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유혹 2
지리산의 유혹 2
이 웅 재
지리산과의 두 번째 인연은 70년대 후반쯤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정확한 시일은 기억에 없지만, 어느 겨울 방학 때였다. 그 당시 나는 서울 시내의 모 고등 학교의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매번 방학 때가 되면 마음에 맞는 선생님들 몇몇이 이곳저곳으로 등산이나 여행을 떠나곤 하였었다. 지리산과의 두 번째 인연도 바로 그러한 등산 스케줄의 하나와 맥이 닿아 있다.
우리는 가급적 기차 여행을 즐겼다. 그것도 야간 열차, 그 중에서도 가장 등급이 낮은 야간 완행열차를 선호했다.
시끌벅쩍한 밤 열차, 그곳에는 가지가지의 서민들의 냄새가 가득 배어있는 곳이었다. 후줄근한 행색으로 담배를 뻑뻑 빨아대는 할아버지, 누구에게라도 져서는 안 되겠다는 단단한 각오로 일체의 안면을 무시하는 할머니…. 사실 우리 세대는 그러한 분들 때문에 존재할 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여기저기서 술 파티에, 고․스톱에 열차 칸은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통로도 따로 없었다. 그곳은 체면 무시한 채, 신문지를 깔고 더러는 앉고, 심지어는 드러누워 있는 아주머니들도 심심찮게 볼 수가 있었다. 어쩌다 학생들도 눈에 띄었지만, 그들은 무슨 죄인이라도 되듯 불안스런 눈초리로 얌전하게 자리에 앉아 있거나,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그들은 바로 그들의 앞에, 뒤에, 그리고 옆에 진을 치고 있는 그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의 자식들이었던 것이다. 자신은 배우지 못한 한(恨)을, 자식들에게만은 물려주지 말아야겠다는 한을 풀기 위해서 그토록 악착같은 삶을 영위해 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그들은 자신들을 죄인처럼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이와 같은 삶의 적나라한 모습들을 어디서 또 만나볼 수 있다는 말인가? 밤 열차, 그것도 한밤의 완행열차는 그대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요,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모습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일행이 야간 완행열차를 선호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데 있었다. 우리는 그러한 풍경을 절대로 해치지 않기 위하여, 아니 그러한 풍경에 일조(一助)를 하기 위하여 야간 완행열차를 타곤 했었다. 그러한 와중(渦中)에서 주위의 소음에는 아랑곳없이 딱딱한 의자에 몸을 기대고 차창 밖의 경치를 감상한다거나, 아니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먼 과거 속으로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나름대로의 야간 완행열차를 이용하는 멋드러진 방법, 하나의 낭만일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하는 이튿날 아침에는 모두가 녹초가 되곤 했다. 밤이 이슥해지면서 더러는 코를 골고, 더러는 잠꼬대를 하면서 꿈나라를 헤매곤 하는 것이다.
목적지였던 구례읍(求禮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녘. 희뿌연 새벽녘의, 아직 잠에서 덜 깬 시골의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면서, 우리는 야간 완행열차에서의 피로를 짊어진 채, 음식점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이른 새벽이라 아직도 모든 가게들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음식점마저도 몇몇 곳만이 그 희미한 불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중의 어느 한 곳에 들러 밤새 마신 쐬주 기운을 해장국 한 그릇으로 풀어내고 나서, 날이 샐 때까지 그대로 음식점의 밥상머리에서 잠깐 동안의 수면을 즐기기도 했다. 물론 나 같은 경우는, 환경이 바뀌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소심성 때문에 애꿎은 담배 연기만 풀풀 날리면서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지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드디어 아침이 찾아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언제부터인지 사흘 굶은 시에미 낯짝 같던 하늘에서는 펑펑 함박눈이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어쩔 것인가? 음식점에서 그대로 마냥 시간만 축낼 수도 없어서, 우리는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걸머지고 화엄사가 있는 골짜기로 파고 들었다.
화엄사 근처에 도착하니, 눈은 제법 발목을 푹푹 덮을 지경이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칠 기미마저 보이지 않았다. 사방은 온통 설경(雪景)―정말로 그것은 장관이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러한 설경 속의 등반이란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절호의 찬스가 아닐까 하는 유혹에 빠지고 있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보기 드문 설경을 만끽(滿喫)하면서 묵묵히 걷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우리 일행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 산 근처에는 항상 산에 대해서는 거의 전문적인 지식이나 체험을 가진 사람들이 있게 마련인데, 아마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인 듯싶었다.
