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재의 사진

적성 나들이(감악산 출렁다리 등)

거북이3 2018. 9. 27. 22:28

[프롤로그](일기의 일부)

 10시가 조금 못 되어서 맏아들이 와서 함께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자가용(내가 둘째아들에게 준 SM7)을 타고 통일로를 달려 파주 율곡리의 “어부집”을 찾아갔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재료가 떨어져서 금일 휴업합니다’라는 쪽지가 붙어있는 것을 봄. 그 앞에서 얼쩡거리는 우리를 본 “어부집”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미안합니다.”하는 인사까지 해 주었음. 그러한 장사의 원칙과 친절을 보니 이 집이 왜 그렇게 ‘맛집’으로 이름이 났는지를 알 만했음.

  우리가 이 집에서 매운탕을 먹게 되었던 때는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바로 오늘 차를 운전하고 있는 맏아들(추석 연휴로 직장이 일주일 정도 유무가 되어서 오늘 나들이를 나온 것)이 積城의 25사단 GP에서 근무할 때 우리 내외가 그곳까지 면회를 가서 부대원들에게 강연도 해주고 아들의 외박 허가를 받아 나왔을 때 이름이 좋아서 들러서 먹어 본 일이 있었던 것이다. 잠은 위수지역을 벗어날 수가 없어서 면소재지에 있던 어느 여관이었는데, 때는 한참 추웠던 날, 새로 부대 배치를 받고 군복무를 하던 아들이 너무 더워서 땀이 날 정도의 뜨끈뜨끈한 방에서 푸욱 잘 수가 있어서, 먹던 일과 자던 옛일이 생각키워서 굳이 한 번 와 보자고 했던 까닭이었다.

  그 옛날의 맛은 보지를 못했지만, 예까지 온 김에 아예 ‘감악산 출렁다리’나 건너보고 가기로 하여, 산 아래 ‘만남의 광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평소에는 찾는 사람이 많아 주차장에 차 세울 자리가 늘 부족한 상태라고 함) 한 10분쯤 등산을 하여 출렁다리를 건너갔다가 옴. 주차장 한 옆에는 천막이 하나 쳐져 있었는데 군인 3~4인이 출렁다리로 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음. 가족 중에 6‧25때 참전했다가 행방불명이 된 사람이 있느냐는 물음이었음. 유해 발굴을 위한 조사라고 함. 출렁다리를 건너보고 사진도 몇 장 찍은 후 내려와 지로가 점심 먹을 집을 핸드폰으로 찾아보아 달리고 있는데, 중도에는 “설마교”라는 다리도 있었고, 그 근처에는 ‘다친 새들의 쉼터, 영국군전적비’도 있었다.

  법원리를 지나갈 때에는 “두루뫼박물관” 표지판도 보였는데, 그곳은 나와 같은 해(1962년)에 이화여대에 입학했던 김애영 씨가 관장으로 있는 곳으로, 나도 한번 성남문화원에서 내가 강의하던 고전강독반의 사람들 몇 명과 함께 찾아가서 대학교 다닐 때의 옛 추억을 서로 나누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 이후로도 같은 이화여대 출신의 최연수 씨, 손연자 씨, 정순자 씨, 연세대 문과대학장을 지낸 전인초 씨,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부천대학 교수를 지낸 閔忠煥 씨, 같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국제문예” 주간으로 있는 林武正 씨, 서울대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장을 지낸 林熒澤(임형택) 교수 등과 가끔 만나서 일잔하면서 환담을 하기도 했었다.

  김애영 씨의 말에 의하면 두루뫼는 자신의 남편인 소설가 강위수씨가 태어난 마을이름이었다고 하였다(경기도 장단군 장단면 동장리 주산동).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아들이 HP으로 검색해서 찾아간 맛집은 집으로 오는 도중 삼릉리에 있는 “능골 매운탕”집으로 들어가 ‘빠가사리 매운탕’에 참게를 넣어달라고 했다. 3시 이후에는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했는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2시 반쯤, 말하자면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셈인데, 오늘같은 날에도 손님들이 한 방 가득했다. 맛도 천하일품, ‘출렁다리’에 다녀오느라 한 30여 분 등산을 해서이기도 하고, 시간도 점심 먹을 시간이 넘어서인지 매운탕도 일품이었다.

  배를 두둑하게 불리고 나와 입구 쪽에 있는 커피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는 커피도 흔하디흔한 커피임에도 불구하고 그 맛은 시쳇말로 ‘짱’이었다.

  배불리 먹고 난 다음 서울을 향해 달리는 차창 밖으로는 ‘우리도 한번 잘 구어보세’ 라는, 아마도 고깃집인 듯싶은 간판도 보여서 배부른 사람으로 하여금 푸근한 웃음기를 머금게 해 주어서 그 또한 오늘 나들이의 엑스트라 역을 부족함이 없이 연출하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