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베트남 문화 체험기 8)
앙코르의 미소 바이욘 사원
이 웅 재
타프롬에서 나와 앙코르톰(Ankor Thom)으로 가는 버스에서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여기 씨엠립에는 극장이 하나도 없단다. 유일한 오락거리가 TV, 그런데 자체적으로 연속극을 제작할 능력이 아직 없기 때문에 한국의 연속극이 인기란다. 앞으로도 계속 연속극 제작 능력이 없기를 기대해 본다.
이곳에는 뽕나무가 많다고 했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누에치기를 권장했고 따라서 지금도 캄보디아의 실크는 알아준다고 했다. 특별한 자원이 없는 곳이다 보니 당시로서는 캄보디아인들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그런 일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천연자원이 없으면 인적 자원이라도 잘 활용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이곳의 교육수준은 한심하다고 할 정도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일과를 살펴보면, 오전에 2시간 공부하고 점심은 2시간 정도 집에 가서 먹고, 다시 학교에 가서 2시간 공부하면 끝이라고 했다. ‘교육입국’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하겠다.
여기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용변이 마려우면 숲속으로 들어가 일을 보는데, 뱀이나 지네가 많아서 그걸 피하겠다고 더욱 숲속으로 깊이 들어가다간 잘못하여 지뢰를 밟게 될 수도 있어 큰일이 난단다. 그런가 하면 이곳에선 뱀을 신성시하기 때문에 함부로 죽일 수도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가까이 할 수도 없는 것이 뱀이라서, 그 주택의 구조가 일층은 아주 낮은 쓸모 없는 공간으로 비워 두고 주 생활공간은 2층이며, 가옥의 정면을 제외한 3면엔 바나나 나무를 심는데, 그것은 뱀이 그 나무의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거대한 도시'라는 뜻의 앙코르톰은 앙코르 왕국의 마지막 수도였다고 한다. 외국과의 전쟁으로 앙코르와트가 상당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새로 건설한 것이 앙코르톰이라는 것이다. 이곳은 남문으로 들어갔다가 동문으로 나간다고 했는데, 남문으로 들어서자 해자로 보이는 곳에 다리가 있었고 다리의 양쪽 난간에는 좌우로 선신 54명, 악신 54명 도합 108명이 온갖 번뇌를 뒤집어쓴 채 엉버티고 있었다. 어떤 신은 팔다리가 없고 어떤 신은 목이 잘려나간 채 우유의 바다젓기 자세로 꼼짝 않고 우리 일행을 맞아 주었다.
좀더 들어가니 머리가 셋인 코끼리가 나타난다. 그것을 타고 있는 신은 인디라신 혹은 부처라고 하였다. 앙코르와트에는 힌두교적인 색채가 농후했는데 이쪽은 불교적인 냄새가 짙었다. 그것은 바로 앞에서도 말했듯이 원래 왕족이 아니었던 자야바르만 7세 때문이다. 그에게는 내세울 권위가 별로이다 보니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일이 무엇보다도 급선무, 그래서 소승 쪽의 힌두교보다는 대승 쪽의 불교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앙코르톰 정중앙에는 수미산을 상징하는 바이욘 사원(Bayon Temple)이 있었다. 왕의 방이란 뜻의 바이욘 사원 안에는 그 명칭에 걸맞게 왕과 왕족, 귀족, 승려들만이 살았고 일반 국민은 거주할 수가 없었으며, 가축이나 장애인은 전염병 등을 우려하여 아예 출입조차 금지되었었다고 한다.
바이욘 사원에는 지금은 많이 유실되어 37개만 남았지만, 원래는 관음보살상 또는 왕을 상징하는 4면불 54개, 그러니까 모두 216개의 불상이 있었단다. 처음 볼 때에는 그 크기에 섬뜩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노라면 그 넓은 이마와 콧등, 지그시 감은 눈, 그리고 끝부분이 약간 위로 올라간 듯한 두터운 입술에 빙그레 퍼지고 있는 미소가 은근하게 친근한 정감을 가져다준다. 일러서 ‘앙코르의 미소’라고 한단다. 보는 시각에 따라, 또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그 불상은 우리의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상의 ‘백제의 미소’를 생각나게 한다. 글쎄, 팔은 안으로 굽어서일까? 아무래도 나는 백제의 미소가 더욱 정겨운 느낌이었다.
이 사원에도 회랑에는 부조가 있어 앙코르와트와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해 준다. 그러나 그 관람 방향은 정반대 시계방향으로 돌며 관람한다. 죽음에 대한 생명을 상징하는 방향을 택한 것 역시 힌두교와 대승불교의 차이에서 온 터수일 것이다. 부조 속에는 귀가 길고 코가 크고 입술이 두툼한 크메르인, 머리에 상투를 틀고 눈이 길게 찢어진 중국 상인들, 코끼리를 타고 있는 장군들, 창과 칼을 들고 행군하는 군사들…,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부조들은 당시의 사회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엄청나게 큰 물고기를 잡고 환호작약하는 모습, 엄마 머리에 있는 서캐를 잡아주는 딸, 임산부의 아이를 받아주고 있는 간호사들, 멧돼지를 잡고 닭을 잡고…, 아, 킥 복싱의 원조랄 수 있는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을 하고 있는 장면도 보인다. 전쟁터로 나가는 남편에게 자라를 잡아주며 살아 돌아와야 한다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아낙네, 저런! 턱수염까지 기른 중국 상인이 여자 손님을 희롱하기까지 하는군. 물에 빠져 악어들의 밥이 되려 하는 사람들을 구해내는 요새 UDT와 같은 특공부대원들의 용감한 활동상도 볼 수가 있었다. 용병들을 독려하는 크메르 병사들은 전쟁의 승리를 믿고 웃고 있는데, 적군들은 도망가기에 바쁘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전쟁에서 패배한 쪽 군인들은 예나 이제나 개돼지보다도 못한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그 전쟁은 그들 서민들이 일으킨 일은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나라를 이끌어가는 소수의 지도자들로 인한 사건일 뿐이다. 그러나, 그러나…, 죽어가는 것은 서민들만이 아닌가? 한쪽에서는 전승 축하잔치를 하려는지 소를 뽕나무에 매달아 놓고 잡으려 하고 있다. 이런 것으로 보아서 힌두교 사원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하겠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광경도 인상 깊었다. 앞줄의 몇몇 학생은 열심히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필기도 정성들여 하고 있는데, 옆엣 놈과 잡담하는 학생, 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하긴 우리도 버스에서 열심히 얘기하고 있는 가이드의 설명을 늘 자장가로 여기고 있었으니, 할 말이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