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

일본인들의 억지는 독도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거북이3 2006. 3. 31. 22:53

 일본인들의 억지는 독도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  웅  재


“일본 문부성과학성이 29일 내년 봄부터 사용될 고등학교 교과서를 검정하며 ‘독도=일본 땅’을 명확히 표현하도록 출판사 측에 요구했다.”

 이는 31자 “중앙일보” 2면의 기사였다.

 “여기에는 ‘한국의 강한 반발을 유도하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일본 정부의 조치에 한국이 대대적으로 맞대응할 경우 한국이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독도가 ‘국제 분쟁지역’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갈 수 있는 명분을 어떻게든 만들겠다는 속셈이다.”라는 해설이 뒤따랐다. 맞는 말이다. 그들은 독도 자체의 국제 분쟁화까지는 못 간다 하더라도 그걸 미끼로 무언가 다른 문제에서의 양보를 받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허무맹랑한 주장을 계속해올 리가 없는 것이다.

 작년 2월 시마네 현에서 ‘다께시마의 날’을 선포하던 날을 돌이켜 보자. 초등학교 학생까지 동원하여 독도(그들이 말하는 바로는 ‘다께시마’)가 자기네의 땅이라고 억지를 쓴 ‘나의 의견’이라는 글에는 ‘산림자원이 풍부한 다께시마’ 어쩌고 하면서 그러한 곳을 한국에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들어 있었다.

 코미디가 따로 있을까? 다께시마[죽도(竹島)]라는 말부터가 생소하다. 독도에 ‘죽도’라고 할 만큼 대나무가 많던가? 더구나 그 조그만 섬에 산림자원이 풍부하다니? 그들의 말대로라면 다께시마는 독도가 아닌 어느 딴 섬을 지칭하는 말일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다께시마는 독도가 아니라 다른 섬, 그야말로 다께시마[죽도]인 것이다.

 이와 같은 억지는 독도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작년 4월 학생들을 인솔하고 일본문화 탐방을 한 적이 있었다. 일본의 출판문화를 살펴보기 위한 탐방이었다.

 일본 제2의 출판사 고단샤[講談社, Kodansha]를 둘러본 감회를 나는 이렇게 적었었다.

 “놀랐다. 출판사 건물이 그렇게 크고, 그렇게 깨끗하고, 그렇게 친환경적이고, 그렇게 많은 직원이 있고, 그렇게 많은 월간잡지를 발행하고, 그렇게 겸손하고, 그렇게 충실한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본 출판학교인 에디터 스쿨을 방문했을 때도 놀랐었다. ’64년 창립한 학교이니 2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학교였다. 연간 1,5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별도의 통신교육도 행한다고 했다. 자체 빌딩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없는 교정기능 자격검정, 서적제작기능 자격검정, 서적편집기능 자격검정 제도 등도 실시하고 있었다. 특히 교정기능 자격검정이 인기라는데, 이는 일본을 독서대국으로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우리나라의 책처럼 오자, 탈자 투성이의 책은 기실 읽고 싶은 마음을 싹 앗아가 버리는데, 글자 한자 한자를 꼼꼼히 따져가며 제작한 서적이라면, 그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읽어주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거기서 편집실습 수업을 참관하면서 일본의 저력을 느껴 보았고, 일본에 대한 호감을 가져 보았다.

 키노쿠니야[紀伊國屋, kinokuniya] 서점을 가 보았을 때에도 그랬다. 키노쿠니야 서점은 우리나라 교보문고와 비슷한 곳으로 일본 제일의  대형서점이다. 교보문고에도 웬만한 책들은 거의 구비되어 있는 편이지만, 이  키노쿠니야 서점에 비하면 어림도 없었다. 주로 사진이나 디자인과 관련된 서적들을 둘러보았는데, 정말로 없는 책이 없었다. 예를 들어 한류(韓流) 스타 배용준에 관한 책만도 수십 종이 구비되어 있었고, 그 외에도 수많은 한국 연예인들과 관련된 책들도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추락하는 비행기에서의 마지막 5분간의 일마저도 기록으로 남긴다는 일본인들, 모든 것이 책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본이 또다시 부러워졌었다.

 그런데, Toppan[凸版] 인쇄박물관[Printing Museum, Tokyo]을 둘러보면서 이제까지의 호감을 한 순간에 백지화시켜 버렸다.

 인쇄 발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 그곳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는 대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재미있고 신기한 전시물들도 있어서 처음에는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잡지 크기의 “滑稽新聞”이라든가 우리나라의 6전소설처럼 보이는 “少年俱樂部”…등등을 보면서 더욱 그랬다.

 그런데 점차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인쇄박물관이라면 다른 것은 몰라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에 대한 전시물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1377년에 간행되었던 “직지심경(直指心經)”, 지금은 프랑스에 있지만, 독일의 구텐베르크의 활자보다도 훨씬 빨랐던 한국의 금속활자. 세계적 공인을 받은 그 “직지심경”에 대한 전시물이나 설명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통역을 맡은 분에게 정확한 확인요청을 했지만, 박물관 관계자는 그런 건 모르겠단다. 그 소리를 듣고 난 다음에는 그 많은 전시물들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져서,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한국과 관련된 전시물로서는 “훈민정음” 복제본 하나밖에는 보지 못했다.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생각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정신대를 부정하고, 총리가 이웃나라의 반대를 무릅쓰고 1급 전범자들의 위패를 안치해 놓은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있는 나라, 역사를 왜곡하면서 식민통치가 우리나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둥 모든 것을 자기네들 중심으로만 사고하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 아닌가?

 일본을 다시 보자. 그리고 우리를 다시 찾자. 축구나 야구에서만 이긴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 점을 뼈저리게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