“오늘은 지리산 등반을 할 수 없습니다.”
그 소리는 우리들을 혹독한 겨울의 추위보다도 더욱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큰맘 먹고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들은 얼핏 그 말에 승복하려 하지 않았다. 지리산은 지금 자신의 온 몸을 흰 눈으로 덮고서 우리 앞에 얌전히 누워 우리를 유혹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어떤 아름다운 여성의 나신(裸身)보다도 더욱 우리들을 은밀히 이끌어들이는 흡인력(吸引力)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의 유혹이 이렇게까지 은근하면서도 더할 수 없이 강렬하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우리는 그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우리는 그저 이렇게 멋진 산이, 다른 어떠한 모습도 아니고 더할 수 없는 설경을 가지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면서 우리들을 유혹하고 있는데, 그냥 모르는 척 외면해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크게 괘념(掛念)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지리산이 얼마나 변덕스럽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리산 일기(日氣)의 변덕에 비하면, 우리 집사람 변덕은 약과지요. 하지만, 여자들의 변덕이란 그것 자체가 더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만,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장황하게, 그리고 완곡하게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래도 계속 ‘입산금지’를 말하는 그분을 대하면서, 우리는 그가 단순히 지리산 근처에 사는, 산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이나 애착만을 가진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점을 느끼게 되었다. 그분은 틀림없이 산을 관리하는 분 중의 한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물러설 수도 없었다.
“좋습니다. 노고단(老姑壇)까지는 가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설경 속의 등반을 포기할 순 없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중간쯤만 가면서 지리산의 신비로움을 맛보고서는, 아쉬운 대로 그냥 돌아서 내려오겠습니다. 단번에 노고(老姑)의 모든 것을 내것으로 하려 하다가는 큰코 다친다는 것쯤은 저희도 분명히 알고 있으니까요.”
등반 불가를 역설(力說)하던 사람은, 우리들을 하나하나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대학 입학시험의 면접시간 때보다도 더욱 몸이 축소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우리들을 심사(?)하던 그는 말했다.
“저도 좋습니다. 댁들 말씀을 들으니 무턱대고 산에 오르려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으니, 조심해서 지리산의 유혹에 대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펑펑 쏟아지는 눈발, 주위는 온통 흰빛이었고, 나뭇가지들마다 더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설화(雪花)들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그때 봄, 여름의 꽃보다도 겨울의 설화가 몇십 배, 몇백 배나 아름답다는 것을 실감했다. 걸어도 걸어도 지리산이 보여주는 새로운 아름다움에 우리들은 지칠 줄 몰랐다. 그러나 우리는 점차 우리 몸을 붙잡고 늘어지는 지리산의 유혹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처음 오를 때, 발목 정도를 덮던 눈은 차츰 정강이를 거쳐 무릎 위까지 푹푹 잡아당기고 있었다. 내 연약한 몸으로는 더 이상 지탱하기가 힘들겠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노고단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다시 되짚어 내려올 터, 그렇다면 양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을 굳이 메고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선언했다.
“내 배낭은 여기 눈 속에 묻어두고 가겠어.”
친구들은 모두 의외의 말에 일견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좌우간 나는 약간은 봉긋하면서도 펑퍼짐한 평지에서 조금은 아래쪽으로 비껴 내려가 나무들이 우거지고 커다란 검은 색 바위가 하나 있는 곳에다가 배낭을 눈 속에 묻고, 주위의 지형지물을 눈 여겨 살피고 나서, 가뿐한 차림으로 지리산의 그 은밀한 품 속으로 계속 더듬어 올라갔던 것인데…, 아무리 해도 더 이상 오르다가는 완전히 지리산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어느 평평한 지형에서 숨을 조금 돌린 다음, 우리는 하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데, 도대체 내 배낭을 숨겨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세계란, 그곳이 그곳일 뿐이었다. 정말로 우리는 그때 지리산의 하얀 자태에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었다. 천신만고 끝에 배낭을 찾아 하산하기는 했지만, 지금도 친구들은 나를 놀려댄다.
“지리산의 그 희디흰 성감대인 불두덩을 그렇게도 갉작갉작했으니, 앞으로도 지리산은 당신을 계속 유혹할 거야. 나중 지리산의 그 흥건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계곡으로 빨려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게.”
나는 그래서인지 지금도 지리산만 생각하면, 항상 온 몸이 짜릿짜릿한 흥분을 느낀다. 나의 영원한 애인인 지리산이여, 기다려라. 언젠가는 내 당신을 온전히 정복하리라.
( 수필문학. 9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