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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쓰기 14) [참고 도서 이용법(1)- 동문선 등]
이 웅 재
좋은 수필을 쓰려면 어떻게 하여야 될까? 수필도 문학작품인 이상 무엇보다도 읽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게 써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선 발상이나 주제가 참신해야 할 것은 물론이요, 그러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소재의 선택, 그리고 그에 걸맞은 다양한 표현 기법 등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도 더욱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나 자신이 경험했던 바를 하나 예로 들어보자. 대학을 갓 졸업한 총각 시절 반도의 남쪽 끝 예향이랄 수 있는 경상도의 어느 지방 한 여학교에 가서 교사로 지냈던 적이 있었다. 그 학교는 한 동안 문예 쪽으로는 이름이 나 있던 학교였었는데, 내가 부임하기 몇 년 전서부터 그 전통이 무너져 가고 있었다. 해서 그 학교의 학생들은 문학을 좋아한다는 선생이 부임해 온다니까 특히 문예반 학생들이 무척이나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 자신도 아직 애송이인데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가 있었겠는가? 기껏 한다는 것이 표준어를 비롯한 맞춤법, 띄어쓰기 등과 문장의 주술관계의 호응 따위를 맞춰 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시내 중고등학교 백일장에서 장원, 차상, 차하를 비롯하여 가작에 이르기까지 모두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상을 휩쓸었던 것이다. 덕분에 내 주가도 상승했음은 물론이었지만, 다시 말하건대,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이라고는 바른 문장, 정확한 글을 쓰는 일에 불과했던 것이다. 문예에 뛰어난 학교의 전통은 아직 살아있었던 것, 그것을 되찾아준 것은 바로 그 바른 문장, 정확한 문장이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자. ‘ㅡ’와 ‘ㅓ’의 구분을 잘 못하는 지방, 글을 쓸 때 그것을 서로 혼동하여서 쓴다면, 그 글이 내용이 아무리 좋다 한들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인지를….다음 글은 김영하의 소설 ‘고압선’의 일부인데, 예의 ‘ㅡ’와 ‘ㅓ’의 대부분을 뒤바꾸어 써본 것이다. 다른 사투리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ㅡ’와 ‘ㅓ’의 혼용해본 글이다. 아무리 내용이 재미있고 주제가 선명한 글이라고 하더라도 누가 다음과 같은 글을 뽑아주겠는가?
여자넌 약속 장소에 나와 있읐다. 감색 카디근과 그 나이에 입기에넌 조검 짧언 스크터럴 입고 있읐다. 두 사람언 갈비를 먹읐다. 여자가 고기럴 불판에 얹어려 몸얼 숙일 때마다 그녀의 컨 가섬이 출릉그렸다. 남자넌 그를 때마다 소주럴 마셨다. 술이 들으가니 말이 많아졌다.
(김영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문학과 지성사,1999. p.221.)
표준어나 맞춤법, 띄어쓰기만이 문제는 아니다. 다음은 정진권의 “문장론 연습”(학지사, 1995, p.151)에서 내용이 부정확하고 근거가 불확실한 제재를 사용하면 안 된다면서 예로 들어 설명한 글이다.
안중근(安重根) 의사는 그 아명(兒名)이 응칠(應七)이요, 교명(敎名)은 도마이다. 그는 평안도 출신으로 한학(漢學)을 수학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혀 문무(文武)를 겸전(兼全)하였다.
안의사는 평안도 출신이 아니고 황해도 출신이란다. 사실을 왜곡시키는 글은 제아무리 화려한 수사로 치장한다 하더라도 진실과는 동떨어진 글이 되고 말아 그 가치성이 훼손될 것이요, 따라서 그러한 글은 곧 소멸되고 말아버릴 생명력이 없는 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석호는 ‘소재의 정의와 선정의 실제’(새로운 수필문학 창작기법, 교음사, 1999, p.104.)라는 글에서 발자크의 문학수업 시절의 예화를 들면서 말했다. 노선배 작가를 찾아가서 작가 수업에 대한 가르침을 요청했을 때 노작가가 발자크에게 물었단다. ‘집으로 들어올 때 밟고 온 계단이 몇 개였느냐고. 보이지 않는 인간 심리마저 파헤쳐야 할 작가가 눈에 보이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서 어떻게 글을 쓰겠다고 하느냐고.’
