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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의 낙조

거북이3 2006. 4. 10. 11:25
 

          홍도의 낙조

                                                                                           이     웅     재

 이글거리는 태양, 뫼르소는 그래서 살인을 했다던가? 연일 찜통이었다. 한 줄기 소나기라도 쏟아졌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그런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 나날이었다. 날씨만큼이나 짜증스런 경제 불황, 하지만 정치인들은 밤낮 서로 싸우기에만 열을 올리는 바람에, 대한민국의 지열(地熱)은 더욱 치솟기만 했다. 해서 어디로든 도피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젖었다.

 7월 27일, 06:00. 홍도로 가기 위해 이른 시간에 기상하다.

 뜸까지 들이고 일어나야 하는 내 늦잠 벽(癖)으로 보아서는 기록적인 조조(早朝) 기상이었다. 몇 번의 환승을 한 끝에 약속장소인 용산역으로 가서 08:35 발 목포행 고속열차에 올랐다. 처음 타 보는 고속열차였다. 최고 시속 320km에 도전한다는 KTX, 그러나 명성에 비해서, 그리고 요금에 비해서, 특별히 안락한 느낌은 없었다.

 목적지인 목포에 닿은 시간은 11:15. 한문으로 씌어진 “湖南線 終着驛”, 허형만 시인의 시비가 눈에 확 들어온다.

 “목포여 강철로 된 날개여….”

 반가웠다. 역 구내에서 시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드디어 홍도행 여객선에 오르다. 368t급 뉴골드스타 ,정원 396명 ,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13:40 뚜우 뚜우 뚜우 3번 뱃고동을 울리고 출발한 배는 몇 군데 섬에 잠깐씩 정박한 후 계속 항진한다.

 배가 지나가는 좌우로는 조그만 섬들이 계속 나타났는데, 무인도일까, 나무조차 별로 없는 돌섬들이 대부분이었다. 눈요기라도 하게 만들어주는 돌섬들을 지나자 망망대해. 계속되는 푸른 바닷물만 보자니까 지루해져 슬그머니 졸음이 몰려와서 한잠 자려고 하다보니, 어느덧 홍도였다. 시간은 16:15.

 접안시설에서부터 양쪽으로 늘어선 횟집들. 그리고 그 끝에 오랜 세월 동안의 풍상에 씻기고 갈린, 크고 작은 몽돌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 수줍은 듯 관광객들을 반긴다. 그 해수욕장을 끼고 또 횟집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섬으로 가는 길은 철책으로 이루어진 경사진 오름길이었다. 홍도에는 자동차가 없다. 워낙 작은 섬이기도 하지만,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좁고 경사가 심해 자동차가 다닐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3륜차가 4륜차를 대신한다. 그러다 보니 모든 면에서 문명화란 면에서는 뒤처진 듯한 느낌, 그래서일까, 처음 만나본 홍도는 ‘별로’였다.

 경사길을 오르니 좁기는 하지만 비교적 평평한 지대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60년대 서울의 달동네처럼 이리저리 갈라져 있는 꼬불꼬불한 좁은 길 양옆으로, 크고 작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은 채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그 대부분은 횟집이거나 음식점, 그리고 모텔이나 여관 등이었다.

 숙소는 모텔 대한장이었는데, 150여 명이나 묵게 된다는 여관의 방은 사방 1장(丈) 정도, 말하자면 고승의 거처인 방장(方丈)이라고나 할까? 12인치 T․V인지 채널도 3~4개밖에는 없는 손바닥만한 T․V가 한 대 있을 뿐이었다. 시쳇말로 후져도 보통 후진 곳이 아니었다. 그나마 방마다 에어컨이 있어서 불행 중 다행이었다. 잘 도착했노라고 집에다 전화를 걸어준 후, 마을 구경에 나섰다.

 마을 전체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돌산의 산골짜기쯤에 마을 하나가 들어서 있는 것 같은 모습, 별 볼 것도 없고 해서 몽돌해수욕장 쪽으로 갔다. 거기 어느 횟집의 야외 평상에서 석식을 겸해 우럭회를 시켜 놓고 일잔을 하고 있는데, 해가 막 떨어지고 있었다.

 ‘낙조’란 어느 곳에서 보아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아련한 아픔이 있다. 그것은 ‘일출’의 모습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점이다. 일출에서는 ‘희망․환희’를 공감하지만, 일몰에서는 황홀하면서도 애타는 ‘아림․쓰라림’을 느끼게 된다.

 아리고 쓰린 것, 그것은 우리 민족의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정서 중의 하나가 아닐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이라는 ‘아리랑’의 노랫가락은 바로 그러한 우리 민족의 정서를 무엇보다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일례가 아닐까? ‘아리랑’의 어원을 제멋대로 해석하다 보니 결국에 가서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다’는 쪽으로 두루뭉술하게 지나쳐 버리는 게 학계의 현금의 작태인데, 그것은 분명 ‘아리다․쓰리다’와 관련된 말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리고 쓰린 심정, 우리 선조들은 그 허구많은 아리고 쓰림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리랑의 가락에서는 한편 흥겨움이 넘쳐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건 바로 ‘낙조’를 바라볼 때의 느낌과 일맥상통한다. 아리고 쓰리면서도, 황홀하게 느껴지는 것, 그것은 어쩌면 한 밤이 지난 뒤의 새로운 일출의 ‘희망․환희’로 이어질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인지?

 생각이 너무 심각해지는 것 같아 주인아줌마에게 한 마디 건넸다.

 “아줌마, 저거 이 집 해 맞지요?”

 “예? 예에.”

 “그럼, 꼭 잡아매요.”

 아줌마가 가게로 들어간다. 떨어지는 해를 잡아매기 위한 노끈을 가지로 들어갔나?

 떨어지는 해는 왼쪽 산과 오른쪽 바위 사이로 접어든다. 바위의 모습은 누워 있는 물고기가 입을 벌리고 있는 듯. 해는 바야흐로 그 입 속으로 마악 떨어지려 하고 있다.

 “아줌마! 빨리, 빨리, 저거 붙들어 매요.”

 누군가 옆에서 거든다.

 “해란 놈, 참 그림도 잘 그려요.”

 색깔 합성의 기술은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나지 않은가! 이제까지는 붉은 색이 승했는데, 차츰 검은색을 더욱 많이 풀어 넣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앞쪽에 보이는 경치가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줌마가 커피를 날라 온다. 낙조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맛 또한 일품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진다는 낙조를 감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