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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사화집(2017년 제27호) 평설

거북이3 2017. 10. 29. 21:36

     

*서평 요지: 살다 보면 ‘믿거라 했다가 낭패당하는 일’이 가끔 있다. 지난 월요일에 강 회장에게서 서평 부탁을 받고 부랴부랴 원고를 써서 보내주었는데, 이자야 편집국장은 내가 발표용 1부는 출력해 오겠지 생각했고, 나는 “수필문학사”에서 1부는 출력해 주겠지 믿고 있다가 양쪽에서 다 출력을 하지 않아, 원고가 없는 상태라서 기억에 의존해서 서평을 하는 수밖에는 없어서 죄송하다는 서론을 깔고, 실제 기억에 의해 대상 작품의 해당 부분들을 찾어 체크를 해서 약간의 평과 더불어 작품들의 일부분들을 소개하는 식으로 진행하였는데, 생각보다는 기억이 정확해서 별 문제가 없었다. 다른 발표와 중복되는 사람에 대한 부분은 생략하여 발표했다. (몸 상태가 심한 감기 상태라서 가끔 콜록콜록 기침을 하는 소리가 듣기 싫었을 터이다.)

 다음은 원래 작성했던 평설의 원문이다. 


10.23.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사화집(2017년 제27호) 평설.hwp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사화집(2017년 제27호) 평설

                                                                                                             이 웅 재

  이번 사화집의 맨 앞 부분은 공동제 수필로 ‘나의 문단 데뷔 시절’이었다. 필자는 대부분 우리가 익히 들어서 귀에 익은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은 어떠한 연유로, 어떠한 과정을 거쳐 문단에 데뷔를 했을까, 궁금했다.

첫 번째 글은 등단 순위가 27번이라고 하는 박종숙 님의 글이었다.

  돌아보면 진도에서의 첫 세미나는 황홀하였다.…그곳 출신인 외과 의사였던 조영남 씨는 모시 잠방이를 걸치고 북을 치면서 흥을 돋우었고 횃불이 타고 있는 피켓 중심으로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진도 아리랑을 부르던 일들도 생생하다.…그 일을 선두로 안면도, 강화도로 해서 3,4대의 버스가 부푼 꿈을 안고 전국 곳곳을 두루 찾아다녔는데 30여 년이 흐른 지금 국내 웬만한 명소는 모두 수필문학과 함께 했던 답사지로 남아있다.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답사지를 탄생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면, 모든 회원들의 어깨가 저절로 들썩거려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다음, 이병수 님의 회상이 이어졌다.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고 글의 질적인 내용에는 크게 신경을 쓸 여가도 없이 그저 지속적으로 꾸준히 써나가다 보니 4년마다 한 권 분량의 원고가 쌓여 쉽게 수필집이 한 권씩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재미가 더하여 3년마다 한 권 분량의 원고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어느덧 10권째 수필집 발간을 볼 수 있었다.

  다작의 작가답다. ‘닭이 천 마리면 그 중에서 한두 마리는 봉황이 나오는 법’이라고 했다. 쓰고 쓰고 또 써 보자.

  ‘3천 편의 수필을 쓰고 보니’라는 허근 님의 글에서도 같은 끈기를 느낀다.

  가을 문턱에서는 모 신문사에 투고한 논픽션 응모작이 최우수작으로 당선되어 상패와 상금으로 거금(!) 1천만 원을 받아 평생 처음 잔치도 벌여봤고…

2008년 첫 수필집을 낸 뒤, 그 다음해 1월 1일부터는 하루에 한 편씩 3000편을 쓰기로 작정했다.…어느덧 금년 8월 6일에 ‘3000’이란 숫자 끝에 도달했다.

  이처럼 끈기 있게 쓰되, 이자야 님처럼 ‘죽자 사자’ 생각하고 써 보자.

