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참새잡이의 추억

거북이3 2006. 4. 5. 11:32
 

           참새잡이의 추억

                                                                                      이  웅  재

 새 중에서 우리 한국인과 가장 가까운 새는 아마도 참새일 것이다. 까치도 서조(瑞鳥)라 하여 좋아는 하고 있지만, 참새만큼 친근한 새라고 하기는 힘들다. 어쩌면 까치는 귀족적인 느낌을 가져다주고 있는 데 반해 참새는 서민적인 느낌을 주는 새라서 더욱 가까이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참새는 우리의 미각을 자극해 주지만, 까치는 원칙적으로 먹는 새가 아니라는 점도 참새를 더 가까이 하게 만드는 요인일 것이다. ‘먹는다’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우리 몸의 영양소가 되는 일이기에, 우리에게 어떤 일체감을 형성시켜 줄 수가 있다는 말이다. 더구나 참새는 우리의 손아귀에 쏘옥 들어와 그 포근하고 따뜻함으로써 우리들 인식에 친근미라는 고정관념을 심어 놓았지만, 까치는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우리와 가까이 하는 일은 별로 없는 것이다.

 참새, 그놈은, 짹짹짹 짹짹…, 그 수다스러움 때문에 특히 여성과 밀접한 이미지를 가져다주고 있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놈의 ‘맛’에 뿅 가기를 잘한다. 포장마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안주 참새구이. 고소하면서도 산뜻한 감칠맛. 어쩌면 ‘포로롱’ 날아갈 때의 그 아쉬움을 자연스레 붙잡아 놓은 그 맛에, 쓴 소주잔이 연신 비워지게 되는 것이다. 요즘 와서는 메추리가 그 대타로 등장하여 총애를 받고 있으니, 참새들이 통곡할 일이다. 아니, 아니지, 참새들이 거족적으로(?) 환영해야만 할 일이렷다?

 코흘리개 시절엔 그놈의 참새 좀 잡아 보았으면…, 하는 것이 평범한 어린애들 모두의 소원이었다. 나도 그 ‘평범한 어린애들’에 속했었다. 그래서 참새잡이에 나섰는데…. 그 방법은 대략 네 가지 정도가 있었다.

 첫 번째 방법은 새총으로 잡는 방법이다. 새총, 그것은 사실 참새를 잡기 위한 총이다. 새총으로 독수리를 잡는다든가 까치, 까마귀를 잡겠다고 나서는 사람을 나는 보질 못했다. 그러니까 ‘새총’이라고 할 때의 ‘새’는 ‘참새’임에 틀림이 없다. 참새님들이여, 자존심을 가져라. 모든 새를 대표한다는 점, 어찌 어깨가 으쓱해지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 새총으로 참새를 잡는 일에는 매우 서투르다. 앞마당의 나뭇가지 등 목표물을 정해 놓고 맹연습을 해 보지만, 늘 허탕이다. 허탕으로 끝나면 그래도 다행, 어찌된 영문인지 겨냥하지도 않았던 앞집 들창문의 유리를 깨뜨려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그 새총으로 참새를 쏘아 잡는 일은 ‘잔인한 행위’로 매도해 버리기로 하여, 나의 참새 잡는 방법 중에서 제일 먼저 퇴출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두 번째 방법. 그것은 삼태기의 한 쪽을 막대기로 버텨 놓고, 그 안쪽에다가 낟알을 뿌려놓고 기다리는 방법이었다. 물론 그 막대기는 끈으로 묶여져 한 쪽 끝이 내 손에 쥐어져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렇다. 그건 인내심만으로도 안 되었다. 약아빠진 참새는,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재빨리 낟알들을 먹어치우곤 약이라도 올리는 듯이 ‘포로롱’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두 번째 방법도 포기해 버렸다.

 세 번째 방법. 그건 가장 전통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앞의 두 가지 방법은 대낮에 참새를 잡는 방법이었는데, 사실 약삭빠른 참새를 대낮에 잡는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세 번째 방법은 날이 저문 다음에 잡는 방법이었다.

 이건 조금 나이가 든 헝아들을 꼬드겨야 한다. 그 헝아들 어깨 위에 무등을 타고 초가집 처마 밑의 구멍을 뒤지는 것이다. 이때는 팔을 쓰윽 집어넣었을 때의 느낌이 중요하다. 섬뜩한 느낌, 그것은 구멍 속에 그 집을 지켜주는 업구렁이가 있다는 의미였다. 차가운 느낌이 아닌 따뜻한 느낌이라야 하는데, 그것도 두 가지였다. 손끝에 오물오물하는 것이 닿는 촉감이면, 그것은 알쥐, 곧 털 없는 쥐였다. 그러니까 따뜻하면서도 폭실폭실한 촉감이라야 고놈이 바로 손끝에 느껴지는 참새의 맛이었다. 참새란 놈은 그렇게 내게는 따뜻한 존재로 기억되고 있었다.

 네 번째 방법. 사실 이 방법이 가장 손쉬우면서도 가장 많은 참새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단지 이 방법은 참새가 많은 곳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참새들이 밤잠을 자는 가로수, 예전에는 보통 플라타너스였다. 거기에 플래시를 가지고 기어오른다. 이때 중요한 것은 벌거벗어야 한다는 점이다. 옷을 입고 있으면 그 옷 빛깔 때문에 참새들이 눈치채 버리고 마는 것이다. 벌거벗고 살금살금 나무 위로 올라가 사방을 바라보면, 아아, 플라타너스의 열매가 달려 있듯 참새들이 달려 있는 것이다. 거기에 갑자기 플래시를 켜면서 들이댄다. 놈들은 그 갑작스런 불빛에 넋을 잃고 꼼짝을 못 한다. 그때 여유롭게 참새들을 ‘따면’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밑에서는 맥고모자를 뒤집어 들고 위쪽을 향하고 있고, 나무에서 ‘딴’ 참새들은 그곳으로 던져져야 하는데, 그냥 던지면 놈들, 참새의 명성에 걸맞게 ‘포로롱’ 정신 차려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래서 놈의 ‘뫼가지’를 180°로 비틀어서 던져야 하는 것이다. 엄마야, 난 그 짓 못 해!


 결국, 나는 세 번째 방법이나 가끔 써 먹었을 뿐이다. 참새님들, 이쯤 되면 나를 용서해 줄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