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타 꼬타 고분 꼬타(百花齊放)

피막이풀[백화제방(百花齊放) 34]

거북이3 2018. 5. 6. 01:03


#34피막이풀[백화제방(百花齊放) 34].hwp  

"수필문학", 2018.4월호, p.106-109.에 게재된 글.


     피막이풀[백화제방(百花齊放) 34]
                                                               이   웅   재

 언제부터인지 베란다에 있는, 물을 담아 놓은 돌절구에, 이름 모를 야생초가 자리를 잡고 자라길 시작하였다.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는 상록의 잎은 몸이 닿는 물체에 붙어 옆으로 기면서 그 닿는 부분마다 계속 뿌리를 내리면서 덮어버리는 습성을 지녔다. 어디서부터 씨앗이 날아와 자리를 잡았을까? 그런데 낯설지가 않았다. 기억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그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놈은, 어느 날부터인지 마치 도둑처럼 슬그머니 찾아와서 안면 몰수하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어서,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미안해할까 봐 나 혼자 있을 때에, 어떻게 왔느냐고 조용히 물어보았다. 그러나 놈은 대답이 없다. 그렇게 놈은 자신에 대한 일체의 정보는 쉽사리 밝히지 않는 채로 돌절구의 둥근 윗부분을 거주지로 삼으면서 자차분한 잎들을 옹기종기 함께 어우르면서 건강한 모습으로 씩씩하게 자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놈을 대만에 가서도 만나게 되었다. 소원을 담은 천등(天燈)을 날려보내고 적교(吊橋)에서 사진을 찍었던 스펀[十分: ‘매우, 아주’의 뜻, Shihfen]에서였다. 스펀은 철도가 마을 중심을 가로지르며 지나가고, 그 철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상가 건물들이 조금 늘어져 있는 시골 마을이다. 1시간에 한 대가 지나가는 핑시선[平溪線] 이외에 평소에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곳이다. 마을 주민들은 그런 사정을 이용하여 이곳을 관광지로 변모시켰다. 다른 곳에 비해서는 비교적 고지대인 점을 감안하여 ‘천등 날리기’를 고안해낸 것이다. ‘꽃보다 할배/ 대만’ 마지막 편에서 신구와 이서진도 이곳에서 천등을 날렸다고 한다.
 외국에서까지도 만났던 놈이라 더욱 그 정체가 궁금해졌다. 해서 이리 저리 알아보다가 혹시나 하고 ‘모야모’에게 물어 알아보았더니, ‘피막이풀’이라고 하였다. 피막이풀, 그랬다.
 어렸을 적 기억이 아스름하게 떠오른다. 한여름이었다. 벼농사를 하는 농부들에게는 김매기가 무척 힘드는 일인데,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까지에는 세벌 김매기를 끝내야 하였다. 특히 그 세벌 김매기는 무척이나 힘드는 일이었는데, 벼가 상당히 자라 있어서 몸을 바짝 굽힐 수도 없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 작업이다. 거기에다가 거머리들은 왜 그렇게 악착같이 달라붙는지, 놈들은 마취력이 있는 물질로 종아리를 국소 마취시키고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기에, 일하는 중에는 쉽게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허리를 펴고 조금 쉴 양으로 논 밖으로 나와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놈들은 제 몸무게의 10배에 해당하는 피를 빨아들인다고 하니, 괘씸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놈들은 손으로 잡아떼려고 해서는 좀체 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행히 잡아떼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빨이 피부 깊숙이 파고들어가 있기 때문에 염증이 생길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놈들을 가장 간단히 처치할 수 있는 방법은 손바닥으로 힘껏 내리치는 일이다. 그러면 놈들은 꼼짝 못하고 떨어져 나간다. 하지만 종아리에서는 계속 피가 줄줄 흐르는 일이 다반사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피막이풀’이었다. 논 한쪽 구석의 웅덩이 근처에는 흔히 이 피막이풀이 자라고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뜯어 비벼서 지혈제(止血劑)로 사용하였다. ‘피를 막는다’고 해서 ‘피막이풀’이요, 한자명으로는 지혈초(止血草)라고도 했다.
 원산지는 우리나라, 미나리과(산형과[傘形科]) 피막이속에 속하는 사철 내내 푸른 잎의 여러해살이풀로 주로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풀이다. 잎의 지름이 3cm 이상이면 큰잎피막이풀이라고 하고, 잎이 서로 촘촘하게 붙어있지 않고 서로 떨어져서 키 자랑을 하는 놈들은 선피막이풀이라고 부른다.
 여름에 흰색이나 자주색의 5장의 꽃잎을 지닌 산형 화서 (繖形花序:무한 화서의 하나. 꽃대 끝에서 많은 꽃이 방사형으로 나와서 끝마디에 꽃이 하나씩 붙는다. 미나리, 파꽃 따위에서 볼 수 있다.)의 꽃을 피우고, 10월에는 열매가 달린다고 하는데, 우리 집에 있는 요놈은 아파트, 그것도 9층의 베란다라서 그런지 아직 꽃을 피우는 모습은 보지를 못했다. 씨를 가지고 번식을 시키기도 한다지만, 간단하게 줄기를 뜯어서 심어준 후, 수분만 많이 제공해 주면 쉽게 잘 자란다. 그래서 경사지의 토사유출의 위험이 있는 곳에 심으면 좋다고 하는데, 나처럼 돌절구의 위에 붙이거나 항아리 뚜껑 같은 곳에 키우면 보기에도 아주 좋다.
 잎몸은 쟁반처럼 둥근 모습으로 가장자리가 여러 개로 조금 갈라지는데, 그 갈라진 곳의 가장자리에는 뭉뚝한 톱니가 있다. 편지청(遍地靑)이라고도 부르는데 땅바닥을 두루 덮으며 늘 푸른빛을 띠기에 그런 이름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이뇨(利尿) 작용에 좋다고 하는 계장(鷄腸)과 마찬가지로 이 피막이풀도 그런 효과가 있어서인지 계장채(鷄腸菜)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기도 하고, 생약명으로는 천호유(天胡萸)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지혈, 이뇨의 용도뿐만이 아니라 황달(黃疸), 류마티스 관절염, 그리고 안면신경마비의 구안와사(口眼喎斜)에도 피막이풀을 짓찧어 마비된 얼굴 반대편 뺨에 붙여주면 좋다고 한다. 나름대로의 향이 있어 샐러드에 첨가하는가 하면, 최근에 와서는 피부치료제나 화장품의 원료로도 소중하게 쓰인다고 하니, 아주 고마운 야생초가 아닐 수 없다. 단, 골프장에서는 쉽게 제초가 잘 되지 않아 속썩이는 풀로 치부가 된다.
 꽃말은 ‘정열, 열정’이란다.  (’18.2.25.일. 15매, 사진 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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