을 하셨다. 6․25를 지나면서 먹을 것이 없어 고생고생 하면서도 내 입은 ‘고급’이었던 것이다. 조팝은 까끌까끌 입 안에서 따로따로 굴러다녔고, 보리밥은 우둘우둘 아무리 씹어도 이리저리 삐져 나갔다. 그러나 내 입맛에 일부러 맞춰놓은 듯한 쌀밥은 대하기가 힘든 시절이었다.

 언제나 마음대로 쌀밥을 먹을 수 있을까 골몰해 보았다. 명절이나 제사 때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쇠고깃국과 찐 계란 같은 걸로만 늘 먹고 지낼 수는 없을까? 그러기 위해선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처지라, 오로지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다. 덕분에 학교 성적이 늘 최상위 권을 벗어나지 않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 잘 먹기 위한 노력이 참으로 가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못 먹어서 삐쩍 마른 아이들이 많았던 그 시절에는 오동통하게 살찐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우유회사에서는 우량아 선발대회를 열고 포동포동 살찐 아이들을 선발하지 않았던가? 자기네 회사의 우유를 먹어서 그토록 살이 쪘다고 선전하기 위해서. 어른들도 배불뚝이가 대접을 받아 ‘사장’ 호칭을 얻어듣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이보다 훨씬 이른 시기인 1936년 이상(李箱)의 ‘지주회시(蜘蛛會豕)’를 보아도 돈푼깨나 있는 사장족은 똥배가 나와야 했었다. 요새는 그걸 ‘똥배가 나왔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점잖게 ‘인격이 나왔다’고 부러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똥배가 나온 사람은 그걸 소중하게 쓰다듬기도 하고 때로는 퉁퉁 두들겨 보면서 거만을 떨기도 했다.

 요순시대의 태평성대를 나타내는 말에도 ‘함포고복(含哺鼓腹)’이라고 해서 마음껏 먹고 배를 두들기며 지냈다고 하지 않았던가? 먹고 사는 것이 주요한 이슈이었던 시대에는 뚱보야말로 이상적인 인간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조금도 이상스럽게 여겨지지가 않았었다.

 요즈음 나는 그렇게들 부러워하던 똥배가 나왔다. 50세가 넘으면서 알게 모르게 몸무게가 불어나기 시작하더니, 65kg이 되면서부터는 더 이상 불어나지 않고 고정된 몸무게를 유지하게 되어서 참으로 다행이라 싶었다. 내 체격에는 꼭 알맞은 체중이라서 오래간만에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40여 년을 넘게 피웠던 담배를 끊으면서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담배를 끊으면 보통 3~4kg 정도의 몸무게는 불어난다고 들었지만, 이건 해도 너무 했다. 무려 7kg이나 불어나서 72kg이 된 것이다. 짧은 입으로도 살 좀 찌려고 억지로 마구 먹어대던 젊었을 시절에는 전혀 반응이 없던 배가 그만 똥배로 변해버린 것이다.

 영양가가 많은 호텔식을 먹는다든가 하는 날엔 75kg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은 몸무게를 줄이는 일이 내 최대의 현안으로 등장을 했다. 어쩌면 줄일 수 있을까? 우선은 식사량을 줄였다. 원래 소식장수(小食長壽)라 하지 않았던가? 조금씩 먹는 일은 여러 가지로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 돈은 물론이고 자원절약이란 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었고, 공해요소를 줄인다는 측면으로서도 유의미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먹는 일에 탐닉한다는 형이하학적인 인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렇다. 이제는 형이하학을 벗어나서 고상하게 형이상학 쪽을 배회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