  나는 내 글에 자부심을 가지고 죽자 사자 글을 쓰고 있다.…죽기 전에, 이승의 삶을 마감하기 전에 문학사에 남을 글 한편 쓰고 죽는 게 내 꿈이었다. 나는 그 꿈을 위해 오늘도 헤맨다.…나는 오늘도 문학 동네의 골목길을 떠도는 길 위의 나그네다.

  더욱 바람직한 글을 쓰려면, 최홍식 님의 각오도 배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아름다운 서정의 향기, 서사의 재미, 지성과 예지가 함축된 수필 창작에 계속 임할 것이다. 일상성에서 벗어난 나만의 독특한 체험을 소재로 하되, 이를 감동적이면서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도록 그리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형상화시키고자 한다. 특히 사랑과 어머니의 생명에 관한 주제로 수필을 쓸 것이다.

  이어서 몇몇 마음의 한 자락을 울리는 글 몇 편을 더 보도록 하겠다.

  먼저 김길자 님의 ‘가는귀’는 시간이라는 놈에게 떠밀려 가는 사람들의 탄식을 대변하지 않았나 싶어서 소개한다.

  ‘들리는 소리보다 들리지 않는 소리’에 익숙해져야 하겠다.…

  마음이사 ‘아직은’ 하지만, 그와 다르게 퇴화해 버린 나의 남루를 아프게 읽으며 세월 따라 순리대로 살아야 하리. 하지만, 가을이 온다는 사실보다 단풍이 먼저 들게 되듯이,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늙어짐을 발견하게 되니, 아하, 어이하랴!

  다음 김민섭 님의 ‘사장을 위해 일해요’는 늙어가는 중에도 육체적 노동의 신성함을 잘 드러내 준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핏물이 줄줄 흐르는 한우 생가죽을 가공하여 의류, 가방, 신발 제품을 만드는 피혁공장 경비로 입사한 것이다.…수시로 450명 상당의 공장 안팎과 사무실 화장실 청소, 공업용 빈 약포와 각종 쓰레기 정리, 너댓 차례 흩어진 쉐빙밥(가죽 가루) 모으기, 공장 출입차량 기록과 철 대문(5평쯤 넓이) 여닫기, 공원 25명의 아침 저녁밥 해주기, 폐목과 생활 쓰레기 소각, 개와 고양이 관리, 직원 퇴근 후 야간에 기계 작동과 야간 순찰, 커피 자판기 관리 등이다.…

  어느덧 노령의 노동일 10여 년에 내 몸뚱이는 퇴행성관절염으로 쇠락해졌다. 하지만 그간의 소득으로 내가 살고 있는 관내 D중학교 2학년 남녀학생 중 4명을 선발하여 매년 반영구적인 장학 기금을 마련해 준 것은 큰 보람으로 여긴다.

  서경희 님의 ‘늦여름’은 조금은 지나간 일이기는 하지만, 어느 해보다도 더욱 보내기 힘들었던 지난여름의 냄새를 가리늦게나마 되새겨볼 수 있는 글이었다.

  어떤 사람은 가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닌 어정쩡한 이 늦여름을 건들건들 지나가는 계절이라고 낮춰보기도 한다. 돌틈에 막 돋아나는 초봄의 새싹 냄새와는 또 다른 진득한 이 늦여름의 냄새를 못 맡기 때문이리라. 이 늦여름의 느낌을 나는 영원 속에 맡겨놓고 즐기려 한다.

  음춘야 님의 ‘당신의 사랑 Els’는 누구에게나 있었음직한 젊었을 적의 사랑 얘기를 투박한 듯 은근슬쩍 드러내놓는 팔불출의 용기가 부럽지 아니한가 싶어 골라 보았다.

