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2.해암(海巖) 선생의 미수(米壽)를 축하드리며.hwp
…억년(憶年) 비정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유치환 시백(詩伯)의 「바위」다. 들으면 들을수록, 보면 볼수록 다시 다가서고 다가서고 하는 절창이다. 그러한 바위를 알고 나서부터는 늘 그 바위를 닮고 싶었다. 하지만, 나 같은 속인은 그 근처에도 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바위’를 닮은 딱 한 사람을 알고 있다.
그분은 바위 그 자체다. 그래서 호도 송암(松巖)이요, 해암(海巖)이다. 그런데 海巖 선생을 알고부터는 바위의 성분은 그저 ‘억년 함묵’으로만 되어 있지가 않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 속에는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것은 바로 ‘정(情)’이었다. 情으로 뭉친 巖은 단순한 바위를 넘어선다. 情은 눈으로는 볼 수가 없는 것이지만,‘너와 나’를 ‘너와 나’인 채로 지내게 놓아두지 않고, 말 한 마디 없이도‘우리’로 묶어주는 힘이 있는 물건이다. 海巖 선생에게는 그러한 情이 숨어 있었다. 그것이 이제까지 내가 겪어온 海巖 선생이었다.
‘오우회(五友會)’에서 만났던 海巖 선생, 건강 때문에 좀더 오래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세상사 어느 하나 범접할 수 없을 듯한 海巖 선생을 어느 날 부천(富川)의 같은 동인(同人) 중 한 사람의 자녀와 관련된 경사(慶事)에서 만난 적이 있다.
바위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나 거북이는 술고래다. 토끼에게 속은 다음부터 얼마나 화가 나던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마시고, 마시고, 마시고…, 그래서 용궁의 술은 동이 났다. 해서 요즘엔 인간세(人間世)로 나와서 술을 마신다.
내 가장 커다란 소원 한 가지, 그건 海巖 선생과 일잔하는 일이다. 그러나 참아야했다. 국어사전을 이것저것 다 뒤져도 ‘주암(酒巖)’이란 말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피로연(披露宴)에서 海巖 선생은 술병을 찾으시더니 내게 일잔을 따르신다. 감지덕지한 거북이도 선생께 일잔을 따르는 답례를 했다. 선생은 그 술을 반 잔이 넘게 드셨다. 그게 바로 海巖 선생의 情이었다. 해서 그날 거북이는 인간세의 술 중에서 가장 맛있는 정주(情酒)를 맛보았다. 그 술은 어떤 술보다도 맛이 있었다. 언제 또 海巖 선생과 함께 인간세 최고의 맛있는 情酒를 마셔볼 수 있을까?
남은 한 마디, 海巖 선생의 미수(米壽), 미수(美壽)를 축하드린다.
기해(己亥)년 재양(載陽)에. 광거(廣居) 이 웅 재(李雄宰)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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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해암(海巖) 선생의 미수(米壽)를 축하드리며(이웅재)
보낸사람LeeBeomChan <ichan3737@hanmail.net> 19.04.22 22:14
고맙습니다. 그렇게 무게있는 글을 보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역시 토끼를 이긴 거북이의 저력이라니...
언젠가 정주를 나눌 날이 돌아오겠지요. 한 자도 손대지 않고 그대로 확정하겠습니다.
거듭 감사의 뜻을 올립니다. 해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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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찬 선생 약력
1933년 여주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수료(법학석사)
동국대학교 대학원(법학박사)
이화여자대학교 법정대학 교수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한국상사법학회 회장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일본)나도야경제다학 교수 역임
「수필문학」으로 등단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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