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문화 체험기 10) ‘안졸리나 공원’에서의 천우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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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문화 체험기 10)
‘안졸리나 공원’에서의 천우신조
이 웅 재
4/15 (금) 맑음
엊저녁에 비가 내리는 바람에 먼지들을 몽땅 씻어 내려서인지 아침 일찍 일어나니 상큼했다.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우리 생각으로는 이곳이 1층이라야 하는데, 서구에서는 0층이어서 혼란스러웠다. 옛날엔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었단다. 마굿간으로 사용하거나 오물을 버리는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2층이 여기서는 1층이 된다. 주상복합으로 바뀌어서도 아래층은 상가여서 주거 공간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호텔 현관문을 빠져 나가기에 나와 아내도 그들을 따라 나섰다. 호텔 주변이라도 한 바퀴 돌고 올까 생각을 했었는데, 도중에 생각이 바뀌었다. 호텔 앞쪽은 큰 도로, 그 도로 건너편 쪽은 울창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길이 나 있었다.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도 따라갔다.
가다가 보니 ‘안졸리나 공원(Park Angiolina)’ 간판이 보인다. 순간적으로 안젤리나 졸리 (Angelina Jolie)를 연상했으나 그녀와는 무관한 곳으로 스펠링이 달랐다. 잘 꾸며진 공원은 아기자기했다. 아침 신선한 공기가 공원길을 더욱 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좀더 깊숙이 들어가니 왼쪽으로 길이 나 있고 그 길 옆쪽은 벽으로 막아 놓았는데, 벽에는 벽화들이 쭉 그려져 있었다. 벽화는 인물화였다. 공원에 웬 인물화를 저렇게 많이 그려 놓았을까? 그것은 이곳을 찾았던 유명 인사들의 초상화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사도라 던컨의 초상화가 특히 시선을 끌었다.
공원에서 사진을 찍고 더 앞으로 나아가니, 아, 거기 아드리아(Adria) 해가 잔잔하게 펼쳐져 있었다. 해가 돋아 오르고 있어서인지 동쪽 하늘은 불그스레했다. 비췻빛 물결이 그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조물주가 그려놓은 한 폭의 멋진 풍경화였다.
해안가 좌우의 풍경을 핸드폰에 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몇 길이 넘는 공원의 열대수들이 주렁주렁 열매들을 달고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멋진 공원을 우리 가이드는 왜 소개해 주질 않았을까? 알아서 구경하겠지 하는 생각이었을까? 하기야 우리 가이드는 호텔에서 숙박을 할 때에도 자신의 방 번호를 알려 주지 않았었다. 여행 계획서에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으니 별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방 번호쯤은 알려주는 것이 상례인데 말이다. 지난번 우리 내외가 다른 여행사의 버스를 탈 뻔했던 것도, ‘오늘 이곳에서 주무시는 사람들은 우리 팀 말고도 몇 개의 팀이 더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쯤의 멘트가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해프닝이 아니었을까? 아니, 아니다. 잘못은 우리에게 있었던 것이지 가이드의 책임이랄 수는 없는 일, 공연히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내 생각이 틀려먹었다.
해변까지 갔다가 오는 도중, 길바닥에 명함크기만한 물건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공원은 물론 공원 주위의 길까지도 깨끗하기 그지없는데 웬 명함 따위를 떨어뜨려 놓았을까 생각하면서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주워보니, 어렵쇼? 그건 호텔의 방 키였다. 성급하게 주머니를 뒤져 보았다. 없었다. 호텔에서 나올 때 분명 우리 방 키를 내 주머니에 고이 넣어 놓았었는데, 없었다. 방 홋수를 보니 그것은 분명 내 방의 키였다. 아마도 사진을 찍으려고 핸드폰을 꺼낼 때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은 까닭에 다시 내 손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천우신조(天佑神助)?’였다. 그렇게 키가 내 손에 들어왔으니 말이지, 그렇지 못했더라면 틀림없이 ‘속 썩이는 사람이 틀림이 없구먼.’ 하는 비아냥을 또 들을 뻔했으니, 천우신조가 아니고 무엇이랴? 또 한번 내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릴 뻔했다. 앞으로는 정말로 조심해야겠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 후 자다르(Zadar)로 이동을 한다. 4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지레 지루하리라 생각들을 한 사람들은 일찌감치 쿨쿨 잠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런데 자다르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일부러 해안도로로 접어든 때문에 오른쪽으로는 굽이굽이 멋진 풍경들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풍경들도 보지 않는다면 무엇을 보려는 것일까? 주로 오른쪽으로 바다가 보이는 경치들이 이어졌고, 다행히 나는 버스의 오른쪽 좌석에 타고 있어서 그 아름다운 아드리아(Adria) 해의 연안을 아낌없이 즐길 수가 있었다. 크로아티아의 바다에는 섬들이 많다고 했다. 섬 하나를 지날 적마다 그 섬의 원주민들의 텃세가 말이 아니었다. 심해지면 그들은 말 그대로 해적이 되곤 했다. 그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의 굽이굽이 숨어 있는 해만(海灣)마다 엔간한 통행료 없이는 지나다니기가 힘들었다. 그런 것이 크로아티아의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자유로운 나라. 왼쪽으로 보이는 언덕 위의 집들마저도 오순도순 화기롭다. 이곳에는 석회암이나 사암(砂巖)이 많다. 사암은 물러서 마음대로 잘라내기가 쉽다. 유럽 쪽에 유명한 조각 작품들이 많은 이유다. 그 돌들은 나중에 단단해진다. 그래서 돌로 지은 건물들은 천년을 간다. 우리나라의 목조 건물의 내구성은 그 절반 정도밖에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돌은 처음부터 단단하기 짝이 없는 화강암들이다. 그러한 돌을 가지고 건물을 짓고 조각을 하기란 지난한 일, 불국사 앞의 탑들이 대단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사암은 철분 성분이 많아서 쉽게 산화한다. 건물들을 대대적으로 청소 작업을 벌여야 하는 연유다. 산화된 부분을 한편으로는 깎아내면서 그 깎아낸 것만큼 모래를 또 붙여야 한다. 한마디로 모래 청소를 하여야 한다. 그 기술은 일본이 최고란다. 그래서 일본은 청소 가지고 떼돈을 번다. 그렇게 계속 청소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서구의 1000년 가는 건물들도 ‘별로’로 보이기 시작한다. 모든 건 제 입맛에 맞아야 하는 것이다.
(16.9.15. 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