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문화 체험기

(발칸 문화 체험기 1)공항에 도착하니 비는 그쳤다

거북이3 2016. 6. 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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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문화 체험기 1)

               공항에 도착하니 비는 그쳤다 

                                                                                                                                               이 웅 재

   4/13 (수) 비.

   오늘은 발칸(Balkan)으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발칸’은 ‘거칠고 숲이 많은 산악지대’를 의미하는 말로, 발칸 산맥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유럽 대륙과 발칸 반도를 구분하는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그냥 ‘남동유럽’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유럽, 서유럽을 다녀 보았지만, 발칸을 꼭 가보고 싶었다. 아마도 우리와 같은 반도인데다가 반도로서 겪어야 했던 지정학적 수난이 동병상련지정을 불러일으킨 것일까?

   그런 것을 떠나서라도 여행은 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일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일 자체만으로도 여행은 즐겁다. ‘탈출’이란 ‘벗어남’이다. 어제도 오늘 같고, 오늘도 내일 같은 일상, 그래서 일상은 ‘지겹다.’ 그 지겨움에서 벗어나는 일, 그것이 ‘여행’인 것이요, 그것은 즐겁고 또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여행이란 ‘벗어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만남’도 함께한다. 못 보았던 장소를 가 보게 되고, 모르던 사람도 만나게 되고, 이제껏 먹어본 적이 없던 음식을 먹어보게도 된다. ‘만남’은 ‘새로움’을 맛보게 하고, 새로움은 우리를 설레게 해주고 또 기쁘게 만들어 주는 일이 아니겠는가?

   기대에 부풀어 새벽부터 서둘렀다. 여행 백을 챙겨 가지고 아파트 현관으로 나갔더니, 이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웬만하면 그냥 야탑역으로 가서 공항버스를 타면 되겠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다. 딱 우산을 써야만 할 정도의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할 수 없었다. 다시 9층까지 올라가 현관문을 열고 우산 2개를 골랐다. 하나는 잘 접히지 않는 우산, 그리고 하나는 3,000원짜리 싸구려 비닐우산. 잘 접히지 않는 우산은 오늘로 수명 끝, 공항에서 버리고 갈 심산이었다. 비닐우산은?

   2007년 4월 학생들을 이끌고 일본 견학을 갔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동경경제대학(Tokyo Keizai University) 방문 때였다. 대학 캠퍼스 근처에서 진입로가 좁아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려는데, 걸어 다니기에는 조금 무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꺼내려면 짐칸에 있는 여행 백을 꺼내야 하는데 그 일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었다. 다행히 운전기사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우산을 대여해 주어서 문제는 그럭저럭 해결되었다. 그런데 그 우산은 거의가 비닐우산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에 비닐우산이 처음 등장했었다. 그건 우산대가 대나무로 된 파란색의 비닐우산이었다. 그 비닐우산은 1990년대에 중국산 플라스틱 우산이 수입되면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었다. 그 비닐우산과는 달리 우산대도 제대로 된 약간 두꺼운 투명 비닐 우산이었는데, 혼자 쓰기에도 작게 여겨지는 우산들이었다. 너도나도 골프 우산을 들고 다니는 최근 우리나라의 풍경과는 매우 달랐다. 그러고 보니 일본 학생들도 천으로 된 우산을 쓰고 다니는 일은 거의 없고 모두가 비닐우산들이었다.

   그 우산이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투명하여 앞이 잘 보여서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칠 염려도 별로 없는데다가 값도 싸서 편리하였기 때문이었을 터이지만, 웬일인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었다. 우산 하나에서도 일본은 우리에게 애증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나중, 그 비닐우산도 결국은 공항의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가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여행을 시작하려는데 비가 내린다. 좋은 징조일까, 나쁜 징조일까? 나는 ‘오늘’이라는 시점을 생각해 보았다. 오늘은, 그렇다, 제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일이다. 여행 때문에 나는 며칠 전 사전투표를 하였으니, 내 권리 내 의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선거일에 비가 오면 투표율이 저조하게 되고 여당에게는 많은 타격을 준다고들 한다.

   예정된 차 시간에 김포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가 왔다. ‘인천공항 가는 버스가 올 시간인데…’ 생각하고 있는데 기사 양반이 빨리들 타란다. 이 버스가 인천공항까지 간다는 것이다. 비가 온다든가 선거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인천공항 가는 리무진이 고장이 나서 대타로 운행하게 된 것이란다. 좋은 징조일까, 그 반대일까?

   공항에 도착하니 비는 그쳤다. 여행길을 위한 나쁜 징조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선거에서의 여당에게 좋지 못한 징조일지도 모르겠다. 나중의 일이지만,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는 여소야대의 선거였으니, 아마도 공천 잡음으로 말이 많았던 여당에 대한 하늘의 예시 내지는 징벌적 날씨는 아니었을지?

   내가 가는 곳은 발칸반도이다. 처음엔 두바이까지 가는 일정을 잡으려고 했지만, 알고 보니 외국 항공편을 이용해야 하는데다가 연결되는 비행기가 서너 시간씩이나 기다려야 되는 여행이라서 아쉬운 대로 발칸 쪽을 택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발칸만이 아닌, 발칸 3국(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동유럽 3국(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의 나들이 길이었다.

   공항 여직원의 도움을 받아 비행기 표의 좌석을 지정받았는데, 아쉽게도 벌써 통로 쪽 자리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앞에서 3번째인가의 자리를 배정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후 면세물품 인도장으로 가서 몇 개의 물품을 찾은 다음, ‘인류의 적인 술’을 ‘마셔서 없애려는’ 사명감(?)에서 주류를 파는 곳으로 가서, 가난한 글쟁이답게 소주를 대신할 수 있는 짐빔(Jim Beam) 1병을 할인받아서 21,800원에 산 후, 다시 시간을 죽이기 위해 커피 한 잔씩을 사 마시며 기다리다가 탑승, 드디어 발칸으로의 여행을 시작하였다.

                                                                                              (16.6.4.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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