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 1·2·3, 그리고 변명 1·2·3
미안함 1,2,3, 그리고 변명 1,2,3
이 웅 재
아내에게 항상 미안하다.
미안함 1
선보러 나가는 자리에 술 먹고 나간 일. 아내는 선보는 날 술 마시고 나왔다는 것은 정말로 피치 못한 사정 때문에 딱 한 잔만 한 것일 텐데 저토록 취한 모습이니, 분명 술은 잘하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생각해서 나하고의 결혼을 결심했단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두고두고 미안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33살이나 먹은 나는 아직도 결혼할 나이가 못 되었다는 생각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했었다. 아니, 나 혼자 살기에도 벅찬 내가 누구와 더불어 산다는 생각은 사실 ‘사치’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술 한 잔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어기지 않고 나와준 나를 보고, “이런 사람이라면 일생을 맡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굳혔던 모양이었다.
정말로 미안하다. 그리고 그토록 믿어준 것, 고맙다.
미안함 2
결혼할 때 멋진 반지 하나 제대로 못 해준 것. 가난뱅이란 점을 한껏 자랑스레 여겼던 나의 치졸함이 두고두고 미안한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까짓 다이아몬드라야, 고온에서도 타버리지 않고 스스로 발광(發光)을 한다는 일 빼고서는 무에 대수로울 게 있으랴 싶어서, 기껏 탄소 덩어리일 뿐인 그런 건 단지 하나의 허식(虛飾)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우리 아예 생략해 버리자고, 지금 내가 생각해도, 정말로 염치없는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아내는 나에게 ‘좋아요, 좋아요’ 하고 맞장구를 쳐 주었던 것이고, 나는 정말로 좋다고 생각하는 줄 알고, 내 생각으로서는 그 비싼 반지 따위는 생략해도 될 것이라고 단정하고, 그냥 ‘마음’만 선물했던 것이다. 생각하고 생각해도 미안하다. 그리고 또한 고맙다.
미안함 3
신혼 초 단칸 전세방마저도 빚내어 얻은 일. 그걸 두고두고 갚느라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었다. 정말로 우리 주례 선생님께서는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것이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상투적인 주례사였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렇지 않다. 그건 단칸 전세방을 벗어나기까지의 우리 부부의 삶을 어쩌면 그렇게도 정확하게 예언하시었던 말씀인지…, 나는 지금도 파뿌리를 보면 어김없이 현기증이 일어난다. 지금은 그런대로 어쩌다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해 살고 있지만, 그렇다, 우리의 검었던 머리는 파뿌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여보, 정말로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러면서도 나는 늘 변명한다. 습관적으로 변명한다.
변명 1
“술 좀 고만 마실 수 없어요?”
앙칼진(미안. 남들 얘기가 남편의 입장에서 들을 땐 으레 그렇게 들린다고 하니까 나도 같이 써 본 말일 뿐이라고) 목소리가 예쁘다.
“선 보는 날 벌써 술꾼이라는 걸 십분, 아니 백분 보여 줬는데, 웬 바가지?…”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나는 조금 뒤끝이 켕긴다. 결혼할 때야 술꾼인 줄 모르고 결혼했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결혼한 것이니, 결혼한 이후로는 술꾼이기를 포기했어야 옳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그건 분명 어쭙잖은 변명일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변명 2
“액세서리를 요란스럽게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생각해 봤어요? 자연조건에 따라 이동이 가능해야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유목민들에게는 언제 생활근거지를 이동하더라도 전 재산을 함께 지니고 가야 하기 때문에 전 재산이 값비싼 액세서리여야 하지만, 우리 민족과 같은 농경민족에게는 땅, 땅이 중요한 거라구요.”
말은 그렇게 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땅, 그토록 중요한 땅을 대량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인데, 전혀 그렇지를 못한 것이었다. 단 1평의 땅도 가지고 있지 못한 주제에 값비싼 액세서리를 해 주지 못한 것을 액세서리 무용론으로 때우려고 해?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변명을 위한 변명일 밖에 없는 일이다. 변명도 변명다운 변명을 해야지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변명이라고 해 대는 나 자신이 정녕 못마땅하다.
변명 3
“전세방에서 살아 봤으니까 내 집 좋은 걸 알겠지? 이젠 주례 선생님 말씀대로 검은 머리도 파뿌리가 되었으니 전세방에서 살던 일 옛날얘기도 할 수가 있게 되었고. 정말이지 빚내어 전세방 얻어서 살아보지도 못한 사람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불쌍해. 아등바등 노력하며 사는 재미를 전혀 모르잖아? 셋방살이도 못해 본 사람들…, 불쌍해서 어떡허지?”
그래, 처음엔 “불쌍해서 어떡허지?” 하면서, 나는 내 과거를 싸그리 묻어버리려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묻힐 성질의 것인가? 아등바등 살아온 일이 그런대로 대견해 보여서 억지로 말해보는 하나의 변명꺼리일 뿐임을 이제는 내 아내도 익히 알고 있다.
미안함 1,2,3 + 변명 1,2,3 = 나는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