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골목길 풍경

거북이3 2014. 9. 3.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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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길 풍경

                                                                                                                                                    이 웅 재

  1960년대였다. 왜 그렇게 골목이 많았을까? 가는 곳마다 골목이었다. 꼬불꼬불 이어져 있는 골목길, 그 길은 지루하지가 않다. 골목마다 나름대로의 색깔이 있기 때문이다.

  골목길은 심심하지가 않다. 멍멍이가 두어 마리 나타나면 골목길은 놈들 세상이 된다.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가끔은 보기에 민망한 사랑놀이도 한다. 촐랑이는 흰둥이의 새끼인데도 제 어미에게 들러붙는다. 그래서 사람과는 가장 가까운 동물이면서도 온갖 욕설에 개가 등장하는 모양이다. 야옹이도 살금살금 숨어 다닌다. 어쩌다 쥐새끼라도 하나 지나칠라치면 어떻게 그처럼 재빠른지 휙 하는 사이에 낚아채 버린다.

  어떤 골목에는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들이 너저분한 곳도 있다. 그런 곳을 지날 때에는 연탄재라도 냅다 걷어차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그런 곳도 지린내가 나는 골목보다는 훨씬 낫다. 거나해진 취객들이 전봇대를 붙잡고 ‘서서쏴!’를 하는 곳은 대체로 막다른 골목이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그 지린내가 지겨워서 ‘소변금지’라고 써 놓는 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서 아예 가위 그림까지 그려 놓고 ‘짤라(° °) 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지만, 그런 위협에 기가 죽을 취객들이 아니다. 알딸딸해진 그들의 눈에는 ‘소변금지’가 ‘지금변소’로 읽히는 것이다.

  그런 곳에 비하면 플라스틱이나 나무 궤짝, 혹은 깨진 독 등에다가 채송화나 달리아, 분꽃 따위를 심어놓은 곳도 있어서, 흔해빠진 꽃이긴 하지만 한결 기분이 좋은 골목도 있다. 화분 위에 널브러진 꽁초나 휴지 조각 따위만 없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일 것인가?

  엿장수 아저씨가 지나가는 골목에는 동네 조무래기들이 갑자기 사라진다. 그들은 집으로 뛰어 들어가서 아빠가 마시고 버린 술병이나 다 떨어져서 신을 수 없는 엄마 고무신짝, 못 쓰게 된 놋그릇 따위를 들고 나와 엿과 바꿔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도 저도 없을 때에는 엄마 몰라 멀쩡한 양은대야를 가지고 나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엿치기도 재미있다. 구멍이 커야 이기니까 될 수 있는 한 가벼운 엿을 골라잡아야 한다. 그래서 온통 엿판의 엿들은 몽땅 들었다 놓았다 요란스럽다. 엿장수 아저씨가 찰카닥! 가위 소리를 내면서 “이놈, 내 엿 손때 다 묻는다!” 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면 찔끔! 하였다가는 언제 놀랐느냐는 듯 다시 가락엿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뻥튀기 아저씨가 전을 펴고 있는 골목은 냄새부터가 고소했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가다가 갑자기 뻥! 하는 소리에 간이 떨어지는 때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주전부리감이 별로 없던 시절 쌀이나 옥수수 등의 뻥튀기는 인기 품목 중에서도 상위권을 달렸다. 적은 양의 곡식을 놀랠 만큼 큼직하게 만들어서 먹을 수 있다는 데에서, 최근에는 아프리카 등에서 대민지원 및 자원봉사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기도 한다. 지금까지도 그 인기는 식지 않아서 한 봉지에 통상 2,000원 정도에 팔려나가는 실정이다. 어디 그뿐인가? 사랑하는 애인끼리 영화구경을 할 때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집어먹는 팝콘도 일종의 뻥튀기가 아니던가? 팝콘은 바로 ‘뻥(pop)!’하고 튀긴 ‘옥수수(corn)’인 것이다. 5,000원씩 받는 팝콘 한 통의 원가가 613원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그야말로 ‘뻥튀기’임을 실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은 유행가 가락이 구성진 라디오를 틀어놓고 죽마(竹馬)를 태워주는 아저씨도 있었다. 어렸을 때 그와 비슷한 죽마를 같이 타고 놀던 친구가 바로 ‘죽마고우’이겠는데, 기실 죽마는 아니고 플라스틱 말이었다. ‘죽마고우’도 시대가 변하다 보니 ‘플라스틱말고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딱지치기, 구슬치기도 골목길에서 벌어졌다. 무궁화 꽃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도 아이들은 심심하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외치고는 하던 곳도 골목에서였다. 골목길은 술래잡기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요리조리 꼬부라진 길은 어쩌면 술래잡기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싶기까지 하다. “못 찾겠다, 꾀꼬리!”라는 술래의 항복 소리가 나올 때까지 꼭꼭 숨어 있다가도, “얘야, 저녁 먹어라!”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면, 아예 영영 숨어버리는 곳도 골목길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골목길 한 모퉁이에는 구멍가게도 있게 마련이다. 철수는 유독 그 구멍가게 앞을 오락가락하길 좋아한다. 노트나 연필 하나를 살 때에도 보통 여남은 번씩은 그 가게 앞을 왔다 갔다 한다. 그 가게는 영희네 가게다. 그런데 영희가 가게에 나와 있는 일은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왜 꼭 영희가 있을 때만 물건을 사려고 하는지 자신도 잘 모른다. 영희에게 물건을 살 때에는 숨이 컥컥 막히는 것 같은데도 말이다.

  계단으로 되어 있는 골목길을 둘이서 걸어갈 때에는 ‘계단 오르내리기 놀이’도 재미있다. 철수가 말한다. “우리 가위 가위 보로 계단 오르내리기 놀이를 하자.” 철수는 가위를 냈다. 그런데 영식이가 주먹을 내고는 ‘야호!’를 외친다. 철수가 점잖게 말한다. “가위 가위 보를 내야 한다고 말했잖아!” 영식이는 벌로 세 계단을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가위 가위 보”는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골목길에는 가끔 장기나 바둑을 두는 노인들도 있었다. 달이라도 휘영청 밝은 밤에는 조금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골목길이기는 하지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다듬이소리가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다.

  조금 하얀 벽이라면 앞집 다섯 살배기 정수의 삐뚤빼뚤한 낙서가 씌어 있는 골목길은 투박하지만 정겨웠다. 그런 골목길은 이제 별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사라져가는 것들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서글프게 만든다. (14.8.23.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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