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의 장관(壯觀) [괌 여행기 중에서]
일출의 장관(壯觀) [괌 여행기 중에서]
애초에 이 여행은 엉뚱하게 시작되었다.
김경수: 1942년 12월 17일생.
1962년 ×× 대학교 국문학과 입학.
이웅재: 1942년 12월 17일생.
1962년 ×× 대학교 국문학과 입학.
같았다. 주민등록 상의 생년월일이 서로 한 살씩 줄어 있는 것도 같았고, 실제로는 음력인 점도 같았다. 같은 해에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입학한 것도 같았다. 뿐만 아니라, 졸업 후 한때 같은 학교의 같은 국어 선생님으로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게다가 성(姓)만 달랐지 부인의 이름까지도 같았다.
그런데, 그 경수가 환갑이란다. 그리고, 뭐 집에서는 그날 연기를 피우지 말란다든가? 요즘 누가 환갑까지 찾아 먹겠다고 할까마는, 아예 집에서는 밥도 지어먹지 말란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믿어서는 아니지만 공연히 기분이 찜찜해지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예 여행을 떠나기로 했단다.
제 환갑이면 내 환갑이니까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국내라면 또 모를까, 혼자서는 무슨 맛에 해외 여행을 하느냐고. 괌(Guam)에 있는 호텔까지 무료로 예약해 주겠다는 제자가 있으니, 왕복 여비만 달랑 준비하면 된다고 꼬드기는 데에야, 안 넘어갈 도리가 없어서 그만 O․K 하고 말았던 터수다.
’02년 1월 28일(월) 새벽 6시 20분경(현지 시각).
호텔 앞 바다의 일출 광경을 보다.
녹색의 숲 앞쪽에 아스라히 펼쳐진 바다. 희뿌염히 밝아오는 새벽빛. 아직은 검푸른 빛의 바다 위 저 멀리 지평선이 아득히 보이고, 그 한 뼘쯤 위로 길게 깔린 구름이 서서히 내가 있는 쪽으로 몰려오고 있는 듯하다. 오른쪽으로는 그 구름이 바다에 맞닿아 있고, 구름과 바다 사이로 불그레한 빛이 내뿜어지고 있었다. 사방에서는 장닭의 울음소리가 길게 들려왔다. 그 소리는 한국에서의 장닭 소리와 별 차이가 없었다.
“꼬끼요 꼬―.”
마치 드리운 커튼을 말아 올리는 듯 지평선과 구름의 간격이 조금씩 벌어지면서 그 사이로 장닭 소리가 파고들고, 그래서 벌어진 틈새로 다시 한 줄기 밝은 빛이 주르르 흘러드는 듯하더니, 어느새 날이 밝아 버리는 것이었다.
시내 쪽은 가로등 불빛이 연출하는 찬란한 야경이 한 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가까운 곳으로는 우리 호텔 말고는 네온사인도 보이지 않는다. 잠시, 서울의 그 눈을 피로하게 만드는 전광판들은 철저한 규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의 찬란한 야광(夜光)은 제멋대로 내걸린 어지러운 전광판들이 만들어 내는 야광(夜光)과는 그 격조가 달랐던 것이다.
왼쪽으로는 용과 호랑이가 서로 다투는 듯한 일단의 구름이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해는 그 구름 속에 가리워 있는 듯 불그스레한 빛이 구름들의 입자(粒子)를 뚫고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다시 오른쪽으로는 빗발이라도 내리는지 넓적한 붓을 가지고 바다 쪽으로 회색의 붓칠을 한 듯한 모습이 선명하다.
아이들의 롤러 스케이트장인 듯 장애물까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공터에는 개 다섯 마리가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는 듯 서로 엉겨 장난질을 치고 있었다. 하루를 여는 새벽의 모습이라 그런지 무기력한 모습들은 아니었다. 어제는 보기 힘들었던 승용차들도 여기저기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출근하는 사람들이 새 아침을 열고 있는 모양이었다.
날이 완전히 밝아 와도 구름 속 해는 우리 이방인들을 마주 대하는 것이 부끄러운 듯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그저 붉은 빛만 더욱 짙게 뿌리고 있었다. 다시 보니 이제는 개들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사방을 둘러보는 동안 날은 완전히 밝아 있었다. 거리의 가로등도 하나둘 소등되기 시작했고, 호텔 아래쪽 풀장에도 직원 두엇이 나와 편안히 몸을 눕힐 수 있는 의자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새날,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채비를 갖추는 것이다.
또다시 바다 쪽을 바라보니 아아, 이미 솟아올랐다고 생각했던 해가 바로 이 순간 수평선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까지의 모습도 환상적이었는데, 이미 구름 속으로 솟아올랐다고 생각했던 해가 실은 이제부터 솟아오르는 것이다.
아아, 이 감격, 사실 나는 국내에서도 일출 광경을 이토록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었다. 토함산의 일출은 번번이 시커먼 구름떼들의 심술로 못 보았고, 낙산사에서는 나의 일출 관망을 일부러 방해하려는 듯한 흐린 날씨로 인해 애초부터 포기해야만 했었던 것인데, 이게 무슨 횡복(橫福)이란 말인가? 굳이 사전에도 없는 ‘횡복’이란 말을 쓰는 것은 마치 예기치 못한 횡액(橫厄)을 당하듯 횡재(橫財)를 만났다는 뜻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하여 사용한 말이다.
횡액을 당하듯 마주친 횡재. 나는 ‘일출 광경’ 하면 조선조 순조 때의 의유당 연안 김씨가 썼다는 ‘의유당 일기’ 중의 ‘동명일기(東溟日記)’를 떠올리곤 했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일출 광경의 묘사는 다시 쓰여질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 왔었는데, 과연 그 생각은 옳았다. 어떠한 말로써도 ‘동명일기’보다 나은 일출 광경의 묘사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해는 누군가가 밑에서 밀어주고 있듯 잠깐 동안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수평선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은 계속 어질어질했다. 진정이라도 하듯 마음을 가다듬고 호텔 앞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도시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길거리에는 아이들 7~8명이 등에 가방을 메고 옹기종기 모이더니, 여기저기서 또래들의 뭉치가 불어나고 있었다. 아마 학교에 가는 중인가 보았다. 한국 같으면 겨울 방학인데, 한결같이 27。C 정도의 기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보니 이곳은 지금도 학기 중인 모양이었다.
한 떼의 아이들은 한 자리에 모여 서로 장난질이다. 다른 쪽의 아이들도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마치 하교 길을 연상시키는 광경이다. 우리의 고3에 해당하는 12학년까지 무상 교육이라니 제 돈 내고 하는 공부가 아니라서 저렇게 한가로운 것일까? 한 마디로 부러운 느낌이 드는 여유로움을 느꼈다.
이제 해는 완전히 떠올라 그 위쪽 구름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면서 거리의 가로등도 모두 소등이 되었다. 날이 완전히 밝은 것이다.
시간을 보니 현지 시각 7시 정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