그렇다.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들은 남보다 더욱 많이 알아야 하고, 남보다 훨씬 세밀한 관찰력을 가져야 하고, 남보다 월등하게 참신한 사물에 대한 해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그것들을 바르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만 할 것이다.
세월은 엄격한 판관이다. 바르지 못한 글, 정확하지 못한 글은 세월의 그물망에 걸려 걸러지게 마련이다. 세월의 그물망을 무사통과한 글만이 살아남을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살아남은 글들 중에서 명작과 범작이 다시 갈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우선은 살아남아야 한다.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바른 글, 정확한 글을 써야만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주제, 아무리 흥미로운 소재, 아무리 화려한 수사의 멋진 글이라고 하더라도 그 글은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자, 이제 그 정확한 문장을 위하여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표준어, 맞춤법, 띄어쓰기, 외래어표기법 등에 만전을 기하여야 함은 초보적 상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글쟁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원고지나 PC에 입력된 글에 No.를 붙이지 않은 무성의에서부터, 한 번 쓴 글을 전혀 다시 읽어보지도 않은 듯 오자, 탈자가 수두룩한 원고 등등…, 글 쓰는 자세부터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게 보인다.
최소한도 ‘도구’에서의 ‘맞춤법’ 검사만이라도 해주어야 할 것이 아닐까? 그리고 알쏭달쏭한 철자나 표준어에 대해서는 ‘국립국어원’에 접속해서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 확인하는 노력쯤은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일이 아닐까? 국어대사전(國語大辭典), 국사대사전(國史大事典), 한자자전[辭源, 辭海, 漢和大辭典), 문장대백과사전, 고사성어사전, 속담사전, 인명대사전, 동의어․ 반의어 사전, 민족생활어사전, 문학상징사전, 고어사전, 문학비평용어사전, 우리말갈래사전, 불교사전 등을 곁에다 두어야 함은 필수적일 것이다. 아언각비(雅言覺非)나 전고대방(典故大方) 따위가 함께 하면 더욱 금상첨화라 할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쓰다 보면 가끔 가다가 옛 사람들의 글을 인용하고 싶은 때가 종종 있게 된다. 이러한 필요성을 위해서는 웬만한 고전(古典)쯤은 상식적으로라도 알아둘 필요성이 있을 것이요, 무엇보다도 “동문선(東文選)” 정도는 늘 가까이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동문선”, 그 책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문 작품들은 거의 망라되어 있는 책이다. 대부분의 한문 작품에 대한 출전을 잘 모르는 때엔 “동문선”이라고 말하면 될 수 있을 정도의 방대한 고 문장의 보고인 것이다. 책값만 해도 수월찮은 그 책은 컴퓨터에서 ‘한국고전번역원’(‘민족문화추진회’의 후신)을 치면 무료로 이용할 수가 있으니, 자주 이용하기를 바란다. 컴퓨터를 통해 그곳을 방문하면 “동문선”뿐만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는 우리가 쉽게 대해볼 수 없는 많은 양의 고전 작품들이 원문과 번역문을 동시에 제공받을 수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나는 원래 인터넷에서의 모든 자료는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야지만 좀더 ‘지식의 공유’가 가능해지고, 그만큼 사회 발전의 속도가 빨라지지 않겠는가? 단,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출전을 명기해 주어야만 할 것이다.
