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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치다

거북이3 2006. 2. 8. 21:44
 

나는 길치다

                                                               이   웅   재 


 나는 삼치다. 마어(麻魚), 망어(亡魚) 등으로도 불리는 고등어과에 속하는 등 푸른 생선의 삼치라는 말이 아니다. ‘삼치’의 ‘삼’의 어원적 의미는 등[背], ‘마어’, ‘망어’의 ‘마(망)’는 ‘푸르다’라는 뜻, 그래서 삼치는 ‘등 푸른 생선’이란 것인데, 치매․ 고혈압에 좋은 생선이란다. 소위 ‘웰빙 식품’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삼치’와 ‘참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똑같은 고등어과에 속하는 등 푸른 생선이기에 더욱 그렇다. 생김새가 약간 다르다고는 하지만, 전문가도 아닌 내가 그걸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참치를 좋아하는 여성은 마음씨가 곱다는 말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싶을 뿐이다.

 나는, 물고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삼치다. 그건 바로 음치, 길치, 색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노래방에만 가면 주눅 드는 남자’라는 글까지 썼으니 ‘음치’에 대한 얘기는 생략한다. ‘색(色)치’란 얼핏 이상스런 느낌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빛깔에 대한 감각이 형편없다는 것이니, 따진다면 나는 음악이나 미술 쪽에는 문외한이라는 말이다.

 ‘나는 삼치다’에서 2치에 대해서는 간략하나마 언급을 했으니, 남은 건 하나, ‘길치’뿐이다. 그래, 이제 ‘길치’에 관해 얘기해 보자.

 나는 길치다. ‘길눈이 어둡다’는 말이 있는데, 어두운 정도를 넘어선 것이  ‘치(癡)’이다. 길치들의 특징은 첫째 방향감각이 제로이다. 지금도 나는, 지하철에서 밖으로 나와서 한 동안은 어리둥절,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癡’자는 ‘병적인[疒] 의심[疑]’을 가리킨다. 여길 보고 저길 보아도 의문투성이,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다.

 길치들의 또 다른 특징은 밤이면 더욱 ‘치’의 특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아래에서건, 칠흑같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건, 낯선 곳의 밤길은 차라리 두렵기까지 하다.

 ‘癡’자는 약자로 ‘痴’를 쓰기도 한다. ‘疒’ 속의 글자는 ‘疑’와 ‘知’이다.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는 글자가 쓰인 것이다. 아마그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어쨌든 길치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의심하면서도[疑]  아는 체한다[知]’는 점이다.

 모르면 물어보는 것이 가장 문제 해결의 빠른 방법일 텐데도, 그들은 묻기를 싫어한다. 나름대로 유추하기만을 좋아한다. ‘아마 다음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내가 찾으려는 목표지점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곤 그대로 가상 목표지점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아니다. 다시 새로운 추리가 시작되지만, 한번 삐끗한 방향은 추리가 거듭될수록 점점 틀어져갈 수밖에는 없다. 그래서 완전히 미망(迷妄) 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만다.

 ‘치’면 ‘치’다워야 한다. ‘치’를 인정하고 ‘치’로서의 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유난히 약속 시간에 일찍 나오는 사람, 그들 중의 일부는 분명 ‘치’이다. ‘치’이니까 일찍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 ‘치’를 인정하기 싫어서 약속된 장소로 나가는 데까지의 시간을 정밀하게 계산한다. 그리고는 그 계산된 시간에 맞춰 나간다. 하지만, ‘치’인 걸 어찌하랴? ‘여긴가 저긴가’ 하다가 보면 계산된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리고, 결국 ‘치’의 전매특허인 ‘지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출퇴근이나 집 근처의 백화점, 대형 Mart 등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자가용을 끌고 다니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길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은 말한다. 주차하기가 힘들어서 그런다고. 아니면, 도로정체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고. 때로는 매연으로 인한 공해 발생운운하는 ‘기특한 생각’을 그 이유로 내세우기도 한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으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은 나라’를 들먹인다. 하지만, 그것들은 다 핑계일 뿐이다.

 그들이 자가용을 끌고 나오지 않는 가장 주된 이유는 ‘길치’이기 때문이다. 그냥 다녀도 길치인데, 자동차는 속도가 있잖은가? 자동차의 그 빠른 속도는 더욱더 그 ‘치’의 ‘끼’를 발휘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길치들은 옆 좌석에 마누라를 태우고 다니기를 좋아한다. 원래 그 자리는 조수석. 그러니까 마누라를 조수로 써 먹겠다는 의도이리라. 대개 부부 중 한 사람이 길치이면 다른 한 사람은 그와 정반대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가끔 뻔한 길도 모르느냐는 퉁바리를 받으면서도 옆자리에 마누라를 태우는 것이다. 길라잡이 노릇 좀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가끔은 그 길라잡이 때문에 엉뚱한 길로 접어드는 일도 생긴다. 길은 잘 알지만, ‘좌회전, 우회전’ 구분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있는 까닭이다. 오른쪽으로 꺾어져야 할 길에서, ‘좌회전!’을 외쳐대니, 영판 다른 길로 들어서는 수밖에. 그러나 그럴 때 길치들은 유쾌하다. 늘 지청구만 들었는데, 이번엔 반대로 큰소리 한번 치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니? 당신은 좌회전 우회전도 몰라?”

 그런데 이젠, 그 신나는 큰소리도 한물갔다. 갑자기 마누라가 좌회전 우회전에 통달했다는 것인가? 아니, 그런 게 아니다. 그것은 바로 막내아들 때문이다. 얼마 전 막내가 길치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라면서 내비게이션을 사다 달아준 것이다. 그놈이 가라는 대로만 가면 신통하게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목적지엔 도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좌회전, 우회전해요!’ 하는 마누라의 명령을 들을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인생살이에서도 이와 같이 삶의 방향을 안내해 주는 길라잡이가 있었으면…’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일까? 가끔은 마누라의 그 퉁바리가 듣고 싶어질 때가 있지 않은가? 기계의 지시가 아닌, 사람의 퉁바리가 그리워지는 걸 보면, 나는 내비게이션을 달기 이전의 길치이었을 때가 그리운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