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문화 체험기(3)

9. 궁중음식을 먹고 자금성을 구경하다

거북이3 2020. 1. 3. 13:10


9. 궁중음식을 먹고 자금성을 구경하다.hwp


      9. 궁중음식을 먹고 자금성을 구경하다

                                                                                                                                    이 웅 재

 

  황릉을 구경하고 다시 왕성 구경을 하는 중간에 점심을 먹어야 하는 스케쥴이다 보니, 먹는 것도 거기에 걸맞은 음식이라야 할 것 같아서인지, 우리 가이드님이 선택한 곳은 마지막 황제의 상궁이 차렸다는 궁중음식점 호이콴(Hoi Quan) 식당이었다. 식당가로 접어들어 조금 넓은 골목 같은 길을 한참 걸어들어가니 넓은 터에 자리잡은 식당이 나타났다. 분위기는 그만이었지만, 가이드의 말로는 옛날의 궁중음식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였다.

  나는 궁중음식이라는 말에, 내 초등학교 동창이 운영하고 있는 수서역 근처의 필경재(必敬齋)”가 생각났다. 광평대군(廣平大君) 묘역에 성종 때 건립된 필경재는 궁중음식점이 되기 전에는 초등학교 동창들이 가서 고기도 구워먹고 재미있게 지내던 곳이었는데, 음식점이 되고나서부터는 두세 번인가밖에는 찾아가 보지를 못하였다. 워낙 가격이 비싼 때문이었다. 주말의 경우에는 제일 싼 음식이라도 1인당 10만 원 이상이었다. 그런데도 손님은 언제나 북적대고 있었다. 방마다 조선조의 유명인들이나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이름난 분들의 글씨나 그림이 게시되어 있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고급스러워서인지, 특히 외교 관계의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된 곳이다.

  “호이콴 식당은 그곳에 비하면 모든 게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다. 하지만 건물 주위의 분위기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멋있는 조각품들도 많았고, 사두오이나 수련, 노니나무 등 꽃나무도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나는 식당 바로 입구에 있는 난초가 예뻐서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무슨 꽃나무냐고 묻기에 무심결에 내 별명을 붙인거북이 난초라고 말해 버렸다. 나중에 알아본 바로는 스파토글로티스였다.

  음식이 차려지기 전 바나나를 가져다주기도 하였는데, 우리 베트콩 포탄 파편을 몸에 늘 직니고 다니시는 한 선생께서 옛날 생각을 하고 먹어보려 하는 것을 눈치코치 없이 그만 이자야 국장이 낼름해 버렸다. 그래서 바나나, 바나나!”소리가 식당 안에 울려 퍼지게 되었다. 다행히 당시에는 우리 팀밖에는 손님들이 없어서 괜찮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들었더라면바나나전쟁이라도 일어났나 싶었을 것이다. 다행히 조금 있다가 종업원이 바나나를 가져왔고 그것을 이 국장이 한 선생에게 전하면서 하는 말에 전쟁은 종식이 되었고 모든 사람들은 파안대소를 했다. 이자야 국장이 한 말은 바로 이자(利子)!”였다. 그렇게 저렇게 궁중음식으로 황제처럼 배를 채웠지만, 뜨득황제여, 우리들에게는 별로로소이다!’하기야 세종대왕님께서도 그 흔해빠진아이스크림한 번 못 들어보셨지 않았나 생각하면, 그게 다 팔자소관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이었다.

  이어서 왕도의 황성 방문, 황궁 안내는 따로 현지 해설사가 나와서 해 주었다. 베트남에서 제일 높은 깃발탑이라는 금성홍기(金星紅旗)가 펄럭이는 탑이 보이는 곳에서 해설사를 만났는데, 한국에서도 생활을 해 보았다는 그는 유머 감각이 탁월했다. 한국에서는 갈비 등을 아주 실컷 잘 먹었다고 자랑을 하면서,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동성제약만 잘 살게 해 주었다고 하여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차진 밥 때문에 변비로 고생하느라고 정로환만 계속 사 먹었다는 말이었다.

  요새는 한국 관광객들 때문에 다낭 사람들이 먹고사는 편이지만, 반대로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을 많이 도와주기도 한다고 했다. 돼지코가 많은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으로 의료관광을 많이 간다고 하면서, 돼지코 수술을 하면, 쌍거풀 수술은 덤으로 해 주어서 매우 땡큐라고도 했다.

  그는 처음 우리를 만나자마자 말했다.

  “여기가 어디에요?”

  “황궁이요.”

  “여기는 나무 밑이잖아요?”

  “오늘 저녁에는 태국과 축구가 있어요. 여러분도 응원해요.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일본놈들은 반드시 이겨야 해요. 우리는 태국을 꼭 이겨야 해요.”

  왕도는 150만 평. 해자(垓字)로 둘러싼 외성을 거쳐, 내성인 황성(皇城), 그리고 왕의 거주 공간인 자금성(紫禁城 Tu Cam thành)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내부의 건축물들도 중국 지금성의 이름과 같은 이름들로 불려진다면서, 자금성을 보고 만든 곳이라고 했다.

  “짝퉁 아냐, 신상, 신제품이야.”

  “나는 행복합니다. 누구 덕분? 마누라 덕분.”

  그러더니 다짜고짜 이명재 교수님을 보고 물었다.

  “누구 때문?”

  “마누라 때문.”

  “그래서 이렇게 말랐구나.”

하더니, 잽싸게 도망을 가기도 했다.

  “건물은 100여 채. 저 안에서는 기념품도 팝니다.”

하며 부채를 펴 보이더니, 말한다.

  “이거 사. 그러면 부채도 쓰고 바가지도 씁니다.”

  거기서 우리는 전동카를 타고 이동을 했다. 궁성의 남문인 오문(午門)에는 정면에 셋, 양쪽 누각 아래로 둘, 모두 5개의 출입문이 있었다. 중앙문은 황제만 사용할 수 있었고, 양쪽 문은 만조백관들이, 그리고 맨 바깥의 문은 병사들이나 코끼리 말 등이 드나들었다 한다.

  왕의 근무처인 "태화전(太和殿)"이 정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후에 황성의 정전이며, 국사를 논의하는 곳이다. 태화전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며 모자를 벗어야 했다.

  태화전 바로 뒤에는 황제의 집무실인 근정전(勤政殿)이 있던 자리였다. 외성의 내부에는 왕과 가족들이 기거했던 왕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생활공간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황릉을 본 다음이라서 그런지, 여기에도 드무가 있구나 하는 생각 정도를 했을 뿐 왕도에 대한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20.1.2.15)

 

 

 

 


9. 궁중음식을 먹고 자금성을 구경하다.hwp
0.03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