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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 그 느긋한 시간

거북이3 2006. 2. 11. 09:15
 

        토요일 아침 ― 그 느긋한 시간

                                                           이   웅   재


 토요일 아침이다. 이 시간은 언제나 느긋하다. 사방이 희끄무레 밝아오기 시작하지만, 누구 하나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척이 없다. 물론 잠에서는 깨어나 있으면서도 말이다. 한 마디로 뜸을 들이는 것이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도 선뜻 일어나지를 않는다. 뜸을 들이는 그 여유로운 맛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거다.

 네 식구가 모두 토요일이면 집에서 쉰다. 나는 원래 토요일엔 수업이 없는데다가 요즈음은 더욱이 방학 때이다. 마음 놓고 게으름을 피워도 되는 시기인 것이다. 맏아들이 다니는 직장도 토요일엔 휴무다. 둘째 놈도 한방병원 근무를 끝내고 며칠 있으면 군대에 나가야 되는 처지라서 집에 와서 쉬고 있다. 아내는 전업 주부, 아, 그래도 오늘 제일 바쁜 사람은 아내가 된다. 아내는 인근에 있는 문화정보센터의 수영교실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7시가 되자 아내의 핸드폰 모닝콜 소리가 사방의 정적을 허물어뜨리면서 울린다. 그에 따라 스멀스멀 공기의 입자들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스스 아내가 잠자리에서 빠져 나간다. 주방 쪽의 전등이 켜지고 이어서 ‘드르르륵!’ 현관문이 열린다. 신문을 가져오기 위해서다. 아내는 아침밥을 지으면서 대충대충 신문을 훑어보는 것이 버릇이다.

 나도 신문을 보고 싶어서 눈을 부비고 일어났다. 이제는 거실의 전등이 켜진다. 컴퓨터의 전원을 켜 놓고 신문을 읽는다. 토요일의 신문은 다른 날보다는 면수가 적긴 하지만, 그래도 40면이다. 40×2×2=160, 책 크기로 환산해 본 수치다. 우리집은 두 가지 종류의 신문을 보고 있으니, 160p짜리 책 두 권에 해당하는 분량을 읽어야 하는 셈이다. 적지 않은 시간을 신문 읽기에 투자해야 하지만, 이 시간만큼은 모든 잡념에서 해방되어 오로지 신문 기사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다.

 전기밥솥이 아침밥을 다 지은 모양이다. 아내가 신문을 밀치고 주방으로 간다. 주섬주섬 밥상 차리는 소리가 정겹다. 하지만 아들놈들은 그 소릴 들었을 텐데도 잠자리에서 일어나질 않는다.

 “아침 먹을 사람~~.”

 아내가 소리를 쳐 보지만 어느 방에서고 대답은 없다. 일껏 차린 아침밥상, 보기가 미안해서 내가 말한다.

 “나~~.”

 그렇게 두 사람이, 먹는 흉내만 낼 정도로 소식을 한다. 그리곤 해즐넛 향을 음미하면서 커피를 마신다. 그럭저럭 시계는 8시를 향해 바삐 시침을 운행하고 있다. 아내는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수영을 같이 다니는 이웃 동의 아줌마다.

 “지금 나갈게.”

 전화를 끊고, 컵에서 커피가 바닥이 나면, 아내는 집을 나선다. 그러면 다시 사방은 조용하다. 나는 컴퓨터 앞으로 간다. 인터넷으로 들어가 내가 가입해 있는 카페 몇 곳을 들른다. 반가운 ID의 글을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하루가 즐겁게 지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고 느껴져서 몇 군데 댓글을 남기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글쓰기를 클릭하여 새로운 글을 등록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하루를 점친다. 바로 DX ball을 가지고. DX ball, 그건 벽돌 깨기  게임이다. 젊은이들은 DX ball과 같은 구닥다리 게임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걸 무척 즐긴다. 그건 순발력을 기르는 데 효과적이어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게임 한 판을 온전히 마칠 수 있으면, 그날은 무슨 일이든지 다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정 짓는 버릇이 있다. 단점이라면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해야 된다는 점일 것이다.

 오늘은 매사가 잘 풀려나갈 것 같다. 벽돌 깨기를 끝까지 잘 행했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베란다에 있는 화초들을 만나봐야겠다.  수요일과 토요일 아니면 일요일,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 물을 주는데, 오늘은 기분도 좋고 하니 마음껏 여유로움을 즐기면서 놈들에게 시원스레 물을 주기로 하자.

 몇 십 년 키운 고무나무와 야자수는 너무 키가 커서 천정에 닿은 후엔 아래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시간 봐서 좀 잘라주어야겠는데, 야자수도 잘라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종려나무는 꼭 알맞은 키, 무화과는 꽃을 피우지 않는 놈이긴 하지만, 열매라도 맺었으면 싶은데, 우리집으로 온 후 한 번도 열매를 맺지 않는다. 하긴 능소화도 여태 꽃을 피우지 않고 있어서 야속하게 느껴진다. 수국은 어쩌다 한 번씩 소담스런 꽃을 선보일 적이 있다. 요새는 새시 문을 꽉 닫아주어서 그런지 아제리아란 놈이 철도 모르고 붉은 꽃을 피우고 있다.

 소철도 그 잎이 너무 웃자라 있고, 그 옆의 관음죽은  아무래도 포기 나눔을 해 주어야 할 정도로 무성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귤나무며 오렌지, 감나무, 모과 등은 먹고 난 다음 그 씨를 심어서 자란 놈들이라 모두가 내 자식 같아 애착이 가는 놈들이고, 로즈마리를 비롯한 몇 가지 종류의 허브들도 향기 좀 뽐낼 수 있게 건드려 달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서 고맙다.

 얼마 전에 사다 놓은 팔손이, 그리고 아내가 농촌지도소에서 분양받아 가지고 온 천량금, 그리고 어렵게 구해다 놓았던 둥근바위솔, 끈끈이주걱 비슷한 식충(食蟲) 식물도 아직까지는 별 탈 없이 자라고 있어 다행스럽다. 지난 여름에 한 생구(生口)가 된 빛깔이 특이한 바이올렛도, 지금은 자줏빛 꽃을 떨구고 동면으로 들어간 듯하다.

 아,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릴 뻔했다. 그것은 화분들 사이사이에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과실주 술독들이다. 무엇보다도 토요일 오전을 느긋하게 해 주는 것들은 바로 그것인데, 막상 그들을 말하려다 보니 내 식구 자랑하는 불출이 되는 듯싶어 여기까지 에둘러 왔다. 내 과실주 술독들이여, 반갑고도 고맙도다. 우리 아무리 바쁜 생활을 하고 지내더라도 짬을 내어 즐겁고도 기쁘게 서로가 서로를 마셔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