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문턱에서

도둑놈의 지팡이[百花齊放 32]

거북이3 2013. 8. 18. 11:09

 

 

 

@도둑놈의 지팡이[百花齊放 32].hwp

 

 

 

 

 

 

         

도둑놈의 지팡이[百花齊放 32]

 

                                                                                                                  이 웅 재

6월 ×일. 요즈음은 산책하기에 꼭 알맞은 날씨다. 만나교회 아래쪽을 지날 때였다. 아까시꽃 비슷하게 생긴 비교적 키가 큰 풀을 만났다. 무척 낯이 익었다. 그런데 좀체 그 이름이 떠오르질 않는다. 답답하다. 이런 못된 놈! 아무 잘못도 없는 놈에게 지청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 이름이 있었다. 중학교엘 다닐 때였던가, 어디선가 들었던 이름인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문득 뇌수의 한 부분에서 반짝 생각나는 것이 아닌가? 그랬다, 놈은 ‘도둑놈의 지팡이’였다. 요상한 이름을 가진 놈이 하필이면 교회 아래쪽에 슬그머니 숨어 있다니…아마도 제 이름이 그렇게 떳떳하질 못하다는 것을 놈도 스스로 알고 있었던 것일까?

놈에겐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놈은 여러해살이 풀이다. 그런데 나무처럼 보인다. 보통 1m 안팎으로 곧게 자란다. 예전에는 도둑놈들이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는 일이 흔했단다. 흉기까지 가지고 다니는 것은 좀 뭣하고 해서 그랬을 것이다. 비상시에는 무기 대용으로도 사용할 수가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어떤 마음 약한 도둑 하나가 하필이면 저처럼 가난하기 그지없는 집을 털러 들어갔다가 서툰 솜씨라서 들켜버렸던 모양이다. 허겁지겁 도망치던 울타리께에 요놈의 풀이 실하게 자라 있었나 보다. 옳다구나 싶어 놈을 지팡이로 삼아 간신히 주인을 따돌리고 도망을 쳤었다던가? 일설에는 뿌리의 형태가 지팡이처럼 굵고 길면서 구불구불 흉측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희한한 이름을 가진 놈인데, ‘도둑놈의 갈고리’도 있고 ‘도둑놈가시(도깨비바늘)’라는 이름을 가진 놈들도 있으니, 이름만 보고서 타박하는 일일랑 해서는 안 될 일이라 하겠다.

‘도둑놈의 지팡이’는 여러 가지 다른 이름들도 가지고 있다. ‘뱀의 정자나무’라고도 부르는 것은 이놈이 있는 곳에는 대개 뱀이 있어서 붙은 이름일 것이요, 이놈의 뿌리를 한방에서는 ‘고삼(苦蔘)’이라고도 하는데, 어릴 때의 그 뿌리 모양이 인삼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이름대로 맛이 무척이나 쓰면서도 효험은 인삼(人蔘)에 버금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예전 한창 바쁜 농사철에 소가 지쳐서 병이 나 여물을 먹지 못할 때에 이 고삼 생뿌리를 짓찌어서 막걸리에 넣어 하룻밤을 지낸 뒤에 먹이면 소의 병이 낫는다고 해서 ‘우삼(牛蔘)’이라고도 한다는데, 소나 말의 피부기생충 구제에도 사용하고, 사람에게도 건위(健胃) 작용이 탁월하여 식욕 부진이나 소화 불량 시 이용할 수도 있는 놈이다. 회화나무와 비슷한 꽃이 피어 야생의 회화나무라는 뜻으로 ‘야괴(野槐)를 비롯하여 지괴(地槐), 수괴(水槐)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처음 아까시를 닮았다고 했는데, 좀더 적확히 말한다면 회화나무를 닮았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우리말로는 ‘너삼’이나 ‘느삼’이라고도 부른다.

