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덕분에
이 웅 재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다. 명동 한복판을 걸어보라. 얼마나 많은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명동까지 나갈 필요도 없다. 그보다도 더욱 많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곳이 도처에 널려 있지 아니한가? 출근 시간의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옷깃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몸과 몸이 서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마구 부딪치는 판국이니, 그 인연, 일일이 챙겨볼 수조차 없다. 인연, 그것은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인생도처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이 아니라 ‘인생도처유인연(人生到處有因緣)’이라고나 할까?
불교에서는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을 인(因)이라 하고, 간접적인 원인을 연(緣)이라고 한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인연’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인연’이라고 여기게 만들어 주는 ‘결과’란 물론 ‘인연’을 느끼게 되는 사람에게 유의미한 것이라야만 그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말하자면 ‘인연’이란, ‘우연’으로 찾아와서 ‘필연’으로 맺어지는 것, 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의미망을 형성하는 관계라는 말이다.
초등학교 때 서울에서 전학 온 얼굴이 유난히 하얗던 소녀는, 짝꿍이 없이 외톨이로 홀로 앉아 있던 내 옆자리로 자리배정을 받아 한 동안 2인용 책상을 함께 사용했었다. 그 소녀는 내게 인연으로 작용했을까? 중학교 시절 만났던 계집애처럼 곱상하게 생기고 목소리도 꼭 여자 목소리를 지녔던 노래 잘 부르던 진영이는 어떤가? 영미라는 아이 때문에 한때 교회에도 열심히 나가기도 했었는데…. 고등학교 무렵 내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그 단발머리의 은영이는? 그녀는 나에 대한 관심이나 가졌었을까? 지금 나는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느 곳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들은 지금 내게 어떤 결과로서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나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일까?
우연하게 만나서 함께 살고 있는 아내는 지금도 늘 내 곁에 있다. 그러니 아내는 인연 중에서도 아주 깊은 인연을 지녔다고 할 수가 있다. 아내와 내가 결혼을 해서 함께 살게 된 때문에 내 아들딸들이 된 한아나 지로, 차로도 벗어날 수 없는 인연의 끈으로 맺어져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고 보면 인연 없는 가족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 하겠다. 가족뿐만 아니라, 같은 직장의 상사, 동료, 부하 등등의 사람들도 인연으로 묶여진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따지자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나와 인연의 끈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 것이다.
그러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초등학교 때의 그 소녀, 중학교 시절의 진영이나 영미, 고등학교 무렵의 은영이도 그 당시에는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아니었는가?
지나간 과거만의 문제만도 아닐 성싶다. 지금은 서로 살고 있는 곳조차 모른다 해도, 언제 어디서 또 다시 만나서 내 삶의 일부분에 변화를 가져다 줄 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따지고 본다면, 과거에건 현재에건 또 미래에건, 나와 관계를 지니는 사람들은 모두가 나와는 인연이 있는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인연이란 하나의 관계이다. 그리움으로 맺혀진 관계이든, 미워함으로 얼룩진 관계이든,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더라도 그것은 분명 관계의 역학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때에 따라서는 옷깃을 스치는 정도보다도 더욱 미미한 것으로부터, 어느 개인의 힘, 심지어는 국가라든가 국제연합 같은 나라와 나라의 결합체의 힘으로도 막아내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닌 관계의 에너지(energy), 그것이 인연이다. 그것은 넓고 넓은 광야에 이리저리 떠다니다가 떨어진 하나의 시과(翅果)와 같은 것. 그런 대로 시과를 받아주는 척박하지 않은 토양과 적당한 날씨, 그리고 풍족하지는 못하더라도 절대 부족이라고는 할 수 없는 수분이 있으면, 그 시과는 싹을 틔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인연이란 하나의 씨앗이다. 한 동안 적합한 환경을 만나지 못하여 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제게 맞는 환경을 만나게 되면 조심조심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어 나가고 잎을 펼쳐 무럭무럭 자라나다가 또 다른 인연을 만들 수 있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인도양, 대서양, 태평양도 그 시원은 산골짜기의 석간수(石澗水), 아니, 바위틈에서 똑똑 떨어지는 조그마한 술잔을 넘칠 만한 물방울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생긴 말이 남상(濫觴)이렷다? 인연이란 바로 그러한 꼬투리인 것이다.
초등학교 때의 그 얼굴이 하얗던 소녀, 중학교 시절의 곱상하고 목소리도 여자 같았던 진영이, 나로 하여금 교회를 열심히 다니게 만들었던 영미를 위시해서, 내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고등학교 무렵 단발머리의 은영이도 분명 내게는 소중한 인연이었던 것이다. 보잘것없는 내 삶의 터전에 뿌려졌던 귀한 씨앗들이었던 것이다.
오늘의 나는 바로 그런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 덕분에 존재하는 것, 평소에는 만날 수도 없고 심지어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머언 먼 곳의 사람들일지라도 나에게 인과 연의 관계를 통하여 내 삶을 이끌어 주고 규정지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도록 하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