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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 고전수필 순례 24)
노(怒)와 욕(慾,식욕과 색욕)
안정복 지음
이웅재 해설
칠정(七情)의 해로서는 노(怒)와 욕(慾)이 가장 심한 것이다. 한 번 때리고 욕함이 온당함을 잃는 것은 곧 형의 팔을 비틀고 할아버지를 욕할 조짐이 있음과 같고, 한 번 식욕(食慾)과 색욕(色慾)이 중도(中度:알맞은 정도)를 넘는 것은 곧 남의 재물을 도둑질하고 남의 여자를 넘볼 징조라 하겠는데, 가히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노(怒)는 양(陽)에 속하는 것으로 그 발함이 빠르고 또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라서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다. 그래서 혹 후회하고 경계하는 자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욕(慾)은 음(陰)에 속하므로 그 발함이 은밀하여 보기가 어렵다. 그런 까닭에 혹 알고서도 행하는 자가 많다. 노(怒)는 그 기를 꺾어야 하고, 욕(慾)은 아예 그 구멍을 틀어막아야 한다.
동네 어떤 상놈에게 무례한 일이 있어서 조금 질책을 하려는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으니, 진실로 뜻을 올바로 지키고 기운을 자극함이 없도록 하기가 어려움을 알겠다.
평상시 아직 사물을 접하지 아니했을 때에는 마음이 편하고 고요하여 스스로 자디잔 티끌도 일어나지 않아 사물을 만나게 되어도 태연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으나, 조그마한 역경을 만나도 번번이 이와 같았다. 반드시 별 일이 없을 때에 존심양성(存心養性)을 무르익게 하여 그 근본을 두텁게 길러주어서, 사물을 만날 때 자세하게 살피어 그 기미를 막아 끊는다면 근본과 끝이 서로 유지되고 체(體)와 용(用)이 모두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무사할 때 존심양성하기는 혹 어렵지 않으나 사물을 만난 뒤에 살피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렵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생각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일이 창졸간에 일어나면 그에 대응하는 것도 갑작스럽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때에 아직 일에 대응하기 전에 미리 옳고 그름을 생각하여 살핀다면 어찌 낭패가 있겠는가? 정자는 말하기를 “성날 때를 당하면 얼른 그 성남을 잊어버리고 이치의 옳고 그름을 살펴보라.[當其怒時 遽忘其怒 觀理之是非]” 하였다. ‘거망관리(遽忘觀理)’ 네 글자는 참으로 따끔한 충고인 것이다.
재물은 몸을 빠뜨리는 함정이요, 여색은 몸을 찍는 도끼요, 술은 창자를 썩게 하는 독약이다. 후한(後漢) 때 양병(楊秉:아버지, 아들, 손자의 4대에 걸쳐 三公을 지낸 명문가의 사람.)은, “나에게는 세 가지 미혹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술과 색과 재물이다.”라 하였으니, 그 인품을 가히 알 수가 있다.
길에서 젊고 예쁜 여자를 만나면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사람의 욕망은 제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옛날 봉조하(奉朝賀:조선 시대에, 종이품의 관리로 사임한 사람에게 특별히 주던 벼슬. 종신토록 녹봉을 받았다.)인 최규서(崔奎瑞:1650-1735, 경기도 광주 출생. 경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일사부정[一絲扶鼎:지조와 신의가 하나되어 사직의 안위를 지켰다는 뜻]의 청백리.)가 늘 말하기를 “젊었을 때 길에서 여인을 만나 만일 돌아다볼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눈을 감고 생각하기를, ‘이 마음이 장차 나를 죽일 것이다.’ 하고 몇 차례 생각하면 심기가 저절로 진정이 된다.” 하였으니, 선배들이 자신의 욕망을 극복함은 이와 같았다.
부귀가 사람을 빠뜨림은 너무나 심하다. 평상시에는 명절(名節:명분과 절의)에 대해 호언장담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사소한 이해에 부딪쳐도 얼굴빛이 변하고 마음이 동함을 면치 못한다. 어두울 때 나갔다가 밤중에 돌아오곤 하여 명예가 손상되고 몸이 패망되는 데 이르러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좋은 벼슬 얻기만을 바라고 있으니, 가히 삼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글로 적어서 무턱대고 벼슬길로 진출하는 자들을 위하여 경계하노라. 사군자(士君子)가 만약 일호(一毫)라도 부귀를 마음에 두고 잊지 못하면 문득 천 길 구덩이에 떨어지는 사람이 될 것이다.
‘면강(勉强)’에서의 ‘강(强)’ 자는 곧 활이 굳센 것을 말한다. 사람이 굳센 활을 당기려고 할 때 그 힘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이는 사람이 선(善)을 행할 때 그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과도 같다.
어진 스승과 좋은 벗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비록 촌사람과 속된 무리라 하더라도 착함이 있으면 ‘나도 그처럼 해야겠다.’ 하고, 착하지 못함이 있으면 그를 가지고 스스로 경계할 것이며, 그들의 악함은 숨기고 그들의 착함은 드러낼 것이다.…
♣해설:
지은이 안정복(安鼎福)에 대해서는 ‘속 ․ 고전수필 순례 8. 영장산객전’을 참조할 것. 이 글은 『순암선생문집 권지십이』「잡저(雜著)」「상헌수필 상(橡軒隨筆 上)」에 나오는 글임. 번역은 ‘한국고전종합DB’를 따랐으나, 부분적으로 윤문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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