  풋밤송이 같은 머리에 촌티가 주렁주렁 매달린 남자. 시골에서 처음 상경한 남학생들이 대부분 그랬지만 그 중에서도 유난히 덜 자란, 텁수룩한 머리가 눈에 띄었다. 그 남학생이 우리 과 톱으로 들어왔다고 수군거렸다. 조금 있으니 이번엔 국비장학생이라고 야단법석이었다. 눈이 좀 반짝였다는 것 외엔 남다른 데 없는 그가 실험실의 내 짝이었던 것이다.

  황빈 님의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를 읽으면,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우리들 모두는 아름다운 존재가 아닌가 싶어서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폭염으로 온 대지가 들끓던 지난 한여름 충무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있는 것은 아름답다>라는 제하의 사진전이 있었다.…그는 2년 동안 LA의 호스피스 병원에서 시한부 환자 20명의 초상을 촬영했다.…

20명의 공통점은 ‘마음을 활짝 열고 모든 걸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고통스러울 때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24시간 고통과 싸우면서도 주위 사람과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나누려 했어요.” 환자들은 농담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나눴고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술회하였다. 삶 자체를 즐기는 성숙한 내면이 느껴졌으며, 결국 이 전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김학순 님의 ‘의심을 믿음으로’도 우리 모두의 이야기 같아서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우체국 직원이 등기로 부치라고 권했다.…내 뜻 따라 보통으로 부쳤다.…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못 받았다는 통보가 왔다. 등기로 부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곳 아파트 관리인과 아파트 거주자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시골집에서 돌아왔다. 우리 우체 함에 내가 보냈던 책이 비아냥대듯 되돌아와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살펴보니 주소 잘못으로 우편물이 회송되어 꽂혀 있었다. 십여 일 의심으로 살아온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저승에서 온 친구의 답신’도 모르는 척하기는 무엇해서 함께 보기로 한다. 전병삼 님의 ‘천천히 오시게나’이다. 불현듯 가까이 지내던 녀석들이 생각나 전자 우편으로 안부 편지를 띄웠더니 저승에 있는 한 녀석으로부터 답장을 받았다는데, 한 번쯤 읽어두는 일도 괜찮겠다 싶은 내용이었다.

검지도 희지도,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여기는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노여움도 모르고,

화냄도 두려움도, 좋음도 미움도 모른다네.…

기껍고 유쾌한 일 있거들랑 미련 없이 즐기시게.

절대로 조급히 재촉하지도 서두르지도 말고,

느릿느릿, 황혼녘 황소걸음으로 천천히 오시게나.

  구영례 님의 ‘모기의 변명’도 들어볼 만한 얘기라 생각되었다.

  “내가 당신의 피를 몇 방울 뽑는 것은 내 알들에게 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이오. 인간들 중에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고난을 함께 하며 다짐했던 신의를 헌 신발 버리듯 배신하고 화평보다는 대적하길 밥 먹듯이 하면서, 자신의 합리화를 위해 무고한 사람을 등 뒤에서 끝없이 헐뜯지 않나요?…내가 당신들의 피 몇 방울 빼앗는 죄는 얄미운 애교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김선자 님의 ‘감나무, 그리고 감’을 읽으면서, 오늘의 이 모임도 소월의 ‘먼 훗날’처럼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먼저 감꽃은 모심기 할 즈음이면 떨어진다. 그 꽃을 주워 먹기 위해 새벽잠에서 깨어야 한다. 감나무 밑에는 벌써 여러 아이들이 다람쥐처럼 풀숲을 헤집고 다닌다. 뽀얀 감꽃을 강아지풀에 꿰어서 꽃목걸이로 만들어 목에다 걸고 하나씩 떼어 먹으며 으스대다 이쁜 짓하는 동무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감 알이 굵어져 풋감이 될 즈음 또 다시 감나무 밑에는 새벽잠을 설친 아이들의 조잘거림이 싱그럽다. 주워온 풋감을 항아리의 물속에 하루 정도 담가 두면 떫은맛이 빠지고 달큰해진 침감이 침샘을 자극한다.                      (2017.10.23. 27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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