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까지 잃고, 이제는 영원한 퇴출만이 남았다
믿음까지 잃고, 이제는 영원한 퇴출만이 남았다
이 웅 재
믿음이라는 것, 그건 정말로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내 신용도는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진정 걱정, 걱정이다.
막내가 군의관으로 임관되고 근무지로 부임하기 전 말미를 얻어 집으로 왔다. 배치 받은 곳이 사천이란다. 비록 영내이기는 하지만 아파트도 제공해 준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월요일부터 정식 근무라고 하니까 일요일까지는 침구 등을 가져다 놓아야 하겠기에, 자가용을 몰고 직접 한번 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해서 아내에게 말했다.
“사천까지면 한 네 시간 정도 걸릴 텐데, 갔다가 오려면 여덟 시간, 하루에 갔다가 그날로 돌아온다는 건 좀 무리가 아닐까?”
“그래요. 하루 여덟 시간 운전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네요.”
아내는 덥석 미끼를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토요일 저녁에 갔다가 하루 자고 이튿날 오면 어떨까? 시간이 나면 가까운 곳 구경도 좀 하고….”
땅끝마을이라든가 남해 쪽을 한번 휘돌아 오는 게 좋겠다는 소리를 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서 슬쩍 운만 떼어 봤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아내는 쌍수로 환영했다. 그래서 그렇게만 예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 식사시간이었다.
“너, 언제 갈래?”
아내가 물었다.
“내일 아침.”
“내일 아침?”
“네, 왜요?”
“가고 오고 여덟 시간은 운전을 해야 하는데, 좀 무리가 아닐까?”
이때까지만 해도 아내는 내 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로, 데리고 가지요.”
지로, 제 쌍둥이 형이다. 저는 운전면허를 땄으면서도 운전을 안 하는데, 지로는 가끔 내가 술을 마셨다든가 할 때, 내 대신 운전을 하곤 했던 것이다.
“응, 그러면 되겠네.”
뭐라고? 마누라님, 지금 제 정신이오? 나는 모처럼 일요일 오전 시간을 여유 시간으로 만들어 놓고 그쪽 명승지 한두 곳을 구경하고 오려고 마음속으로 잔뜩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랬다. 이젠 정말 그런 것이다. 예전 같으면 내 의견은 그대로 무사통과였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지금은, 아들의 생각이 더욱 소중한 게 되어 버린 것이다. 가는 곳마다 양성 평등을 주창하는 시대이건만, 삼종지도(三從之道)는 아직도 이처럼 건재한 것이다.
삼종지도. 아버지에게서 남편으로, 그 남편에게서 아들로, 그 따르는 대상이 바뀌어 가는 것이 삼종지도인데, 지금은 그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남편에게서 아들로, 그 믿고 따르는 대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아, 그 믿음, 그 믿음이 이제 나에게서 아들에게로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믿음, 그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겉으로는 일언반구가 없지만, 윌리엄 텔의 얘기에서도 그것은 얘기의 중심을 꽉 틀어쥐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믿지 못했다면, 어찌 날아오는 화살을 맞으며 꼼짝도 않고 지낼 수가 있었을 것인가? 머리 위에 얹혀 있는 사과를 맞히기 위해선, 사과를 이고 있는 사람이 움직이질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활솜씨를 굳게굳게 믿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 것을 생각하니, 조금은 섭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이튿날 사천으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고 묵묵히 운전만 하고 있자니, 그럴 수가 있는가 싶은 생각이 떠올라 저절로 열이 올랐다. 참자, 참자, 참자. 참을 인자 셋을 생각하며 참았다.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듯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열이 올랐던 마음이 참고 참으면서 누그러지기 시작하자 그만 온몸의 맥이 스르르 풀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저절로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운전자 최대의 적, 졸음이 막무가내로 내 눈꺼풀을 뒤덮고 있었다. 평소에도 윗눈썹과 아랫눈썹은 서로가 자주자주 만나는 편인데, 이건 아예 눌러붙어 있겠다고 강짜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도리가 없었다. 마침 망향휴게소가 눈앞에 어른거리기에 그리로 차를 몰았다.
“조금 쉬었다 가지.”
느긋하게 말하면서. 그런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난 후, 다시 운전대를 잡으려는데, 아내가 말했다.
“이젠, 지로하고 교대 좀 하세요.”
그래, 그랬다. 그건 내게도 썩 반가운 소리였다. 조금 가다 보면 다시 졸릴 테니까. 그런데, 그건 하나의 음모였다. 거기서부터는 사천까지 내내 지로가 운전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아까 내가 운전할 때는 두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속도 좀 줄여요.”, “옆 차가 끼어들어요.” 하며 온갖 참여를 다하던 아내가, 아주 편안히, 평화로운 얼굴로 잠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한 마디로 내가 운전을 할 때에는 불안하던 심정이 아들이 운전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안심이 된다는 증거였다. 나에 대한 아내의 믿음은 그만큼 희석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마도 봉급봉투를 내가 직접 받아서 ‘옛수!’ 하고 아내에게 건네줄 수 있다면, 아내의 나에 대한 믿음은 아직도 건재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봉급봉투가 사라져버린 시대가 아닌가? 봉급봉투가 사라지면서 믿음도 사라졌다.
하루하루 추락되어 가는 이 가장의 비애는 무엇으로 보상받은 수 있을까? 아니, 이제는 ‘가장’이란 말마저도 사라져 버리고 있지 않은가? 믿음을 받지 못하고 있는 남자들은 이제 영원히 퇴출을 하여야만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