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이 웅 재
으스름 달밤, 인적이 드문 호젓한 길을 걷다 보면 문득 뒤쪽에서 누가 쫓아오는 듯 머리가 쭈뼛쭈뼛해지는 때가 있다.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그 아무도 없다는 점이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그럴 때는 귀신이 따라오는 것이란다. 어느 과학자의 말이다.
그러나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귀신에겐 원래 에너지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을 해칠 만한 힘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뒤돌아보는 일은 피해야 한단다. 그쪽으로 시선이 향하는 순간, 에너지의 이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긴 도깨비도 쳐다보면 볼수록 커진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무섭더라도 참으란 얘기다. 뒤돌아보는 일만 참으면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니, 그런 사실만 안다면 귀신은 더 이상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어렸을 적에는 호랑이도 무섭게 여겨지는 존재 중의 하나이긴 했지만, 그건 곧 ‘곶감’에게 판정패를 당하게 된다.
시골에서 2,30리 길을 걸어서 학교엘 가야 하던 아이들에게는 사람이 무서웠다. 특히 오후반의 경우에는 한두 명이 따로 떨어져 학교엘 가야 하는데, 사람의 통행이 별로 없는 학교 가는 도중에는 진달래꽃 활짝 핀 산등성이도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어쩌다가 저쪽 산기슭에서 사람의 형체가 가물가물 보이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진달래 풀숲으로 숨어 버린다. 문둥이들이 병을 고치려고 애들을 잡아다 간을 빼먹는다는 헛소문이 돌고부터 그랬다.
무서운 사람 중엔 마누라도 있다. 세상에 공처가 기질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던가?
옛날 아주 용감한 장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적군은 무섭지 않은데 마누라에겐 꼼짝을 못 하는 공처가였다. 그는 자기 부하들은 어떤지 궁금했다. 그래서 깃발 두 개를 세워 놓고 한 쪽엔 공처가인 사람들을 모이게 했고, 다른 한 쪽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모이라고 했다. 모든 부하들이 공처가가 모이도록 되어 있는 깃발 쪽으로 갔다. 헌데, 단 한 사람만이 그 반대쪽으로 가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장군은 놀라 존경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당신은 아내가 두렵지 않단 말이오?”
부하가 대답했다.
“우리 집사람이요, 사람들 많이 모인 곳에는 가지 말랬어요.” (서거정의 “동인시화”에서)
아내에 대한 두려움은 사랑으로 치유될 수도 있는 것이니 일단 논외로 치고, 또 무엇이 무서운가를 생각해 본다.
옛 성현들의 말씀 중에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무섭다)'가 있다. 여기서 '가혹한 정치'란 '세금을 많이 걷는 정치'를 말한다. 소득의 20%를 넘게 징수하는 세금, 그것이야말로 정녕 두려워할 만한 정치가 아닐까? 그러나, 민주시민이 세금 안 내고 살아갈 방도는 없으니 두려워도, 무서워도 이건 참고 지내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겠다. 세금 못지 않게 무서운 것에 빚이 또 있다.
"사채 400만 원의 수렁"이란 신문기사를 한번 보자(04.4.29자 조선일보 A12면). ‘빚 못 갚자 인터넷 윤락 강요, 여대생에 2년 간 억대 갈취’란 소제목에 이어, “말을 듣지 않으면 집에 알리겠다”는 등의 협박으로 “하루 평균 5~6씩의 남성을 상대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건 극히 일례에 해당할 뿐이다. 요새는 카드 빚 때문에 절도, 강도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족 동반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가? 지고 싶어 빚지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빚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히 알아두도록 하자.
지금까지 이야기한 ‘무서운 것들’은 모두 ‘나’의 밖에서 존재하는 무서움들이다. 따라서 이런 무서움들은 우리 누구나가 모두들 잘 알고 있는 무서움들이다. 그런데, 무서운 것 같지 않으면서도 무서운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마음 내부를 무너뜨리는 무서움이라서 더욱 심각성을 띠고 있다고 하겠다.
특별히 가깝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은 친척 한 분이 예고도 없이 집을 찾아왔다. 웬일일까? 그러나, 그런 의문을 무화(無化)시키는 것이 있었다. 바로 캔 맥주 2박스. 그걸 앞세우고서 보무도 당당하게 ‘쳐들어온’ 것이다. 그분은 내가 술에는 마음이 약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주거니 받거니, 권커니 잣거니…맥주 2박스는 그렇게 들어뻥이 났다. 친척 분은 불콰해진 모습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만나 한 잔 얼큰히 잘 했군. 그날 나는 숙면을 취했고, 그 일은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런데, 열흘쯤 지나서인가? 때르르릉! 전화를 받아 보았더니, 글쎄, 제 손자 놈 이름 좀 지어달란다. 수리오행(數理五行), 음령오행(音靈五行) 등을 이것저것 따져서 상생의 이름자를 찾아내려면 최소한 꼬박 하루는 걸려야 하는데, 이미 공짜로 얻어먹은 술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다. 이와 유사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명절날 일직이나 숙직을 대신 부탁하기 위한 공짜 선심공세도 적지 않다. 그건 따지자면 공짜를 좋아하는 마음, 불로소득의 심리를 이용한 일종의 미끼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사적인 문제에서는 서로 간에 넘치는 정이라도 있게 마련이다. 이것이 공적인 문제와 결부될 때에는 인정(人情)을 가장한 뇌물로 둔갑한다. 식사라도 한번 같이하고 싶었는데 남의 눈도 있고 시간도 잘 맞지 않아서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호주머니에 억지로 찔러 넣어주는 ‘푼돈’, 모처럼 명절을 맞아 그냥 넘기기가 섭섭해서 약소하나마 받아두라는 과일상자.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다간 ‘큰코를 꿰이게’ 될지도 모른다. 사과상자 속에는 서민들로서는 깜짝 놀라 ‘억!’ 하고 기절할 정도의 수표가 들어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공짜 미끼들은 대체로 현물, 현찰로서 ‘견물생심’의 심리를 부추기는 것들이며, 저와 나만 아는데 ‘괜찮겠지’ 하는 불확실한 안도감을 안겨다 주는 것들이다. 그 불확실한 안도감이 확실한 불안감으로 환치될 때의 파괴력은 엄청난 것이다.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없는 것, 애시당초 이 세상에 공짜란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 공짜란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이라는 확신을 잃지 말아야 하겠다. <A name="[문서의 처음]"></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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