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겠지 영감
이 웅 재
어렸을 때 듣던 얘기다. 이웃 마을에 ‘되겠지 영감’이란 노인이 있었단다.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여 저녁거리가 없어도 무사태평, 하 답답한 마누라가 쌀독이 너무 깊어서 쌀이 보이지 않는다고 바가지를 긁을라치면, 기껏 한다는 소리가 ‘다 되겠지…’였단다. 그래서 별명이 되겠지 영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되겠지 영감’― 아무래도 그것은 지난 날 우리네 선비들의 주변머리 없는 일면을 보게 되는 것 같아 개운찮은 느낌을 갖게 해주는 얘기였다. 당장 벼락이 내리쳐도 마냥 여유를 지녀야 하는 이러한 ‘되겠지’식의 기대 ― 그래서 생긴 속담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라든가,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와 같은 것들일 터이다.
조윤제 박사는 한국 문학의 특성을 ‘은근과 끈기’라고 했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허생’의 주인공을 보면, 아내가 가난에 지친 나머지 글은 읽어서 무엇하느냐고 강짜를 부리면서, 공장이 노릇을 하든가, 장사치 노릇을 하든가, 아니면 하다못해 도둑질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윽박지르자, 책장을 덮으며 일어선 허생이 말한다.
"애석하도다. 내 애초에 10년을 글을 읽으려 했더니, 이제 겨우 7년밖에 되지 못했구나."
허생은 표연히 집을 나선다. 정말이지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학문하는 여가를 이용하여 쓴 수필류를 겸허하게 ‘만필’이니 ‘만록’이니 하는 이름을 붙쳐놓는 풍류스러운 멋도 이러한 여유스러움에서 생겨난다고 하겠다. 약간은 느릿느릿하지만, 너그러운 마음씨에서 우러나오는 토속적인 맛,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그 ‘옛날 옛적에……'하는 식의 여유로운 톤(tone)에서 느낄 수 있는 구수한 맛, 그것이 바로 한국적인 멋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급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시골길을 걷다가 들에서 일하는 늙수구레한 농부에게 길을 물으면 흔히, "글쎄, 한 10리쯤 될까요?"하는 식의 대답을 듣는다. 한참 가다가 다시 사람이 있어 길을 물으면, "그러니까 아마 가까운 10리라면 알맞을 거요"라고 한다. 성급한 사람에겐 도대체 시골 10리란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인지, 가도가도 끝이 없다는 생각에 은근히 화가 치밀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네 한국 사람들이 생활의 지침으로 삼아왔던 '안분'이라는 말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여유를 지니자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 정신적인 여유야말로 멋의 정수요, 물질문명에서 느끼는 각박한 생활에서부터 벗어나 학처럼 유유자적할 수 있는 마음의 풍요가 아니겠는가? ‘오유지족(吾唯知足)'을 상하좌우로 붙여 만든 글자 아닌 글자를 써서 걸어놓고 흐뭇해하는 심정이란, 도저히 시간관념에 투철하고, 네것내것에 민감하여 오래간만에 만난 고우와의 대면에서도 서로 자기 몫만의 차값만 지불하고 헤어져 버리는 서구식 인정과는 그 차원부터가 다른 것이 아닐까? 없어도 있는 체하는체병’ 환자는 곤란하지만, 있으면서도 엄살만 떠는 약삭빠른 졸부들도 문제는 문제라 하겠다.
다시 박지원의 ‘양반전’을 들춰 보자. 어떤 양반이 가난하여 관가의 환자를 타 먹은 지 여러 해를 거듭하다 보니 천 섬이나 되는 부채를 걸머지게 되었고, 어느 날 관찰사가 여러 고을을 순행하던 중, 그 사실이 발각되어 당장 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 소문을 들은 동네 부자 하나가 빚을 대신 갚아주고 양반 자격을 사기로 하였는데, 이를 알게 된 고을 태수가 미구에 생길 소송을 방지하기 위하여 증서를 만들어 주기에 이르렀다.
아래 윗니를 마주 부딪치어 똑똑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뒤통수를 퉁겨 코똥을 키잉하고 뀐다. 가는 기침이 날 때마다 가래침을 지근지근 씹어 넘기고, 털감투를 쓸 때면 소맷자락으로 그를 털어서 티끌 물결을 북신 일으키고, 세수할 때엔 주먹의 때를 비비지 말 것이며, 양치질을 하되 너무 지나치게 말 것이며, 여종을 부를 때엔 긴 목소리로 아무개야’ 하고, 걸음 걸을 때엔 느릿느릿 굽을 옮겨 신축을 딸딸 끌 것이다.
(이가원 역편 "이조 한문 소설선")
양반 계급에 대한 풍자적인 묘사가 더 계속되지만, 여기에선 ‘걸음 걸을 때엔 느릿느릿’ 걷는다는 표현만을 인용하겠다. 양반이라면 '사흘 굶어도 도둑질을 하면 못 쓰는'사람이요, '춥다고 해서 겻불을 쬘 수는 없는'사람이다. 군자는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대로행을 해야지, 땅을 내려다보며 웅숭그려서는 안 된다. 걸음도 갈之자 걸음으로 조금이라도 서두르는 기색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이에 비하면 너무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서 도덕이니 윤리 따위를 헌 짚신짝 내던지듯 하는 오늘날의 세태가 걱정스럽다. 짚신이나 고무신을 주로 신던 우리는, 뒷굽이 높아 앞으로의 전진형인 서구인들보다는 아무래도 느릿느릿한 성품이었는데, 어쩌다가 ‘빨리빨리’가 판을 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대 잇기'를 좋아하던 우리 민족이었다. 왕후의 몸으로서 소생이 없자 세자의 탄생을 위해 장희빈을 맞아들이게 했던 인현왕후와 같은 분들의, 그 남을 위하고 나라를 위할 줄 아는 미덕을 좀 배우자. 은근과 끈기라는 국문학의 전통을 소극적인 자세라고 멀리만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긍정적인 입장에서 받아들여 오늘을 사는 지혜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온고이지신’하는 슬기가 아니겠는가? 못 되면 조상탓만 하는 잘못된 버릇은 고쳐야 하겠다.
'되겠지 영감'식의 주변머리 없음이나, ‘미생지신’ 같은 무작정의 기다림, 체면만 차리려고 하는'체병(病)'같은 것이야 하루 빨리 없애야만 되겠다. 그러나'급하다고 바늘허리 매어 못 쓰는'것이요, '급히 먹는 밥이 체하는'법이다. 오늘이 중하다면, 오늘의 연속인 내일도 중한 것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시작된다. 서두르지 말고 차분한 마음으로 우리, 우리의 '되겠지 영감'에게 '안녕'이나 고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