옘병을 앓고도 죽지 않은 사내
이 웅 재
교실 밖이 조금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장티푸스(腸typhus) 예방접종 팀이 우리 교실 쪽으로 오는 모양이다. 고 2의 8반, 내 담임반의 국어 시간이었다.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고 예방접종 팀이 들어왔다. 수업은 잠시 중단, 예방접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부터 맞으셔야 하잖아요?”
‘드르르륵!’
‘쐐애액~’ 소리를 낸다고 해서 흔히들 쌕쌔기라고 부르던 제트기가 순식간에 날아와서 기관총을 갈겨대고 있었다. 무엇이 그 기관총에 맞았는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우지끈 툭탁!’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내 몸은 온통 불덩이였다. 엄청난 고열로 인해 정신마저 오락가락하는 사이를 비집고 계속해서 쌕쌔기의 폭격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나는 그때 장질부사(腸窒扶斯)를 앓고 있었다. 내 나이 10여 세, 6․25사변 때 강원도 철원의 샘통[泉通]에서였다. 당시에는 장티푸스를 그렇게들 부르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장질부사라는 말보다 ‘옘병’이라고 부르는 일이 더 많았다. 전염병(傳染病)을 줄여서 쓰는 ‘염병(染病)’이 변한 말이었는데, 그만 장티푸스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었다. 요즈음도 흔히들 욕설로 쓰는 말, ‘이런 옘병할 놈’이나 ‘옘병 앓다 땀도 못 내고 죽을 놈’의 ‘옘병’이 그것이었다. 40℃가 넘는 고열과 복통에 장천공(腸穿孔)이나 장출혈(腸出血)이 될 수도 있고 심할 때는 정신병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는 무서운 병으로,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치사율이 25%에 이른다는 병이다. 오염된 음식물이나 식수 따위에 의해서 전염되는 수인성 전염병, 법정 전염병이다. 요사이에는 예방접종으로 감염되는 일이 별로 없고 설사 감염되었다고 하더라도 항생제 등 좋은 치료약들이 있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병이지만, 그때에는 그 병에 걸렸다 하면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십중팔구 송장으로 변하기 마련이었다.
또 한 번 ‘쐐애액~’ 하는 쌕쌔기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였다. 내가 있는 곳은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방공호였다. 근처에 야산 따위가 없어서 논바닥 한 곳에 설렁설렁 굴을 판 다음 굵은 나뭇가지 등을 얼기설기 얽어 놓고 그 위쪽에 흙과 마른 풀 더미 등으로 덮어서 만든 곳이었다. 그곳은 어두웠고 항상 퀴퀴한 흙냄새와 더불어 탁한 공기가 매캐한 곳이었다. 옘병은 제가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좋은 곳이라 여겨서 그러한 방공호마다를 찾아다니며 유행하고 있었다.
약 한 톨 쓸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옘병에 걸린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고약한 전염병으로 알려진 옘병은 그 때문에 엄마나 아버지 말고는 옆에서 수발해 주는 사람도 없이 거의 방치된 상태였다. 죽을 거면 죽고 어쩌다 살아나게 되면 요행이라는 생각들이 만연되어 있었던 처지였다. 시도 때도 없는 구토 증상 때문에 죽 한 그릇 제대로 얻어먹기조차 어려웠던 나는 기진맥진하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쌕쌔기의 예의 ‘쐐애액~’ 하는 소리와 ‘드르르륵!’ 기관총 갈기는 소리는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여 전신에 소름을 좌악 돋게 만들었다. 순간 머릿속은 잠깐 하얗게 바랬다가 곧 아주 새까만 동굴처럼 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깜빡 정신 줄이 끊겼다가 다시 들어왔는데, 나는 어느새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빠져들어 가는 깊은 수렁 속을 허우적거리고는 하였다. 안간힘을 쓰다 보면 입술이 바싹바싹 타 들어갔다.
“물, 물, 물!”
나는 끊임없이 물을 찾았다. 꿀꺽꿀꺽 물을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들어 그 죽음의 수렁 속에서 벗어나오고는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살아났다. 죽으라고 내팽개쳐 두었더니 뜻밖으로 살아난 것이라고들 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때 쌕쌔기의 공습으로 바로 우리 앞집의 할머니 한 분이 그 기관총 사격에 맞아 온몸이 이리저리 찢겨진 채 아주 처참한 몰골로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드르륵!’
교실 문이 열렸고, 예방접종 팀이 들어왔으며,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부터 맞으셔야 하잖아요?”
그 소리에 나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쐐애액~’ 쌕쌔기 소리가 사라졌다. ‘드르르륵!’ 기관총 소리도 사라졌다. 대신 ‘선생님은 안 맞으면서 우리만…….’ 하는 불평불만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자 나는 즉시 내 팔을 걷어붙이고 예방접종을 하고 있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나부터 놓아 주시오!”
그리고는 주사 맞은 자리를 알코올 솜으로 꾸욱 누른 채 말했다.
“선생이란 모범을 보여야 하는 사람이라서 맞았지만, 사실은 나는 안 맞아도 되는 사람입니다. 6․25 때 이미 장티푸스를 앓아서 죽을 뻔하다가 살아남았기 때문이죠. 여러분도 장티푸스를 한 번 앓은 사람은 완전하게 면역이 생긴다는 사실을 생물 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을 겝니다. 이제는 ‘선생님은 안 맞으면서…….’ 하는 소리 따위는 하지 않겠지요?”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전에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을 먼저 알아보아야만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장티푸스 예방접종처럼 여러 가지의 문제점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선 쓸데없는 시간 낭비가 생겼고, 접종약품의 손실이 발생했으며, 간호사 분의 노력도 허비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역지사지’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나는 그 마지막 말은 하지 않았다. (2014.12.15.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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