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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6) 입학시험문제의 수송과 ‘섯다’

거북이3 2012. 9. 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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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6)

     입학시험문제의 수송과 ‘섯다’

                                                                                                                                                             이 웅 재

 

입학시험문제의 인쇄와 제본을 마치고 난 다음의 남아도는 주체하기 힘든 시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한다고 하면, 무슨 그런 싱거운 고민이 다 있느냐고 할 법도 하겠지만, 막상 닥쳐 본 사람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요즘처럼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연금(軟禁)되어 들어갈 때에는 일체의 개인용품을 반입할 수가 없어서 소일꺼리의 서적마저도 없는 실정이었다면 조금은 이해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회원들에게 각자 자기 학과와 관련되는 시험문제를 풀어보도록 명했었다. 그 결과 다른 과목은 문제가 없었는데, 단 한 과목, 수학 시험문제를 풀어보던 화공학과 회원 하나가 쩔쩔 매고 풀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너는 아무래도 뒷문으로 학교엘 들어온 게 아니냐?’면서 채근을 하여 보았지만, 그는 역시 풀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한 마디 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시험문제가 잘못 출제된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그건 우리나라에서도 수학에서는 제일인자라고 할 수 있는 분이 출제한 문제야. 잘못 출제된 것 같다고?”

내가 다그쳤지만, 그 친구는 계속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아니에요, 아닙니다!”

나는 총무처에서 감독 차 함께 나와 있는 심 선생 모르게 다시 한 번 풀어보라고 하였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결심했다. 심 선생에게 사정을 말했다. 그분도 몇 차례 확인 차 질문을 해 보고 나서 드디어 출제 교수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번 문제 좀 한 번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그때가 한밤중이었다. 상대 교수님께서는 내일 아침까지 확인 전화를 주시겠다고 했다. 화공과 학생은 그 이후에도 계속 문제를 풀어보고 있었다. 문제는 역시 풀리지 않았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내일 아침까지 확인을 해 주시겠다던 교수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안하네. 그 문제 잘못 출제되었네.”

화공과 학생은 학교의 위신을 살릴 수 있는 중요한 문제를 발견해낸 공이 커서,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지만, 정작 골칫거리를 떠맡은 것은 나였다. 왜냐고? 우선 정오표를 새로 인쇄하여야 하는데,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정오표의 수송이었다. 시험문제는 이미 학교 당국으로 보내진 뒤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슨 큰 문제이냐고? 모르시는 말씀, 그때에는 ‘부산연세’가 있을 때였던 것이다. 피란 시절에 있었던 교사를 하루아침에 없애버릴 수가 없어서 그냥 존속시켰던 부산 분교, 나중 1966년에 가정대학으로 개편되어 서울로 합치게 된 부산 분교에까지 시험문제 정오표를 수송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얘기해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겠다. 사실 나는 시험문제의 수송을 혁신적이라고 할 만한 방법으로 행했던 것이다. 그건 바로 비행기 수송이었다. 요즈음이야 그까짓 게 무슨 혁신적 방법이냐고 하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사람들도 비행기를 타보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던 시절이 아니던가? 그것을 나는 정오표까지도 비행기 수송을 고집하였다. 만에 하나, 시험문제가 혹시 탈취라도 당한다면 그때에는 학생들이 시험문제를 인쇄하였다는 것이 대서특필이 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요즈음 가끔 국가에서 관리하는 시험문제가 유출되었느니 어쩌느니 하는 기사를 볼 적이면, 나는 그때의 일을 상기하곤 한다. 학생이 만드는 시험문제도 그토록 만전을 기하곤 하였는데, 나라에서 관리하는 문제가 어떻게 탈취도 아닌 유출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는 말이다.

그렇게 정오표마저 비행기 수송을 하였는데도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질 않았다. 그때 총무처 직원 중에서 심 선생과 함께 파견 나와 있던 분이 한 사람 있었다. 느닷없이 그분이 제안을 한다.

“우리, 섯다라도 하면서 시간을 죽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소리에 나는 움찔했다. 등록금으로 ‘짓고땡’을 했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 마디 하려고 했다. ‘학생이 무슨….’ 그러나 그 말은 내 입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자, 여기 10만 원씩을 나누어 드릴게요. 따시면 10만 원과 함께 모두 가지셔두 됩니다. 단 섯다를 하지 않고 그냥 ‘인 마이 포켓’은 안 됩니다.”

이거야 원, 노름 밑천에서부터 대 주고 따면 몽땅 다 가져가도 된다니, 그걸 마다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시간은 죽여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섯다’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시작된 노름인데, 노름이란 하다 보면 성인군자라도 눈에 쌍심지를 켜게 되는 것, 한 푼이라도 더 따려고 기를 바락바락 쓰는 게 상식이 아니던가? 모두들 열을 올려 돈 따먹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바람에 무료(無聊)함은 쉽게 벗어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용의주도하게 애를 써도 돈을 따는 일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아니, 말짱 허사였다. 연금에서 풀려날 즈음해서 우리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돈을 나누어주었던 사람에게 몽땅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그는 노름의 귀재였던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그는, 목사이면서 소설가인 모 유명 작가의 아들로서, 신과 대학까지 나온 장래 목사 지망생이었다는 점이다.

“목사가 되겠다면서 그렇게 노름을 잘 하세요?”

내가 빈정거리는 투로 물었다. 공짜로 생겼던 돈을 전부 잃고 말았다는 데 대한 분풀이를 겸한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내 말에 동조하는 눈치를 보이면서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느긋한 표정으로 아주 느릿하게 한 마디 하는 것이었다.

“목사가 되려면, 그 어떤 사람도 포용(包容)해야지. 그런데, 그들의 심정을 제대로 모르고서야 어떻게 포용하겠어? 노름꾼의 마음도 알아야 하는 거지.”

지금은 이름도 잊었지만, 그는 아마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어느 조그마한 교회에서, 우리가 대할 수 있는 그 어느 훌륭한 목사님보다도 더욱 존경스러운 목사님이 되어 있으리라 믿어진다. 그렇게 입학시험문제의 인쇄는 별 탈 없이 마치게 되었다.

(2012.9.4. 원고지 1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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