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문화 체험기 17]
작은 고추가 맵다
이 웅 재
대체로 여자들은 아이쇼핑을 즐긴다. 남자는 다르다. 외국의 쇼핑 몰이다 보니까, 그런대로 색다른 느낌이 있어서 크게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나, 한나절을 그러고 다녔더니 슬슬 허기마저 든다. 그래, ‘수염이 대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고 했겠다. 해서 음식점을 찾았다. 아주 크지도, 별로 작지도 않은 음식점이 눈에 띄었다. ‘Mango tree Bistro’, 이곳의 대표적인 과일 ‘Mango’가 들어가 있는 상호였다. 망고는 누구에게나 쉽게 선호되는 과일이다. 한때 어느 대통령 영부인께서 즐겨 들었다고 하여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망고는 한국인들 입맛에도 잘 적응하는 과일이다. 해서 필리핀에 있는 동안에는, 외식을 하지 않고 집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후식으로 꼬박꼬박 챙겨 먹었던 때문에 더욱 친밀감이 느껴지는 과일이었고, 그래서였을까, 망설임 없이 그 ‘Mango tree Bistro’의 문을 열었다. 젊은 여자 알바가 반갑게 맞아준다.
딸내미가 서툰 영어로 물부터 따뜻한 것으로 달라고 하였다. 나는 메뉴판을 ‘보고 또 보고’ 한 다음에야 그런대로 음식을 주문했다. 물론 사진을 면밀히 연구 관찰한 다음이었다. 당연히 음식의 이름은 알지 못한 채로다. 헌데 괜찮았다. 해서 맛있게 먹다가 아주 작은 고추가 하나 눈에 띄기에 포크로 콕 집어서 먹으려는 찰나였다. 딸내미가 질색을 한다.
“아빠, 그거 엄청 매운 거야. 먹지 마!”
원래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다. 그리고 ‘매워야 고추’라고 했다. ‘지가 매워 봐야 얼마나 매울라고?’ 생각하면서 아주 ‘작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아마도 ‘먹지 마!’ 하는 소리에 오기가 났었던가 보았다. 그런데 ‘역시나’였다.
“어이구 매워!”
저절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의 청양고출랑은 ‘저리 가라’였다.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TV 프로에서 멕시코 사람들이 비교적 매운 것을 잘 먹는다면서 청양고추를 먹다가 눈물을 찔끔 짜던 광경이 저절로 머리에 떠올랐다. 키가 작은 이곳 사람들은 어찌 이렇게 매운 고추로 음식을 조리한다는 말인가? 정말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은 헛말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먹고 난 후, 우리는 다시 ‘SM 슈퍼마켓’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당히 컸다. Ayala와 SM이 이곳의 대표적인 회사란다. 쇼핑 몰 4개인가가 2층에서 연결통로로 이어져 있었다. 슈퍼 앞쪽에는 Watsons가 있었다. 세계적인 유통기업이 우리나라의 GS리테일과 손잡고 만든 ‘헬스 & 뷰티 전문 스토어’다. 당연히 여성용품이 대부분인 상점이다. 물건 구경조차 하지 않는 할아버지가 안쓰러웠던지 점원 한 사람이 계산대 근처에 높은 의자 하나를 가져다준다. 해서 ‘Thank you’로도 모자라 ‘very much’를 덧붙이고 거기에 또 ‘indeed’까지 첨가를 했더니, 여점원이 화알짝 웃는다. 웃는 모습은 누구라도 보기가 좋다. 그렇게 Watsons와 이별을 하고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에는 또 내 시선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물건 하나가 발견되었다. 쓰레기통에 심어 놓은 화초였다. 발상이 신선했다.
저녁은 오늘도 외식을 하기로 하고 아파트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SM Aura로 가서 건물 탐색부터 하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5층엘 올라가니 Korean Grill JIN JOO가 있었다. 들어갈까 하다가 예까지 와서 굳이 한국식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 4층으로 내려갔다. 4층은 SAMSUNG HALL이었다. 그 삼성 홀에 있는 ‘HEALTHY SHABU-SHABU’[養生 涮涮鍋]로 들어갔다. ‘샤브샤브’는 일본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이 중국식으로 ‘솬솬꿔[涮涮鍋]’가 되었고, 그게 지금 필리핀에 진출하였으며, 그걸 이제 한국인이 먹는다. 바야흐로 세계는 이렇게 하나로 융합이 되어가는 시대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후식으로 수박도 나왔고, 마실 수 있는 쥬스도 나왔다….
“딸기 쥬스가 맛이 괜찮다!”
한 마디 한 것이 문제였다.
“딸기 쥬스라니요?”
그랬다. 딸기 쥬스라니? 그건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나는 ‘딸기 쥬스 운운’ 했는가? ‘늙으면(…).’ 하는 말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생겼을까? ‘수박 쥬스’였는데, 그걸 ‘딸기 쥬스’라고 한 것이다. (…)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말은, 어쩌다 이 글을 읽어줄 사람들에게 ‘빈 칸 채우기’ 문제로 남겨둘까 한다. ‘샤브샤브’를 맛있게 먹고 나온 나는 그 이후로도 ‘죽지’는 않고 살아서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SAMSUNG’이라 쓰인 가게 간판도 보였고, 많은 집에 불이 꺼져 건물 전체가 어둡게 보이는 아파트도 시야에 들어왔다. 이쪽은 번화가이기에 시끄러워 입주를 하지 않는 집들이 많아서 그렇단다. 배부른 사람들 얘기였는데, 죽지 않고 살아있는 나도, 지금은 뱃속을 든든하게 채운 상태라서인지, 그 말이 비교적 쉽게 이해가 갔다.
우리는 이어서 3층의 토산품 가게로 갔다. ‘Kultura Filipino Home & Fashion’이라는 커다란 글씨가 눈에 확 띄었다. 가게 안쪽에는 ‘MADE LOCALLY LOVED GLOBALLY’라고 쓰인 판넬을 공중에 매달아 놓고 있었다. 지역 제품이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뜻일 터이다. 널찍한 가게 안의 물건들은 모두가 필리핀적인 것들이어서 필리핀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준 곳이었다. 아내는 나무 쟁반 등 부엌 용품 몇 가지를 사더니, 멀뚱하게 쳐다보고 있는 나를 보고는, 문득 무슨 생각에서인지 특이하게 장식을 하여 놓은 토속주 한 병을 사고 있었다. ‘늙으면(…).’에 해당하는 나야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일이 도와주는 일이라 생각하고 지내는 수밖에…. (18.4.5.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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