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 등

퇴 임 사

거북이3 2008. 2. 24. 08:59
 

퇴   임   사

                                                                 이   웅   재


오늘 이 자리는 저에게 있어서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자리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 평생 동안 이렇게 저만을 위한 자리는 있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백일이나 돌 때의 기억은 없지만, 아무래도 요즈음 같지 않아서 가족이나 친척, 그리고 가까운 친지 몇 사람만이 모인 자리였을 것이고, 결혼식 때가 있지만, 그때에는 분명 저 한 사람만이 아니고 제 아내까지 함께 축복받는 자리였을 테니까요. 어쩌다 무슨 상 따위를 받을 때도 늘 여러 사람들과 함께였었습니다.

 따지자면 이 퇴임식도 보통은 몇몇 사람이 같이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어쩌다가 혼자서 퇴임식을 맞다 보니 이렇게 예기치 않은 독상을 혼자 받게 되었습니다. 선택 사항일 수 없는 이 독상은 순전히 행운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인생에는 이렇게 가끔 선택 사항이 아닌 일들이 찾아오는 수가 있습니다. 삶의 최초의 순간도 거기에 해당이 되는 것이지요. 태어날 때 제 마음대로 날짜 시간 맞추어 태어나는 사람 없고, 더구나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렇게 선택 사항이 아닌 퇴임식을 혼자 맞이하게 된 것도 행운이라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동원대학에서 퇴임을 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학장님을 비롯한 동료 교수들, 사무직원들, 그리고 조교님들 고맙습니다. 황금같이 귀중한 시간을 저를 위해서 이렇게 써 주시니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지금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퇴임이란 제 인생 여정에서 또 하나의 마침표를 찍는 일이라는 점을 되새겨 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저는 행운아라는 생각입니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일들도 많이 겪기도 하는데, 별 대과 없이 이렇게 마침표를 찍게 된 일이 어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모든 행운은 여기에 함께 하고 있는 모든 분들의 덕택이라는 점을 절감하면서 다시 한 번 여러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인생은 연극이라고들 하지요? 지금 저는 바로 5막짜리 연극을 끝내고 있는 것입니다. 왜 5막짜리이냐구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직장 생활마저 마감을 하게 되니 바로 5막짜리의 삶을 살아온 셈이지요. 특히 마지막 제5막에 해당하는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믿고 늘 용기를 북돋우어 준 제 아내에게 또한 고마운 마음을 가집니다. 성격이 그렇지 못해서 평소에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못한 처지라서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여보, 사랑해요!”

 이 5막짜리의 연극이 끝나고 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3막짜리나 아니면 단막극이라도 다른 배역이 주어질지, 혹은 이 연극을 끝으로 다시는 제게 다른 배역이 배당되지 않을지 매우 궁금합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단역이라도 맡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벌써부터 문학 쪽에서 그런 사인을 계속 받아오고 있었거든요. 그런 점이 또 하나 저를 행운아로 만들어 주고 있는 셈입니다. 어떠한 배역이 되었건 간에, 저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새로운 배역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열심히 사는 일,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는 생각에서지요. 정말 이 이후에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열심히 살려고 하는 저를 지켜보아 주시고 붙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평화가 깃들고 건강하시며 하시는 일 모두가 형통하시기를 빕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 2.21.   이   웅   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