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문화 체험기 15) 라이 따이한들이여, 미안하다!
(베트남 문화 체험기 15)
라이 따이한들이여, 미안하다!
이 웅 재
이곳에도 한류 열풍이 대단한가 보았다. 4년쯤 전 ‘의가형제’로 알려지기 시작한 장동건이 제일 먼저 인기가 치솟더니, 배용준, 안재욱 등이 그 뒤를 이어가고 있으며, 여자 배우로서는 단연 김남주가 으뜸이란다. 그래서 LG 드봉 화장품 판매 시에는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서서 기다리기까지도 하고, 그녀가 성형미인이라고 소문이 나면서부터는 성형수술마저도 인기가 치솟아 특히 코 수술이 대유행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외모에 그만큼 신경을 쓰게 되었다는 것도 베트남 경제가 놀랄 만큼 비상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Dong Nai 강이 흐르고 있는 동나이 지역에는 한국기업 364개가 들어와 외화벌이를 하고 있는 것도 한류의 덕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한국 관광객을 안내하다 보면 조금은 황당스런 일들을 당하는 수도 있다고 했다.
베트콩에게 사살당하게 된 순간, 소대장이 그 베트콩과 맞사격을 해서 살게 된 참전용사가 생명의 은인인 소대장이 죽은 장소에 심어놓은 소나무를 찾아가, 가지고 온 소주 한 잔을 따라놓고 엉엉 운다든가, 갑자기 “차 세워!” 하는 바람에 웬일인가 놀라 쳐다보면, “여기가 내가 보초 서던 곳”이라며, 차도 한가운데 내려서서 땅바닥에 입을 맞추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전적지 투어가 가능한 가이드는 호치민 시에 4명 정도가 있단다.
그래, 많은 한국인들에게 잊히지 못하는 땅이 이곳 월남이다. 31만 명이 8년 8개월 동안 참전했던 곳이 아니던가? 패전한 일본이 한국전 때문에 경제 강대국으로 부활한 모습을 본 박정희 대통령이 월남전 파병을 한 것은, 우리도 일본처럼 일어서 보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었다고 한다. 비둘기 부대, 청룡, 맹호, 백마, 십자성 부대에 이어 은마 부대까지 그 얼마나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 땅에 와서 목숨을 내걸고 외화를 벌어들였던가? 50~55$의 사병 봉급, 그 2배인 100~110$의 장교 월급, 그 1/10은 무조건 국가로 환수되어 경부고속도로, 과학기술원, 포항제철 등을 건설하여 조국 근대화에 쓰이지 않았던가? 우리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주성분이 아이옥신인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마음으로도 더위를 이기기 힘든데, 군장까지 하고 있으니 죽을 맛, 그런데 피부가 시원하게 느껴지는 고엽제를 살충제라고 속이고 뿌려댔으니, 모기로부터의 탈출은 덤이라고 웃통 벗고 맞았다던 고엽제가 아니던가! 백마 부대원이었다는 우리 이음새 문학회의 토토, 고생 많았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한편, 라이 따이한 문제 또한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겠다. 월남이 공산화된 데에도 그 일단의 이유가 있겠지만, 미군의 경우보다 10배나 되는 2세들을 씨 뿌려 놓고 ‘나 몰라라’ 하고 가버린 사람들. 그들의 2세인 라이 따이한은 한국인을 닮아 이곳에선 쉽게 구별이 되어 더욱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적군의 자식이라 하여 따돌림당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여 가장 못 사는 사람들, 호치민 시에만 1만여 명이 된다는데, 그들을 보살펴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88올림픽 때 라이 따이한 100여 명을 초청할 계획을 세워서 그 아버지를 수소문하여 전화를 걸었더니, 70%가 반대하여 성사가 되지 못했던 적도 있다던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너무했지 싶다. 그래서일까? 라이 따이한들도 아버지는 만나보고 싶지 않단다. 하지만, 아버지의 나라에는 가보고 싶어 한다는데, 3D 업종의 노동자가 부족한 우리나라, 라이 따이한들을 고용하게끔 정책적인 배려를 해 줄 수는 없을까?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인들은 중간 도망자가 많지 않은가? 라이 따이한들은 한국이 정신적 고향이 되는 까닭으로 그럴 염려가 적으니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매우 바람직한 일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볼 때, 서울대에서 베트남에 분교를 설치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일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로 여겨진다.
한국인과는 절대 결혼시키지 않겠다는 부모들의 응어리진 마음, 그 반대편으로는 한국으로 가고 싶어하는 라이 따이한과 베트남 처녀들, 이 모순된 현실은 누가 풀어줄 수 있는가? 30년 만에 다리를 절면서 나타난 아버지가, “아들아, 미안하다, 이제라도 우리 합쳐서 살자!” 울먹이는 목소리에, 털썩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으며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를 되뇌며 엉엉 울었다는 얘기는, 우리들 마음속을 훈훈하게 녹여주고 있지를 않은가?
어느덧 날은 저물었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차에서 내려 기념사진들을 찍으며 보니, 오토바이를 타고 데이트를 나온 연인들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서로 껴안고 뽀뽀를 하는 애정표현이 보는 사람의 눈길을 뜨겁게 한다. 그렇다. 베트남은 점차 자유를 향해 날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Sigon 선상 디너 크루즈를 위해 배로 향한 우리를, 배에서 안내 차 나온 직원이 야광봉을 들고 지나가는 차들을 세우며, 무단횡단을 도와준다. 무대에서는 가수가 나와 한국 노래를 부르고, 손님들에게서도 신청곡을 받아 몇몇 교수가 10$짜리를 팁으로 주면서 노래를 불렀다. 브라자와 팬티만 입은 매혹적인 베트남 무희가 불 쇼를 겸한 춤을 추어 인기를 독차지하기도 하는데, 배는 서서히 움직여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밤의 분위기를 한껏 낭만적으로 고양시켜 주고 있었다.
이영애가 나오는 LG 자이의 입광고판이 강 건너 저쪽 편에서 우리를 향하여 반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년부터 지하철 2개 노선 공사를 시작한다는 베트남.
“베트남이여, 안녕!”
닉슨이 미군 철수를 할 때 마지막으로 했다는 그 말을 나도 한번 중얼거리며 베트남의 마지막 밤을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大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