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전 수필

(고전수필 순례 39) 이상한 관상쟁이의 대답[異相者對]

거북이3 2009. 12. 27. 11:19

 (고전수필 순례 39)

          이상한 관상쟁이의 대답[異相者對] 

                                                                이규보 지음

                                                                                이웅재 해설

 

 어떤 관상(觀相)쟁이가 있었다. 그는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며, 상서(相書)도 읽지 않았고, 재래의 관상법도 따르지 않으면서 이상한 상법으로 관상을 보므로, 사람들이, “이상한 관상쟁이[異相者]”라 불렀다. 그런데도 고관(高官)ㆍ신사ㆍ남녀ㆍ노유들이 다투어 찾아가고 제각기 모셔가 모조리 관상을 보는 것이었다. 그는 부티 나고 뚱뚱한 사람의 상을 보고는, “당신은 얼굴이 매우 여위었으니, 당신 가족처럼 천한 이가 없겠소.” 하였고, 빈천하고 여윈 사람의 상을 보고는, “당신은 모습이 살쪘으니, 당신 가족처럼 귀한 이가 드물겠소.” 하였다. 또 장님을 보고는, “눈이 밝군.” 하였고, 걸음이 빠르고 잘 뛰는 사람을 보고는, “절뚝거려서 걸음을 못 걷겠군.” 하였으며, 얼굴이 예쁜 부인을 보고는, “어떻게 보면 아름답지만, 또 어떻게 보면 추하기도 하오.” 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너그럽고 어질다고 하는 사람을 보고는, “만(萬) 사람을 상(傷)할 분이로고.” 하였으며, 몹시 패독한 사람을 보고는, “만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할 분이로고.” 하였다. 그의 관상 보는 것이 대개 이와 비슷하여, 다만 그 감추어진 이면(裏面)을 말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당장 얼굴과 행동을 살핌이 모조리 반대였다.

 뭇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전하기를, 사기꾼이라 하면서 잡아다가 그 거짓을 다스리려 하므로, 내가 홀로 말하기를, “대개 말이란 먼저 거슬리고 뒤에 순(順)한 것이 있고, 겉으로는 친근한 듯하면서도 내면으로는 먼 것이 있다. 그도 눈이 있는데 어찌 살찐 자, 여윈 자, 눈먼 자를 몰라서 살찐 자를 가리켜 여위었다 하고, 여윈 자를 가리켜 살쪘다 하며, 눈먼 자를 가리켜 눈이 밝다 하겠는가? 이는 필시 특이한 관상쟁이일 것이다.” 하고는, 목욕ㆍ세수ㆍ양치질을 하고, 옷깃마저 단정히 한 후, 관상쟁이가 묵고 있는 곳을 찾아가서 사람들을 물리치고 말하였다.

 “그대가 누구누구를 상 보고 무엇 무엇이라 말하였음은 어찌된 까닭인가?”하니 그가 대답하는 말이, “대개 부귀하면 교만하고 건방지며, 남을 능멸하고 업신여기는 마음이 자라나니, 죄가 가득차서 하늘이 반드시 뒤집을 것이오. 그래서 앞으로는 겨죽도 못 먹게 될 때가 있겠기로 ‘여위겠다.’ 하였고, 장차는 몰락하여 보잘것없는 필부(匹夫)의 몸이 되겠기로 ‘당신의 가족이 천하겠다.’하였소. 그리고 빈천하면 뜻을 겸손히 하고 자신을 낮추어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닦고 살필 뜻이 있으니, ‘비(否)’ (掛가) 극하면 ‘태(泰)’ (괘)가 반드시 오는 법이라, 육식(肉食)의 징조가 이미 보이는 고로 ‘살찌겠다.’ 하였으며, 장차는 만석(萬石)ㆍ십륜(十輪)의 귀(貴)함이 있겠기로 ‘당신의 가족이 귀하겠다.’ 하였소. 요망한 자태와 아름다운 색(色)을 엿보아 만지고, 진기(珍奇)한 것과 좋은 장난거리를 탐내며, 사람을 변화시켜 혹(惑)하게 만들고 바른 사람을 구부려 굽게[曲] 하는 것이 눈인데, 이로 말미암아 예측할 수 없는 욕을 당하게 될 터이니, 이것이 ‘밝지 않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직 눈먼 자는 담박(淡泊)하여 욕심이 없고 감촉이 없어 온 몸이 욕(辱)을 멀리하여 어진 이와 깨달은 이보다 나으므로 ‘밝은 이’라 하였소. 대개 민첩하면 날램을 숭상하고, 날래면 뭇 사람을 능멸하는데,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혹은 자객(刺客)이 되고 혹은 간당(姦黨)의 수령이 되어, 끝내 정위(廷尉: 법관)에게 잡히고 옥졸(獄卒)이 지켜 발에는 차꼬, 목에는 칼을 쓰게 될 것이니, 도망하련들 어찌 달아날 수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절뚝거려 못 걷겠다.’한 것이요, 대개 색(色)이란 것은 음란하고 사치하며 이상한 것을 좋아하는 자가 보면, 구슬이나 옥처럼 예쁜 것이로되, 행실이 방정하고 질박한 자가 보면 흙이나 진흙처럼 추한 것이므로, ‘혹은 아름답고, 혹은 추하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른바 어질다고 하는 사람은 죽을 때에 꾸물꾸물하여 어리석게도 미련이 남아 울며불며 슬퍼함이 마치 어린애가 어머니의 자애(慈愛)를 잃은 것 같기로, ‘만(萬) 사람을 상(傷)하는 이라’ 하였고, 이른바 혹독한 자는 그가 죽으면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면서 고기 잡고 술을 마시며 서로 치하하느라 웃는 입을 다물 줄 모르는 자와 손목이 시도록 춤추는 자가 있겠기에, ‘만 사람을 기쁘게 할 이’라 한 것이오.” 하였다.

 나는 구연(瞿然)히 일어나, “과연 내 말과 같다. 이는 실로 특이한 관상쟁이다. 그대의 말은 명(銘)을 삼을 만하고, 표어(標語)를 삼을 만하다. 어찌 이를 안색과 외모에 따라 귀(貴)함을 말할 때 ‘거북 무늬에, 물소 뿔’이라 하고, 흉(凶)함을 말할 때 ‘벌[蜂]의 눈에, 늑대 목소리’라고 하여 굽은 데 얽히고[滯] 상례(常例)를 답습하여 제가 거룩한 체, 제가 신령한 체하는 자들에게 비할 바이겠는가?” 하고 돌아와 나는 그의 대답을 적었다.


♣해설:

 지은이 이규보는 고전수필순례 10 「국선생전」에서 자세히 소개하였기로 생략한다.「이상자대(異相者對)」는『동문선』제105권에 실려 있다. 혜진서관의『한국문학개론』(1991)”에 의하면, ‘대(對)’란 의문이나 물음에 대하여 쓴 글로서, 논(論)이나 변(辨)과 같은 부류의 글이며,『동문선』에서 분류한 40여 종의 문장양식에 들어가는 수필이라고 하겠다. (pp.541~543) ‘대(對)’는 ‘대답’이라는 뜻이다.

 번역은 『한국고전종합 DB』를 따랐으나, 부분적으로 윤문하였음을 밝힌다.  

 차면 기우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살찐 사람은 마를 수 있고, 마른 사람은 살찔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 고귀한 신분이라고 늘 그 신분으로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빈천하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빈천한 신분에 머무르란 법이 없다. 이런 이치를 깨달으면 누구나 현재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숙하고 분발할 것인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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