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別 ․ 고전수필 순례 1) 간리론(奸吏論)(丁若.hwp
(別 ․ 고전수필 순례 1)
간리론(奸吏論)
정약용 지음
이웅재 해설
아전(衙前)이 본디부터 간사한 것은 아니다. 그들을 간사하게 만드는 것은 법이다. 간사함이 발생되는 요인은 이루 다 열거할 수가 없다.
무릇 직책은 하찮은데도 재주가 넘치면 간사하게 되고, 지위는 낮은데도 지식이 많으면 간사하게 되고, 노력을 적게 들였는데도 효과가 신속하면 간사하게 되고, 나는 한 자리에 오래 있는데도 나를 감독(監督)하는 사람이 자주 교체되면 간사하게 되고, 나를 감독하는 사람의 행동 또한 정도(正道)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간사하게 되고, 아래에는 당여(黨與)가 많은데도 윗사람이 외롭고 우매하면 간사하게 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나보다 약한 탓으로 나를 두려워해서 고발하지 못하면 간사하게 되고, 내가 꺼리는 사람이 다 같이 죄를 범했는데도 서로 버티고 고발하지 못하면 간사하게 되고, 형벌이 문란하여 염치가 확립되지 않으면 간사하게 된다. 간사한 탓으로 지위를 잃기도 하고 간사해도 지위를 잃지 않기도 하며, 간사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간사한 짓을 했다는 것으로 지위를 잃는다면 간사하게 된다.…(중략)…
지금 아전을 제어하는 방법은 전부가 간사함이 발생하게 되는 이유에 합치되지 않는 것이 없는데도 아전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술책은 없다. 이러니, 아전이 간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저 나라에서 공경(公卿)ㆍ대부(大夫)ㆍ사(士)의 관직을 설치하고 공경ㆍ대부ㆍ사의 봉록을 제정하여 공경ㆍ대부ㆍ사들을 우대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 직책이 이미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라면 재주를 시험하고 기예를 선발하고 치적을 고과하고 관질(官秩)을 승진시킴에 있어서도 당연히 백성 다스리는 것으로 기준을 삼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시부(詩賦)로 시험하고 씨족(氏族)으로 선발하고 경력(經歷)의 청화(淸華)로 그 업적을 평가하고 당론(黨論)의 준엄하고 급함으로 관질(官秩)을 승진시킨다.
백성을 다스리는 데 이르러서는,…(중략)…아전에게 맡겨 그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게 한다. 그리고는 때때로 한 번씩 와서 엄한 위엄과 가혹한 형벌을 가하면서,
“간사한 아전은 마땅히 징계해야 된다.”
하니, 이는 손[客]이 와서 주인(主人)을 곤궁하게 하는 셈이다.…(중략)…
흉년에 도적이 일어나서 북 치는 소리가 삼보(三輔)를 진동시킬 적에, 부(賦)를 잘 짓는 사마상여(司馬相如)를 시켜 이를 금지하게 한다 해도 금지할 수 있겠는가? 큰 옥사(獄事)가 일어나서 죄수들이 옥에 가득하여 해를 넘겨도 판결이 잘 안 될 적에, 송(頌)을 잘 짓는 왕자연(王子淵)을 시켜 이를 판결하게 한다면 판결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아전에게 간사한 짓을 못하게 하려면, 조정에서 사람을 뽑을 적에 오로지 시부(詩賦)에만 의거하여 뽑지 말고, 행정 사무(行政事務)에 익숙한 사람을 현관(縣官)에 오르게 하여야 한다.…(중략)…
모든 아전의 직책 가운데 중요하고 권한이 있는 자리는 한 고을에 10자리를 넘지 않는다. 그것은 파견(派遣)의 차송(差送)을 맡은 사람, 곡식 장부를 맡은 사람, 전지(田地)를 맡은 사람, 군사(軍事)에 관한 행정 사무를 맡은 사람이다. 아무리 큰 고을이라도 10인에 지나지 않는다. 이 10인을 지금 영리(營吏)를 뽑는 법처럼 매양 몇 백 리의 밖에서 뽑아오고 또 그 직책에 오래 있지 못하게 해야 한다. 오래 있다 해야 2년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1년으로 만기를 삼는다면 아전이 간사한 짓을 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무릇 간사한 짓은 오래 있는 데서 생기게 된다.…(중략)…간사한 짓을 없애는 방법이 이같이 행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습(舊習)만을 답습하면서 이를 바로잡지 못하니 낸들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아전이 본디부터 간사한 것은 아니다. 그들을 간사하게 만드는 것은 법이다.’라 한 것이다.
♣해설:
지은이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자는 귀농(歸農)․미용(美庸)이며, 호는 다산(茶山)·삼미(三眉)․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 등이고, 천주교 세례명은 요한, 시호는 문도(文度)이며, 본관은 나주(羅州)다.
문장과 경학(經學)에 뛰어난 학자로, 유형원(柳馨遠)과 이익(李瀷) 등의 실학을 계승하여 집대성하였다. 수원 화성 건축 당시에는 거중기(擧重機)를 고안하여 건축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주자학적 세계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시도하였다. 천주교도와 남인(南人) 세력에 대한 탄압 사건인 신유사옥(辛酉邪獄) 때 전라남도 강진(康津)으로 귀양 갔다가 19년 만에 풀려났다. 저서에 『목민심서(牧民心書)』,『흠흠신서(欽欽新書)』,『경세유표(經世遺表)』따위가 있으며, 그의 시문집을 한데 모아놓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가 있다.
이 글은 『다산시문집』 제12권 「논(論)」중에 나오는 「간리론(奸吏論)」이다. 번역은 『한국고전종합 DB』를 따랐으나, 부분적인 윤문과 각주를 달았음을 밝힌다.
(2012.4.30. 원고지 1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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