이놈은 강력한 살균성분을 지니고 있다니, ‘도둑놈’이란 이름이 붙을 정도로 독한 놈은 독한 놈인 모양이다. 요놈을 짓찌어 물에 풀면 물고기가 죽는가 하면, 옛날 푸세식 변기에 넣으면 구더기를 비롯하여 모든 징그러운 벌레들도 몽땅 죽는다지만, 사람에게는 별 독이 없어 적당량을 사용하면 여러 가지 병을 치료할 수가 있다고 하는 고마운 야생초이다.

문둥병의 일종인 적라(赤癩)로 눈썹이 빠지는 것을 치료할 수도 있다고 한다. 치통(齒痛)은 물론 음부에 생긴 악창(惡瘡)도 낫게 한다니 그 용도가 실로 다양하다. 축농증, 땀띠뿐만 아니라 여드름 치료에도 좋고 고삼을 진하게 달인 물에 발을 담그면 무좀에도 그만이라고 하며, 모근(毛根)을 강화시켜 주고 발모(發毛)의 효과도 있다고 하니, 예비 대머리님들에게는 구세주라 할 만도 하다.

어린 아이 시절에는 종종 손등이나 발등, 때에 따라서는 얼굴에 사마귀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당사자는 그것이 미관상 보기에 좋지가 않아서 무척이나 신경이 쓰인다. 사마귀는 피부에 바이러스가 감염되어 생기는 질환이다. 요즘에는 전기로 지져서 태워버리는 치료법을 위시하여 냉동치료, 주사치료, 레이저치료 등의 여러 가지 치료법이 생겨났지만, 예전에는 놈을 칼로 도려내려다가 상처를 내기도 하게 되는, 놈은 아주 성가신 존재였다. 그런데 이것을 고삼의 달인 물로 여러 번 씻어주면 없어진다고 하니 그 얼마나 반가운 존재인가?

그뿐만이 아니다. ‘도둑놈의 지팡이’는 이름과는 달리 여성들의 성기능을 높여주기도 하며, 뿌리로 만든 고약은 트리코모나스 질염(膣炎) 치료에도 특효란다. 아하, 최근에는 항암 작용까지 있다고 하니, 이제는 그 ‘도둑놈’이라는 말은 떼어버려도 될 법한데, 사람들은 오히려 ‘고삼’이라는 말보다 그 ‘도둑놈의 지팡이’라는 말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고삼’ 하면, ‘苦蔘’이라는 말이 생각나기 이전에 ‘고삼(高三)’이 연상되어서 지긋지긋한 느낌이 들어 차라리 ‘도둑놈의 지팡이’라는 말에 더욱 친근감을 느낀다고도 한다. 막걸리가 시어질 때 넣으면 효과가 있어 술꾼들에게 환영받을 만하기도 하며, 한국이 원산지라는 점도 마음에 드는 일이다. 꽃말 ‘보물’이 놈의 가치를 말해준다고 할 수가 있겠다.

고삼을 사용하는 방법에는 다려서 마시는 ‘고삼차’도 있지만, 그 맛이 써서 가루나 환약으로 만들어 복용하는 편이 좋다. 이 ‘도둑놈의 지팡이’는 콩과에 속한다. 염주와 비슷하게 보이는 열매를 맺는 협과(莢果: 꼬투리)를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이놈을 재배하려면, 10월경에 그 종자를 받아 놓았다가, 물에 2~3일 정도 불린 후 파종하면 발아율이 높다. 3월 하순~4월 중순에 채광이 좋은 양지에 콩 심듯 파종하면 된다.

놈은 종종 한약재 황기와 혼동되기도 한다. 얼핏 구분이 잘 안 되지만, 줄기에서 잎이 나오는 부분을 잘 살펴보면 쉽게 구분할 수가 있다. 그 연결 부위가 보라색을 띠면 고삼이고, 그렇지 않으면 황기이니 혼동하지 말 일이다.

                                                                                (13.8.18. 원고지 16매)

 

 

 

 

 

 

@도둑놈의 지팡이[百花齊放 32].hwp
0.7MB
@도둑놈의 지팡이[百花齊放 32].hwp
0.02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