중국 쪽의 명문장을 위해서는 “고문진보(古文眞寶)”를 이용하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고문진보”에 나오는 대부분의 명문장들도 ‘http://blog.daum.net/hgmja/8752834’에 들어가면 이용할 수가 있다. 정말로 글 쓰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세상이 되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자료들을 이용하지 않는 글쟁이들을 볼 때면, 답답함을 넘어 짜증스러워지기까지 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나는 요즘 월간 “수필문학”에 ‘고전수필순례’라는 글을 연재하고 있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고전수필들은 대부분 “동문선”을 이용하여 그 자료들을 얻고 있다. 참고로 그 중의 하나인 조위의 ‘독서당기(讀書堂記)’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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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수필 순례 7)
독서당기(讀書堂記)
조 위 지음
이웅재 해설
커다란 집을 짓는 자는 먼저 경남(梗楠; 느릅나무와 녹나무)과 기재(杞梓; 구기자나무와 가래나무)의 재목을 수십 백 년을 길러서 반드시, 공중에 닿고 동학(洞壑)에 솟은 연후에 그것을 동량(棟梁)으로 쓰게 되는 것이요, 만 리를 가는 자는 미리 화류(驊騮)와 녹이(騄駬)1)의 종자를 구하여 반드시 꼴과 콩을 넉넉히 먹이고, 그 안장을 정비한 연후에 가히 연나라와 초나라의 먼 곳에 닿을 수 있는 것이니, 국가를 경영하는 자가 미리 어진 재주를 기르는 것이 이와 무엇이 다르리오. 이것이 곧 독서당(讀書堂)을 지은 사유이다.
삼가 생각하건대, 본조(本朝)에 열성(列聖)이 서로 계승하고 문치(文治)가 날로 높아, 세종대왕께서 신사(神思)ㆍ예지(睿智)가 백왕(百王)에 탁월하여 그 제작의 묘함이 신명(神明)과 부합되어 생각하기를, “전장(典章)과 문물은 유학자가 아니면 함께 제정할 수 없다.” 하고는, 널리 문장(文章)의 선비를 뽑아서 집현전을 두고 조석으로 치도(治道)를 강하고 …(중략)… 집현전 문신 권채(權採)2) 등 세 명을 보내되, 특히 긴 휴가를 주어 산 절에서 글을 편히 읽게 하였고, 그 말년에는 또 신숙주(申叔舟)3) 등 6명을 보내어, 마음껏 학업에 힘을 쓰게 하였었다. …(중략)… 지금 임금께서 위에 오르시자 먼저 예문관(藝文館)을 열어 옛 집현전의 제도를 회복하고 날로 경연(經筵)에 앉아 문적의 연구에 정신을 두어, 유술(儒術; 儒道)을 높이고 인재를 양육하되 옛날보다도 더하였다.
병신년에 …(중략)… 정원(政院; 承政院)에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마땅히 성 밖에 땅을 골라 당(堂)을 열어서 독서할 곳을 만들라.” 하니, 정원에서 아뢰기를, “용산(龍山)의 작은 암자가 이제 공해(公廨; 官家의 건물 ≒公廳)에 소속되어 폐기되었으니, 잘 수리한다면 상개(爽塏, 塽塏; 위치가 높아서 앞을 내려다보기 좋은 곳)하고 유광(幽曠; 그윽하고 훤함)하여, 장수(藏修; 책을 읽고 학문에 힘씀)ㆍ유식(遊息; 마음 편히 쉼)하는 장소로서 이곳이 가장 마땅하옵니다.” 하였다. 임금이 그 청을 옳게 여기어 관원을 보내 역사를 독려하여 두 달 만에 이룩하니, 집이 겨우 20칸이었으나 서늘한 마루와 따뜻한 방이 각기 갖추어졌다. 이에 독서당(讀書堂)이라 사액하고 신에게 명하여 기문을 짓게 하시었다. 신은 생각하건대, …(중략)…만일에 한갓 선비를 기른다는 이름만 연모하여 구차히 취한다면, 닭 울음, 개 짖는 소리를 하는 무리들이, 가만히 그 사이에 스며들 것이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으랴. 