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새 딩가딩가하던 날
이음새 딩가딩가하던 날
이 웅 재
12월 3일. 이음새의 출판기념회 날이다. 나는 원래가 거창하고 떠들썩한 모임은 별로인지라 오늘과 같은 조촐한 모임을 좋아한다. 해서 예정시간보다 약간 이른 시각에 약속장소인 인사동 ‘산골물’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 일인가? 평소라면 한두 명 정도가 나와 있을 시간인데 벌써 10여 명은 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늦게 오는(?) 나를 반겨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졸지에 지각생이 되어 버렸다. 어리둥절해 있는데, 전(前) 회장님이 손을 내민다. 악수를 하자는 거다.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 선생은 1909년 황성신문사(皇城新聞社)에서 간행한 “만국사물기원역사(萬國事物紀原歷史)”에서 악수란 내 손에 무기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한 행위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상대방을 해칠 무기를 숨겨가지고 온 바 아니기에 흔쾌히 악수를 했다. 이런 의식은 으레 동일한 행위를 계속 잇따르게 한다. 말하자면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고 다른 여성분들과도 악수의 의식을 한동안 계속하였다. 악수를 끝낸 후 나는 말했다.
“아니, 벌써들…?”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연유를 밝히는 멘트가 내 입막음을 한다.
“우리는 한 시간 먼저 모였습니다.”
“네에?”
“이렇게 좋은 날, 여자들의 수다가 빠져서야 어디 될 법이나 한 일입니까? 그래서 수다를 위한 시간, 한 시간을 미리 계상해둔 거죠.”
그렇다. 수다란 마음속에 들어있는 말들을 체면 차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떠벌리는 일이다. 풀어버릴 수 없는 마음속의 생각은 때에 따라서는 한(恨)으로 응어리져 버릴 수도 있는 것인데, 그것을 속 시원히 풀어버리니 어찌 신명이 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수다야말로 온갖 스트레스를 확 날려 보낼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에겐 그것이 없어서 여자보다 평균 수명이 5~6년 적은 것은 아닐까? 오래 살려면 수다 떠는 일부터 배우고 볼 일이다.
미리 계상해 두었던 한 시간의 시간 가지고는 부족하였던 때문일까? 수다는 계속되었다. 새로 나온 책에 대한 품평에서부터 오랜만에 만나는 분에 대한 덕담도 있었고, 슬금슬금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하는 얘기들까지….
대충 와야 할 사람들이 모이자 드디어 가장 중요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가장 중요한 행사? 그거야 당연히 우리를 먹여 살리는 ‘입’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를 신명나게 떠들 수 있게 해준 것도 입이었는데, 이제 우리 몸의 양식을 조달해 주는 일도 입이 도맡고 있으니, 입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싶다. 먹고 마시고 떠들다 보니 시간도 이슥해지고 배반(杯盤)이 낭자(狼藉)한데다가 이젠 먹을 음식마저도 거의 동이 나버렸다.
오늘은 애초부터 2차로 딩가딩가가 있을 것이라고 공지해둔 만큼 집에 있을 남편이나 아내의 안위가 적이 궁금한 사람들 몇 분만 먼저 귀가하고 ‘노래방으로!’를 호기 있게 외치며 음식점을 나섰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아까까지도 멀쩡하던 하늘이었는데,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서울지방에는 지금까지 이미 두 번의 눈이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은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느라고 내린 줄도 몰랐고, 또 한 번은 내리는 듯 마는 듯해서 그것도 내게는 첫눈이 아니라고 치부해 버렸었다.
그래서 이음새 카페에 올라온 박하향기 님의 글을 보고, Echo 님도 준서 씨도 착하고 고운 사람이라서 첫눈을 맞았다는데, 나만 첫눈을 보지 못한 것에 심술마저 났었다. 그러면서 나는 다음에 좀 펑펑 내리는 눈을 첫눈이라고 치부하겠다고 했었다. 두 번째 눈도 눈답지 못했었다.
박하향기 님이 나를 보고 말했다.
“첫눈이 내리네요. 특히 거북이 샘께는….”
그래, 내겐 이게 첫눈이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는지 펑펑, 펑펑 쏟아진다. 여와(女媧) 씨를 불러내어 하늘을 꿰매지 못하게 쐬주라도 퍼 먹여야 하겠다. 그래서 말했다.
“이쪽은 딩가딩가, 그리구 요쪽은 홀짝홀짝, 어때요?”
하지만, 안 먹혀든다.
“홀짝홀짝은 3차로 하시구요, 먼저 딩가딩가로 가시죠?”
해서 ‘노래방에만 가면 주눅 드는 남자’도 노래방엘 따라갔고, 추석이 지난 지도 오래건만 돼지 목 따는 소리로 두 곡씩이나 생음악을 틀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이명재 교수님은 ‘장족의 발전 어쩌구…’ 하면서 놀리기까지 한다.
‘훌륭한 가수’ 님들의 노래를 들으며 예약시간 1시간을 버티고, 덤으로 주는 10분까지 지내고 나서야 홀짝홀짝파의 득세가 가능해졌다. 그래봐야 토토와 거북이 그리고 오늘 새로 합세한 이안 님 해서 셋뿐이었지만.
우리는 쐬주 3병을 까고도 미진하여 2층에 있는 OB Park로 옮겨 창문 옆에 자리를 잡았다. 500cc짜리 생맥주잔을 앞에 두고 창 밖을 내려다보니, 아, 펄펄 눈 내리는 인사동 골목은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골목에는 카니발이었든지 까만 승합차 한 대가 눈 속에 파묻히고 있었는데, 어디서 왔는지 전경 3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하이파이브!’를 외치더니 곧 승합차를 가운데 두고 흩어지면서 몸을 최대한도로 낮추고 있었다.
차 속에 수배자라도 있는 것일까? 그들의 몸이 거의 바닥으로 굽어지는가 싶더니, 저런, 그들은 수북하게 쌓인 눈을 두 손을 뻗어 움켜쥐더니 그것을 뭉쳐 눈덩이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잠시 후 그들은 승합차를 엄폐물로 삼고 눈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 위로 데모 학생들과 대치하여 몽둥이를 휘두르는 전경들의 모습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누가 그들로 하여금 몽둥이를 휘두르게 하였는가? 저처럼 천진무구한 전경들인데….
“어이, 여기 500cc 석 잔 더….”
어느덧 손에 들고 있던 맥주잔이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