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19) 사투리도 모르는 국어 선생
(거북이 19)사투리도 모르는 국어 선생
이 웅 재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경상도 지방의 모 여중고의 국어 교사로 부임했다. 여학교의 총각 선생은, 생긴 것에 비해서 인기가 좋았다. 숙직 때면 학생들이 먹을 것을 산더미처럼 조달을 했고, 통금 시간 전에 그들을 내쫓는 일이 당시에는 가장 큰 문제였다. 그것은 별로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 생각하여 여학생들의 관심도 꺼 버릴 겸, 나는 마음에 드는 여선생님에게 ‘날짜’ 신청을 했다. ‘날짜’, 영어로는 ‘데이트(date)’였다. 여선생 왈,
“언제예.”
아하, ‘언제’ 만나자는 말을 안 했구나.
“내일 저녁 6시오.”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쉽게 데이트 신청이 받아들여질 줄 알았더라면 좀더 일찍 신청을 할 것을…, 망설이느라고 얼마나 속이 탔던고?
여선생님이 다시 말했다.
“어데예.”
그렇지, 장소를 말하지 않았구나. 그 당시에는 주로 빵집을 이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또 만나 빵집」에서요.”
여선생님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가 버렸다. 학생 하나가 우리 있는 쪽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나는 모처럼 이발도 하고(사실 나는 이발소 가기를 무척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일찍 일어나니 머리가 무거웠다. 설렘 때문에 잠을 푹 자지 못해서라고 단정하고, 나는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런데 나의 사랑 여선생님께서는 오시지를 않는다. ‘10분 정도야 늦을 수도 있지.’ 나는 스스로 변명했다. 그런데 30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60분, 1시간이 지났다. 그때 나는 시계의 초침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린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이란 말이 있다. 미생이란 사람이 여인과 다리 아래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여인은 오지 않고 마침 비가 엄청 내렸으나 끝까지 약속을 지키려다 교각(橋脚)을 끌어안은 채 죽었더라는 얘기로 어리석은 신의(信義)를 두고 하는 말이다. 꼭 그 미생과 같은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중 알고 보니, ‘언제예’, ‘어데예’는 모두 부정의 뜻, No라는 뜻의 그 지방 사투리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저절로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꼈다. 상대방 여선생님에게 딱지를 맞았다는 자존심의 상처라든가 미생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느낌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사투리도 모르는 국어 선생, 그래서 이발비만 날린 국어 선생으로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게 된 처지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