삼대의 인재는 모두 학교로 말미암았으나, 주나라의 선비 기르는 방법이 가장 상세하였고, 한나라의 교재(翹材)4)나 당나라의 등영(登瀛)5)에 이르러서는 모두 구차히 일시의 이름만을 얻었으니, 어찌 족히 이를 수 있겠는가. 오직 우리 국가에서는 백 년 동안을 함양(涵養)하여 교화ㆍ개도(開導)의 방법이나 장려(獎勵)ㆍ양성하는 규모야말로, 실로 주나라의 선비 기르는 법과 더불어 서로 표리가 되어, 반궁(泮宮)6)과 옥당(玉堂; 홍문관) 밖에도 또 양현(養賢)하는 장소가 있어 고르기를 정밀히 하고 대우를 도탑게 한다면 …(중략)… 이에 뽑히는 이로서는 임금의 낙육(樂育; 즐거이 가르침)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중략)… 황왕(皇王; 황제 또는 임금)ㆍ제패(帝霸; 황제의 패권)의 도와 예악(禮樂)ㆍ형정(刑政)의 근본, 수제(修齊; 修身 齊家)ㆍ치평(治平; 치국 평천하)의 요점이 모두 이에 있으니, 사업에 베푸는 것은 노력에 있는 것이다. …(중략)…
아, 슬프도다. 글을 배우는 공력은 변화함이 귀하거늘, 이제 오늘에 한 책을 읽고서도 오히려 전과 같은 사람이요, 내일 한 책을 읽고서도 또한 그 사람이라면, 비록 아무리 크다손 치더라도 무엇을 할 수 있으리오. …(하략)…
해설: 요즈음 사람들은 독서를 너무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조위(曺偉)의 「독서당기(讀書堂記)」를 소개한다. 속동문선 제14권 기(記)에 수록되어 있는 글이다. ‘기’는 “어떤 사물을 객관적으로 기술한 글. 紀事․ 志․ 述이라고도 함. 자기의 이론을 섞어 쓴 변체의 記도 있”으며,(한국문학개론 편찬위원회 편. 韓國文學槪論. 혜진서관.1991. p.542.) 비평수필(批評隨筆)로 볼 수 있다.(동 p.545 참조.)
지은이 조위는 조선 성종 때의 학자로 자는 태허(太虛), 호는 매계(梅溪), 시호는 문장(文莊), 창령(昌寧) 사람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유배되어 죽었다. 최초의 유배가사인「만분가(萬憤歌)」를 짓기도 했다.
** 한문 번역은 민족문화추진회의 『속동문선』을 따랐으나 맞춤법, 띄어쓰기, 문맥을 살리기 위한 부분적 윤문, 그리고 작은 글씨의 협주(夾註) 및 미주는 해설자가 하였음을 밝혀 둔다.
(09. 2. 28. 원고지 37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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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류(驊騮)․ 녹이(騄駬); 중국 주나라 목왕(穆王)이 타던 팔준마(八駿馬) 가운데 하나로, 좋은 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驊騮는 棗騮라고도 하고 騄駬는 綠耳라고도 함.
2)권채(權採); 조선 세종 때의 집현전 학사, 좌승지. 신증향약집성방(新增鄕藥集成方)을 엮었다.
3)신숙주(申叔舟); 조선 세조 때의 문신(1417~1475). 자는 범옹(泛翁). 호는 보한재(保閑齋)˙ 희현당(希賢堂). 훈민정음 창제에 공을 세웠으며, 《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고 《동국통감》˙《오례의》를 편찬하였다.
4)교재(翹材); 남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리키는 말로 당시의 학교 이름인 듯.
5)등영(登瀛); 영예스러운 지위에 오름을 뜻하는 ‘登瀛洲’를 줄인 말로 역시 당시의 학교 이름인 듯함.
6)반궁(泮宮); 제후의 나라에 설치한 대학. 천자의 나라에 베푼 대학은 벽옹(辟雍)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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