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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잘못

거북이3 2006. 4. 12. 09:31
 

    더 큰 잘못

                                            이   웅   재

 금강산 호텔 앞 금강원에서 한정식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금강원은 북한에서 직접 운영하는 고급 식당으로 소나무와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었다. 양철지붕의 주방이나 창고쯤으로 보이는 건물은 소나무 두 그루가 건물 한가운데로 솟아 있었다. 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살리면서 건물을 지은 것에 살가운 마음씨가 느껴져 왈칵 친근미가 들었다.

 식당 앞쪽은 서너 개의 계단을 내려가야 되는데, 계단 옆쪽으로는 시멘트가 깨어졌던지 새로 덧발라 양생(養生) 중이었다. 거기 초등학교 상급반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나무지팡이를 가지고 낙서를 하고 있었는데, 부모는 그것을 대견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금강산엘 왔다 갔다는 기념으로 제 이름자를 쓴 듯했다. 낙서를 하는 아이도 문제였지만,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 부모가 얄미워 나는 K교수와 눈짓을 하고 골려주기로 했다. 해서 낙서를 한 곳으로 가서 낙서해 놓은 글씨를 보면서 말했다.

 “이거, 뭐라고 썼지?”

 “최… 아무개?”

 “어이구, 저런…. 그 더러운 이름이 영원히 남겠지?”


 나중, 아이는 제 이름자를 지팡이로 직직 그어 지워놓았다. H교수가 한 마디 했다.

 “잘못 하셨어요.”

 “왜?”

 “어린 아이가 무슨 생각이 있었겠어요? 그런데, 그런 아이 마음에 흠집을 내 주었잖아요?”

 그래, 그랬다. 낙서를 한 것은 잘못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아이보다도 더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그 아이의 마음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라도 남는다면…. 나는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려옴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