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문화 체험기 25) 혀를 날름거리는 에덴동산의 뱀과 같은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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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문화 체험기 25)
혀를 날름거리는 에덴동산의 뱀과 같은 여인들
이 웅 재
이탈리아의 소나무는 좀 특이하게 생겼다. 마치 끝이 뭉텅 잘린 나뭇가지 위에 뭉게구름 몇 덩어리를 얹어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수형이 우산처럼 생겼다 하여 우산소나무 또는 브로콜리소나무라고 하는데 잣나무처럼 열매를 식용으로 하기 때문에 재배도 많이 하고 가격도 비싸서 1그루에 적어도 1억은 된다고 했다. 피사의 사탑 근처에서도, 로마의 콜로세오 근처에서도 볼 수가 있었고, 여기저기 가로수로도 많이 심겨져 있었다. 분위기가 이국적이라서 좋았다. 소나무는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사랑받는 나무였다.
피사의 사탑으로 가는 도로는 약간 좁은 길이었다. 원래 로마의 장정 4사람이 어깨 폭을 맞대고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넓이였었는데, 이것은 마차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넓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요즈음 그대로 차도로 사용되고 있다. 기실 이탈리아의 웬만한 도로들은 새로 뚫은 넓은 길 아닌 기존의 길들은 대체로 이와 같은 넓이의 길들이었다. 피사의 사탑 앞쪽에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어서 성당이나 사탑의 하얀 대리석 건물과 조화가 잘 되었다.
그렇게 좋은 인상을 남길 뻔한 피사의 사탑에 그만 마(魔)가 끼어들었다. 구경을 잘 하고 나오는 중이었다. 어린애를 안은 외국 여인 4~5명이 내 주위를 둘러싸는 듯한 느낌이 들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린애를 내 얼굴 가까이에 들이대면서 ‘쏼라쏼라’ 무엇을 물어보는 듯이 말을 걸고 있었다. 어린애는 어느 나라 사람이나 귀여워하니까 거기에 신경을 쓰고 바라볼 터였다. 게다가 물어보려면 노랑머리 현지인들에게 물을 일이지 왜 까망머리에게 물어보는가? 까망머리는 당연히 그 말을 잘 못 알아들을 것이고 따라서 그것도 신경을 집중시키기 위한 수법이었다는 생각이다.
다행히 나는 그 ‘퍼뜩’ 차린 정신 때문에 내 왼쪽 겨드랑이 아래로 ‘스윽’ 들어오고 있는 손길을 감지했다. 느낌이 선뜩했다. 아, 내 여권과 돈은 거기 자그마한 가방에 몽땅 들어 있었던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는 그 여인들을 노려보았다. 혀를 날름거리는 에덴동산의 뱀과 같은 여인들이 거기 있었다. 하지만, 그네들은 태연했다. 한 술 더 떠서 별일 없었다는 듯 저희끼리 깔깔거리면서 저쪽으로 가 버리고 있었다. 완전히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소매치기는 당하지 않았지만, 기분만은 ‘쓰리’를 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조금 후, 누가 신고를 했는지 아니면 뒤쪽에서 그 현장을 목격했는지, 여자 경찰 두 사람이 쏜살같이 저쪽으로 사라진 소매치기 여인들을 뒤따라갔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미 재빠른 걸음으로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고 없는 상황이었다. 날씨는 조금 우중충했고, 내 기분은 그 날씨를 닮아가고 있었다. 다행히 조금씩 내리기도 했던 비는 곧 그쳐버리고 날은 기분 좋게 맑아졌다.
다시 관광버스를 탔다. 조금 늦게 버스에 오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맥주를 사 들고 왔다. 그것을 본 버스 기사가 가이드에게 무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가이드가 말했다.
“물이나 맥주를 사시려면 우리 기사님 것을 이용해 주세요. 물은 1유로, 맥주는 2유로랍니다.”
우리의 안전을 담당해주는 기사라서 내가 솔선하여 냉장고에 있는 맥주 1캔을 사 마셨더니, ‘레밍 효과(Lemming effect: 덩달이 효과, 쏠림 현상)’가 나타나서 금세 맥주가 불티가 났다. 운전기사의 얼굴이 만족감으로 흐뭇한 미소를 띠어 갔다. 기사는 신이 나서 TV를 틀어 주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이 방영되고 있었다. 내일 관광할 곳이 바로 “로마의 휴일”에 나오던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진실의 입 등이었다. 한국어 자막도 나와서 모두들 열심히 보았다.
저녁 식사는 오래간만에 한식, 제육볶음에 된장찌개도 있어서 모처럼 맛있게들 먹었다. 알고 보니 이튿날 아침 식사가 좀 부실한 편이라서 배려한 것 같았다. 내일은 7시에 호텔을 출발할 것이니까 짐은 그대로 놓아두고 6시까지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하란다. 시간을 꼭 지켜달라는 당부와 함께, 간단한 복장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오후에 있을 바티칸 투어 시에는 소지품 검사도 있으니까 칼과 같은 물건은 절대로 가지고 오지 말란다. 우리가 머무르는 호텔은 니자 피우지(Nizza Fiuggi) 호텔인데 한마디로 ‘별로’였다. 아침 식사가 부실한 편이라고 하였는데, 봉지 빵과 씨리얼에다가 커피, 주스, 오렌지 등속이 전부였다. 이제까지의 호텔은 모두가 괜찮은 편이었는데, 앞으로 사흘 동안은 이 허름한 호텔에서 지내야 한단다. 모든 시설이 낡은 곳이었다. 욕조도 좁고 엘리베이터도 좁고, 게다가 난방도 별로라서 내복을 입고 자란다. 관광 일정상 도시에서 먼 곳을 택할 수는 없어서 부득이 이 호텔을 이용한다고 했다. 한 가지 반가운 일은 호텔 근처에서 만난 토종 한국산의 흰색 민들레였다.
로마는 예로부터 물이 좋기로 이름이 났다. 2천여 년 전에 벌써 수인성 전염병을 방지하고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수로가 건설되었던 도시가 로마다. 다른 곳에서는 샘이나 지하수, 우물물이나 시냇물, 또는 빗물 등을 이용하고 있을 때였다. 이러한 로마의 물 공급 제도는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전통이 이어져 전 세계에서 요양차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100개 이상의 호텔이 있지만, 가격이 비싸단다. 많은 외국인들이 몰려오기에 치안은 다른 곳들보다 안전한 편이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한국이야말로 물 좋기로 으뜸인 곳인데, 우리는 왜 로마와 같은 휴양지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안타까웠다. 팁은 베개 위에 놓으란다. 탁자 위에 놓으면 손님의 것인 줄 알고 안 가져가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16.3.3. 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