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등정기 18) [大尾] 만주벌판 2,100km를 누비고 나서 (백두산 등정기 18) [大尾] 만주벌판 2,100km를 누비고 나서 이 웅 재 1:00경. 고려성에서 점심을 배불리 먹은 후 단동으로 이동하다. 6:00경 단동에 도착할 것이란다. 그리고 호텔 투숙, 이튿날은 일어나자마자 다시 대련으로 달려야 한다. 한 마디로 잘못된 코스인 것이다. 가이드도 말했다. 왜 심양으로 가.. 백두산 등정기 2007.08.02
(백두산 등정기 16) 졸본산성은 어디 가고 오녀산성만 남았는고 (백두산 등정기 16) 졸본산성은 어디 가고 오녀산성만 남았는고 이 웅 재 6월 22일. 금요일. 예정보다 10분쯤 늦은 7:20경 호텔을 출발하다. “호텔에 남겨둔 것 없지요?” 으레 하는 말이지만, 가이드에게는 중요한 발언 중의 하나이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도 매우 중요한 말, 확인해 보아야만 할 말이다. .. 백두산 등정기 2007.08.02
(백두산 등정기 14) 백두산 천지에서 정상주를 한 잔씩 하다 (백두산 등정기 14) 백두산 천지에서 정상주를 한 잔씩 하다 이 웅 재 헉헉거리며 올라간 넓은 공터 아래쪽으로 백두산이 누워 있었다. 나는 조심조심 관음증을 노출시키듯 천지(天池)를 훔쳐보았다. 짙푸른 빛깔, 사람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힘을 지닌 색감이었다. 그러나 함부로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 백두산 등정기 2007.07.30
(백두산 등정기 12) 백두산 가는 길은 힘겨웠다 (백두산 등정기 12) 백두산 가는 길은 힘겨웠다 이 웅 재 6월 21일. 목요일. 오늘이야말로 백두산에 오르는 날이다. 아침에 날씨가 흐려서 걱정을 했더니, 통화시(通化市)에 산다는, 새로 온 현지 가이드가 말한다. 백두산의 날씨는 천변만화라서 지금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그래도 걱정은 가시질 않.. 백두산 등정기 2007.07.28
(백두산 등정기 11) 광개토대왕릉비와 광개토대왕릉을 참배하다 (백두산 등정기 11) 광개토대왕릉비와 광개토대왕릉을 참배하다 이 웅 재 장수왕릉을 관람한 우리는 근처의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로 향했다. 호태왕비(好太王碑)라고도 불리는 이 비석은 자연석 화강암을 다듬어 만든 것으로 44행에 대체로 각각 41자씩을 담아 총 1,775자의 예서체 한자가 새.. 백두산 등정기 2007.07.27
(백두산 등정기 9) 환도산성의 전투와 을두지(乙豆智)의 지략 (백두산 등정기 9) 환도산성의 전투와 을두지(乙豆智)의 지략 이 웅 재 묘향산에서 중식을 한 후 우리는 환도산성으로 향했다. 환도산성은 국내성에서 북쪽으로 2.5km쯤 가면 나온다. 고구려는 제2대 유리왕 때에 졸본성(卒本城)에서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기는데 장수왕의 평양 천도 전까.. 백두산 등정기 2007.07.25
(백두산 등정기 8) 아, 이곳은 만주벌판이다 (백두산 등정기 8) 아, 이곳은 만주벌판이다 이 웅 재 이 지방에서는 아직도 나무를 때어서 난방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집집마다 굴뚝이 있는 점이 우리나라와는 다른 모습이라 하겠다. 땔감인 나무들을 쌓아놓고 그 위쪽에 지붕처럼 덮어씌운 옥수숫대들이 집집마다 준비되어 있었다. 6․25 직.. 백두산 등정기 2007.07.24
(백두산 등정기 7) 밤중에 일어나본 적이 있나요? (백두산 등정기 7) 밤중에 일어나본 적이 있나요? 이 웅 재 안평하교(安平河?)를 지나는데 다리를 수리중이라서 다리 아래쪽으로 하천을 가로질러 일방통행으로 건너가야 했다. 우리나라 60년대식 도로보수 현장이었다. 덜커덩거리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통일.. 백두산 등정기 2007.07.23
(백두산 등정기 6) 위화도를 바라보며 (백두산 등정기 6) 위화도를 바라보며 이 웅 재 제2일(6월 20일. 수) 가랑비. 6:50 출발. 6:50이면 너무 이른 시각 같지만, 우리나라 시간으로 하면 7:50분이니 무난한 시간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출발 직전 인원 점검을 해 보니 한 사람이 남는다. 더러 나 같은 거북이가 있어서 늦게 오는 사람 때문에 인원수.. 백두산 등정기 2007.07.22
(백두산 등정기 5) 백두산은 왜 중국 땅이 되었는가 (백두산 등정기 5) 백두산은 왜 중국 땅이 되었는가 이 웅 재 단동 톨게이트에 다다르니 앞쪽으로 ‘중국장성동단기점(中國長城東端基点)’이란 커다란 입간판이 보인다. 단동(丹東)은 원래 안동(安東)이었는데, 1965년 그 명칭을 현재의 단동으로 바꾸었다. 시 전체인구는 240만 정도이고 시내인구는 70.. 백두산 등정기 2007.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